배우 천우희는 “캐릭터를 구사할 때 내가 상상하는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길 바라는데, 쉽지 않다”며 “연차가 쌓이면서 욕심을 덜어내니 연기도 편안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무엑터스 제공
고교 친구 따라 연극반에 갔다
첫 작품은 위안부 소녀 역이었다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 머리맞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경험 황홀
피해 할머니들도 보고 우셨다
숫기 없던 내가 연기자 꿈꾼 계기

어린 시절 모습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지금도 날 보면 신기해한다. 부끄러움 많고 소심했던 애가 어떻게 본드를 흡입하고 눈을 뒤집는 불량한 ‘본드녀’(영화 ‘써니’)가 됐냐는 거다. 참 숫기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발표는커녕, 선생님에게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라는 말 한마디를 못해서 꾹 참았다. 낯을 가리는 딸을 걱정한 어머니가 짜장면을 주문하라는 심부름을 시키면, 종이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나름의 각본을 써서 연습할 정도였다.

나는 엉뚱한 공상가였다. 집 안에 가만히 앉아 만화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책 속의 장면을 상상했다가 난데없이 혼자 박장대소하는 일이 잦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은 천성이라 여겼고,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일은 생각도 안 해봤다. 내가 생각해도 참 밋밋했던 사춘기 시절, 인생을 뒤바꾼 사건이 발생했다. 2003년 고등학교 진학 후 연극반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처음엔 별다른 생각 없이 친구 따라갔다. 얼떨결에 들어간 연극반에서 연극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의 극본을 받았다. 1995년 극단 한강이 초연한 작품으로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극이었다. 중국 간도의 한 위안소에 있던 세 소녀가 광복 직후 집으로 돌아가려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과 상처가 절절하게 그려졌다.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위안부 피해 소녀 역을 맡았다. 이제 갓 입학한 풋풋한 여고생들이 해석하기에는 제법 무거운 작품이다.

배우 천우희는 “좋은 배우의 기준이 뭘까 늘 고민한다”며 “연기도 잘해야 하지만, 인성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무엑터스 제공

전문 연기 선생님 없이 고등학생들이 꾸리는 연극인데, 작품성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뛰어났겠나.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짜냈고 이게 맞는지, 틀린 지도 모른 채 6개월을 연습했다. 대사를 외우고, 표정을 연습하고,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나는 연기의 매력을 느꼈다. 기본기가 없다 보니 대본 속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할까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 분석해 캐릭터를 표현했다. 평소 상상을 즐기는 것이 연기 연습할 때 톡톡히 도움이 됐다.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도 컸다. 무대 뒤 암전 상태로 도입부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여지없이 심장이 쿵쾅댔지만, 조명이 켜지고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잡생각이 달아났다. 이후엔 무대 위에 나와 내 연기만이 남았다.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감정을 표출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내 자신이 신기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 첫 연기 경험은 황홀했다.

전문 연기자가 돼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이다. 청소년 연극제에서 몇 차례 상을 받자, 자신감이 붙었다.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로는 단체상을, 그 다음해 연극 ‘토지’로 개인상을 받았다. 상복까지 터지자 신바람이 났다. 연예계 생리를 모르니, 기획사에 들어가거나 오디션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하고 오로지 연기학과를 목표로 입시에 전념했다.

무엇보다 연기가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이 나의 진로를 정하는 큰 계기가 됐다.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를 공연할 당시 종종 나눔의 집을 방문했는데, 하루는 마을회관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여 분을 모시고 공연을 펼쳤다. 공연을 보는 내내 할머니들이 많이 우셨다. 끝난 후에는 손을 잡아주시며 “잘 봤다, 고맙다”는 격려까지 해주셨다. 줄곧 나 혼자 즐겁자고 한 연기가 해석하기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누군가에게는 기쁨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말이나 글보다 연기가 10배는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극을 완성도 있게 마친 후 느끼는 카타르시스와는 다른 감동이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마더’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프로들의 생생한 세계를 보게 됐다. 다른 선배들의 진중한 모습과 직업의식을 보고 재미로 활동했던 내가 얼마나 가벼웠었나 부끄러워졌다. 나도 제대로 달려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그때부터 오디션을 돌며 나에게 맞은 역할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배우 천우희는 지난 9월 tvN 드라마 ‘아르곤’을 통해 브라운관에 진출했다. 나무엑터스 제공

영화 ‘마더’, ‘한공주’, ‘곡성’ 등 내 활동 이력을 돌아본 혹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나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맡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일부러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찾는 것은 아니고, 대본을 읽은 첫 느낌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지금에야 문득 내 첫 연기 경험이 작품 선택을 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으로 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니, 다른 작품을 대할 때도 무의식 중에 분석이 필요하거나 진중한 역할에 눈길이 간 것 같다. 만일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연극으로 첫발을 뗐다면 지금 나는 어떤 배우가 됐을까.

여느 걸출한 선배들처럼 장기간 대학로를 누빈 것은 아니지만, 연극 무대에 대한 향수는 늘 있다. 지난해 연극 극본이 들어왔는데, 출연키로 한 영화가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내년쯤엔 충무로를 잠시 떠나 연극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연극, 드라마, 영화 모두 각각 다른 특성이 있고 연기의 기술도 다르게 구사해야 한다지만, 진정성 있는 연기는 언제나 통한다고 믿는다. 그때까지는 편식 없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게 목표다. 그동안 도전해보지 못했던 로맨스 드라마의 청순가련한 아가씨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왈가닥 여고생으로 대중 앞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배우 천우희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정리=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