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페니 체너리
페니 체너리는 전설적 경주마 '세크리테리엇'의 마주이자 미국 경마사에 등장한 사실상 첫 여성으로서, 70년대 경마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경마가 문화 스포츠에서 (도박)산업으로 변천하는 시대를 살면서 그 추세에 저항하며 경마문화의 고전적 기품을 지키려 애썼던 애마인이기도 했다. 그의 말 '세크리테리엇'이 73년 '트리플크라운' 위업을 달성한 직후 벨몬트스테이크스 경마장에서 환호하는 페니 체너리. AP 자료사진
‘트리플크라운’ 세크리테리엇
동전던지기에 져서 얻게 된 말
조련사 로린, 기수 터코트와 함께
한달 새 3대 대회 기적같이 우승
경마사에 등장한 첫 여성
쇠락하던 아버지 목장 이어받아
도박산업 이전 경마 전성기 이끌어
노년엔 경마 산업 건전화에 열정

미국인들의 애마 문화와 경마 사랑은 각별하다. 스포츠랄 게 드물던 50년 전, 100년 전만은 못하겠지만, 업계 추산 2,000만 명의 경마 팬이 있고, 2016년 기준 정규 대회만 788개에 달한다. 대회가 많아진 것은 70~80년대 경마가 오락ㆍ스포츠를 넘어 (도박)산업화 하면서부터다. 근년에는 주요 대회 판돈만도 1억 달러를 예사로 넘나든다. 판이 커지면서 우승마는 물론이고 마주와 조련사, 사육사 몸값이 치솟고, 대회 입장료 등 운영수익과 관광 등 부대산업, 종마 사육도 대형화 기업화했다. 반면 대회가 난립하면서 수준도 들쭉날쭉하고 경마문화의 고전적 격조도 출전마들의 기품과 더불어 퇴색하는 추세. 근년에는 카지노 슬롯머신까지 갖춘 경마장도 생겼다.

미국 경주마 마주ㆍ사육사 협회(TOBA)가 1974년 경마 대회 등급분류를 시작한 것도 그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협회는 대회 연륜과 주로(走路) 등 경기장 시설 수준, 상금 규모 등을 평가해 매년 1~3등급과 등급외 대회를 분류하고, 경주마 출전자격도 성적과 혈통 등을 따져 차등화했다. 등급 내에 든 대회는 2016년 기준 464개이고 그 중 109개가 1등급 대회다. 1등급 무대에서 뛴다는 것만으로도 말과 기수, 사육사, 조련사에게는 자랑스러운 이력이 된다.

저 1등급 대회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세 대회가 켄터키 주 루이스빌 처칠다운스 경기장에서 열리는 켄터키 더비(Kentucky Derby, 1875~),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핌리코 경기장에서 열리는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Preakness Stakes, 1873~), 미국 경마협회 직영 경마장인 뉴욕 벨몬트파크의 벨몬트 스테이크스(Belmont Stakes, 1867~)다. 매년 5월 첫째 주 시작되는 켄터키 더비서부터 2주 뒤의 프리크니스, 6월 첫 주의 벨몬트 스테이크스까지의 한 달이 경마인들에게는 말 그대로 축제 기간이다.

미국 경마에서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삼관마)’은 저 한 달 사이 세 개 대회를 석권한 말에게 부여되는 영예다. 하지만 2km 안팎의 주로를 2분 남짓 동안 전력 질주해야 하는 경마는, 몸무게가 10~15kg씩 빠질 만큼 말에게는 혹독한 일. 2주 간격으로 먼 거리를 이동해가며 컨디션도 회복해야 한다. 더욱이 마지막 대회인 벨몬트 스테이크스는 북미 최장 주로(2.4km)를 가지고 있어, 순발력과 지구력 못지 않게 체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벨몬트 스테이크스는 챔피언들의 시험무대라 불린다.

1919년 첫 트리플 크라운 우승마((써바턴, Sir Barton)가 탄생한 이래 근 100년 동안 삼관마는 모두 12마리에 불과하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책과 외신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꽤 알려진 영웅들, 37년의 워 애드머럴(War Admiral), 73년의 세크리테리엇(Secretariat), 2015년 37년 만의 첫 삼관마라며 세계 언론이 주목했던 아메리칸 파로아(American Pharoah) 등이 그들이다. 30년대 대공황 시대의 영웅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2003년 영화 ‘씨비스킷(Seabiscuit)’의 주인공 ‘씨비스킷’도 삼관마의 영예는 차지하지 못했다.

세크리테리엇은 저 웅장한 경마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빠른 말이었다. 그 어떤 말도, 그의 73년 트리플 크라운 우승 기록 중 단 하나도, 만 43년이 지난 지금까지 넘지 못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사람들)에겐, 씨비스킷 못지않은 삶의 드라마가 있었다. 시련의 기수에서 조련사로 전환했다가 만년에 세크리테리엇을 만나 챔프로 키운 카리스마의 조련사 루시앵 로린(Lucien Laurin, 1912~2000), 79년 낙마 사고로 장애인이 된 뒤 영구장애 기수 복지재단 일에 앞장서온 삼관마의 기수 론 터코트(Ron Turcotte, 1941~), 세크리테리엇이 강아지처럼 따라 다녔다는 사육사 에디 스웨트(Eddie Sweat). 그리고 70년대 버지니아의 여성 마주(馬主)이자 세크리테리엇의 대변인 겸 승부사로, 남성 텃세가 그렇게 심했(하)다는 경마업계에서 여성의 자리를 개척하며 말년까지 경주마 복지 및 경마문화 개선에 열성을 쏟은 페니 체너리(Penny Chenery)가 있었다. “미국 경마의 퍼스트 레이디” 페니 체너리가 9월 16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페니 체너리는 1922년 1월 27일 뉴욕서 나서 다섯 살 무렵부터 말을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유한 사업가 겸 투자가 아버지 크리스토퍼의 영향이었다. 돈 못지않게 말을 좋아했다는 그가 말을 키워 돈을 벌기로 마음 먹은 건, 그로선 무척 합리적이고 남들로선 부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1936년 선대의 터전이던 버지니아 주 도스웰의 2,600 에이커(약320만평) ‘메도우(Meadow) 목장’을 구입, 이름난 암말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47년 할부로 구입한 우승 경력의 9세마 ‘임페라트리스(Imperatrice)’의 가격은 당시로선 놀라운 3만 달러였다. 그 말이 59년 ‘섬싱로열’을 낳았고, ‘섬싱로열’이 70년 ‘세크리테리엇’을 낳았다.

미국 경마사상 가장 빠른 말로 남아 있는 세크리테리엇. 붉은 몸빛 때문에 '빅 레드'라는 애칭으로 불린 세크리테리엇은, 이마의 별모양 반점과 메도우목장 기수복의 푸른 색과 어우러져 미국 국기를 상징하는 영웅으로 사랑 받았다. secretariat.com

그의 열정과 승부사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게 셋째 페니였다. 페니는 버지니아 승마클럽이 있는 사립 마데이라(Madeira) 여고를 거쳐 43년 명문 스미스칼리지 미대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멋진 말들을 원 없이 타던 청소년기를 회고하며 그는 “내 몸엔 늘 말 벼룩이 득시글거렸다.(…) 난 ‘내셔널 벨벳(National Velvet)’이 아니었고, 말은 그냥 내 친구들이었다”(bloodhorse.com)고 말했다. ‘내셔널 벨벳’은 12세 아역 엘리자베스 테일러(벨벳 역)가 멋진 남장(男裝) 기수로 출연해 배우로서 명성을 얻었다는 히트 영화다.

그는 졸업 후 한 건축회사에 취업, 노르망디 해안 모형 제작을 거들기도 했다고 한다. 44년에는 ‘도넛 걸(doughnut girls)’이라 불리던 구세군 전선 여성 봉사대의 일원으로 프랑스와 독일서 부상 병사들을 도왔다. 지원자격이 만 23세 이상이었지만 그는 나이를 속였다고 한다. 종전 후 다시 취직하려던 그에게 아버지가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 진학을 권한 것은 딸의 비범한 기질을 알아봤기 때문일지 모른다. 취직해서 벌 수 있는 돈을 매달 용돈으로 받는 조건으로 페니는 컬럼비아대에 진학했고, 거기서 로스쿨에 다니던 존 트위디(John Tweedy)를 만나 졸업을 6개월 남겨둔 49년 5월 결혼했다. 재학생 800명 중 여학생이 스무 명에 불과하던 시절 딸의 MBA과정 진학을 강권했던 아버지도 결혼을 위해 졸업장을 포기하겠다는 딸을 말리진 않았다고 한다. 말릴 수 없으리라 여겼을 수도 있다. 페니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로, 변호사겸 사업가 남편을 내조하며 19년을 살았다.

67년 11월 어머니가 숨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페니는 아버지 역시 편찮다는 사실, 목장 사정도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듬해 2월 아버지도 입원했다. 목장을 팔자는 오빠(하버드대 경제학부 교수)와 언니(주부)의 제안에 페니는 아버지 생전에 그럴 수는 없다며 버텼다. 결국 그가 ‘한시적으로’ 목장 경영을 맡았다. 그는 “그나마 대차대조표는 볼 줄 알아서였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아버지처럼 제2 인생을 원했을 것이다.

이미 그 무렵엔 경영난으로 ‘힐 프린스’, ‘퍼스트 랜딩’ 등 메도우 목장의 스타 종마들을 팔아 치운 뒤였다. 경주마 교배ㆍ사육에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던 페니는 경마 잡지로 공부하고 주변 지인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경영 실전에 돌입했다. 그는 첫해 목장이 보유한 말 130마리 중 절반을 팔았고, 사실상 은퇴한 조련사 로린을 설득 끝에 영입했다. 목장을 살린 건 퍼스트 랜딩이 낳은 2세 수컷마 ‘리바 리지(Riva Rigde)’였다. 로린을 만난 리바 리지는 72년 켄터키 더비와 벨몬트 브레이크스에서 우승하며 73년 은퇴할 때까지 11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페니는 목장 빚을 얼추 갚고 명가의 명성을 회복했다. 리바 리지가 활약하던 그 해 세크리테리엇도 마이너 리그격인 2세마 경주에서 승승장구하며 71년 리지의 타이틀인 ‘올해의 유망주(2세마)’에 선발됐다. 로린과 노련한 기수 터코트 등의 활약 덕이 물론 컸지만, 운이 따른 덕이었다.

세크리테리엇이 체니의 말이 된 것도 극적 행운의 결과였다. 메도우 목장의 교배 계약 목장이던 켄터키의 종마 명가 위틀리(Wheatley) 목장의 주인 오그던 핍스(1908-2002)와의 2세마 고르기 동전 던지기에서 체니가 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말이 세크리테리엇이었다.(핍스가 고른 말 ‘브라이드’는 4번 출전해 최고성적 6위를 기록한 뒤 은퇴했다.)

목장의 최대 위기는 73년 1월 아버지 크리스토퍼가 별세한 직후 닥쳐왔다. 막대한 상속세를 내려면 목장을 팔거나 세크리테리엇을 팔아야 했다. 그는 트리플 크라운 우승이라는 선친의 꿈과 자신의 꿈을 위해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세크리테리엇에 투자자를 모아 자신은 최대주주로 남으면서 소유권을 나누는, 일종의 신디케이트를 구성했다.

세크리테리엇과 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세크리테리엇'의 한 장면. 말을 어루만지는 이가 체너리 역의 다이안 레인이고 맨 오른쪽이 기수 로린 역을 맡은 존 말코비치. 촬영에는 세크리테리엇의 기량을 구현하기 위해 닮은 말 5마리가 동원됐다.

73년 세크리테리엇의 드라마 같은 활약은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감독 랜덜 월러스(Randall Wallace)의 2010년 영화 ‘세크리테리엇’(다이안 레인, 존 말코비치 주연)에 잘 담겨 있다. 신참 여성 마주에 대한 언론 및 경마업계의 조롱과 폄하, 1차 간택에서 탈락한 말과 퇴물 조련사의 설욕의 질주, 켄터키- 프리크니스 우승 후에도 언론은 세크리테리엇의 벨몬트 더비 우승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세크리테리엇의 특기는 순발력이었고, 지구력과 체력은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라이벌은 그 해 4월 뉴욕 퀸스의 ‘우드 메모리얼 대회’에서 세크리테리엇을 제치고 1, 2위를 차지한 ‘앵글 라이트(Angle Light)’와 노련한 우승마 샴(Sham)’이었다. 하지만 세크리테리엇은 세평을 조롱하듯 2위 샴을 무려 31마신(馬身)이나 앞지르며 2분 24초의 경이로운 기록으로 우승, 25년 만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48년의 ‘사이테이션(Citation)’ 때와 달리 전국에 TV가 보급된 때였다. CBS로 중계된 그 경기를 무려 1,500만 가구가 시청했다. 뉴욕의 반전 민권 운동가들도, 서부의 히피들도, 반 인종차별 캠페인의 전장 같았던 남부의 흑인과 백인들도 세크리테리엇의 활약에 열광했다. 그 해 워터게이트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백악관의 닉슨도 아마 그 경기는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는, 경마가 실제로나 이미지로나, 지금 같지 않던 때였다. 세크리테리엇은 경마가 스포츠이고 문화이던 시대의 마지막 삼관마였고, 경마가 도박이고 산업이 된 시대의 첫 삼관마였다. 세크리테리엇은 그 해 말 은퇴, 종마로 살다 89년 숨졌다. 70년대는 미국 승마의 전성기였다. 세크리테리엇에 이어 77년(Seattle Slew), 78년(Affirmed)의 두 삼관마가 거듭 탄생했다.

켄터키 더비의 첫 우승 여성기수로 통산 2,137회 수상 성적을 올린 패트리샤 쿡세이(Patricia Cooksey, 1958~)는 79년 데뷔할 당시 출전 기수 명부에 본명 대신 ‘P.J’라는 약칭을 썼다. 여성 기수라 얕보일 것이라는 주변의 염려(?) 때문이었다. 체너리는 미국 경마사에 등장한 사실상 첫 여성이었다. 그는 72, 73년 트리플 크라운 6개 대회 중 5개를 석권한 우승마의 마주로서, 언론과 대중 앞에 나서 적극적으로 발언한 첫 여성이었다. 그는 자칭 세크리테리엇의 대변인이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세크리테리엇의 삼관마 등극의 공을 조련사 로린과 기수 터코트 등의 공으로 돌리곤 했다. 자신은 홍보 대변인일 뿐이었다고, 다만 “(내 덕에) 여성도 멋진 말을 소유할 수 있다는 걸 대중이 알게 됐을지는 모르겠다”(nyt, 2017.9.17)고 말했다. “나는 내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했다. 무슨 롤모델이 되려거나 특별한 뭔가를 이루려던 건 아니었다. 내게 기회가 있었고, 몇몇 중요한 결정을 했을 뿐이다.”(theatlantic.com)

2013년 다큐멘터리 'Penny & Red'의 DVD 표지.

그는 월러스의 영화에 대체로 만족했지만, 몇 가지 누락했거나 미화한 점들을 불편해했다.(drf.com) 세크리테리엇을 부각하느라 정작 목장을 살린 ‘리바 리지’를 아예 배제한 점, 자기와 세크리테리엇이 무슨 영적 교감을 나눈 것처럼 묘사한 점 등을 못마땅해했다. “실제로 세크리테리엇은 나랑은 눈도 잘 안 맞추려고 하던 말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던 막내아들 존 트위디의 2013년 작품 ‘Penny & Red(세크리테리엇의 애칭 ‘빅 레드’)’에 출연, 73년 로린과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내 이미지를 망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신경 안 쓴다. 최고의 말을 가졌지만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던 그 무렵의 나를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목장에 살다시피 하면서 뉴욕으로 직장을 옮긴 남편과 불화했고, 그 해 말 이혼했다. 로린과의 관계도 그 무렵 끝이 났고, 페니는 디즈니 사의 한 임원과 재혼했다가 5년 만에 이혼, 독신으로 살았다.

페니는 83년 미국 기수클럽의 첫 여성 회원 중 한 명이 된 뒤 퇴역마 복지를 위한 ‘경주마 은퇴재단’ 설립에 앞장섰고, ‘세크리테리엇 재단’을 설립해 경마 업계의 다양한 자선 사업에 기여했다. 한 해 최고 인기마에게 주는 ‘세크리테리엇 폭스 포푸리 어워드’ 를 제정했고, 경주마 질병 연구 자금 지원 및 모금에 헌신했다. 말년의 그는 경주마 약물투여 근절 등 경마산업 건전화에 온 열정을 쏟았다. 한 저널리스트가 썼듯이 그는 경마의 핵심은, 그걸 문화로 보든 스포츠로 보든 산업으로 보든, 돈이 아니라 말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라 여겼다. “나는 말을 두고 ‘노빌리티(nobility)’란 단어를 쓰곤 하는데, 말은 정말 고결하고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그 거대한 존재가 우리에게 베푸는 인내란…. 말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빨려 들지 않을 수 없죠.” 미국 경마협회는 2006년 그에게 미국 경마 관련 최고 영예인 ‘이클립스 어워드’의 평생 공로상을 수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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