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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해학과 미…불법 유출 동자석 돌려놔야

입력
2017.10.1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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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선인들의 해학과 미가 표현된 동자석
제주 선인들의 해학과 미가 표현된 동자석

추석을 앞두고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는 풍습은 제주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음력 8월 초하루에 집중됐으나 요즘은 초하루를 전후한 주말에 벌초 행렬이 이어진다. 이 무렵 묘를 찾았다가 선산 앞과 좌우에 세워놓은 동자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분노가 치미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자석은 무덤을 지키고 조상을 섬기는 석상이다. 하늘과 땅, 지신을 연결하는 의미까지 함축한, 신선을 모시는 동자다. 숭배, 봉양, 수호, 주술, 유희적 기능을 두루 갖춘 장식이다. 제주에서 사람이 죽으면 한라산으로 돌아가 신선이 된다는 내세관과도 연관이 있다. 한라산을 숭배하는 무속과 도교, 불교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여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제주 동자석
다양한 형태의 제주 동자석
다양한 형태의 제주 동자석
다양한 형태의 제주 동자석

제주의 무덤에서 석상의 배열을 보면 묘에서부터 동자석, 문인석, 정주석의 순으로 위치한다. 동자석만 있는 경우도 있고, 동자석과 망주석만 세워진 경우도 보게 된다. 공간이 작으면 간혹 산담 위에 동자석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동자석은 1600년대 중기에 시작되어 1700~1800년대에 주류를 이루고 늦게는 1950년대에 만들어진 것도 있다. 특이하게도 1930년대 이후의 무덤에 세운 문인석은 돌하르방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흔아홉골에 위치한 훈장묘와 한라산 해발 1600고지에 위치한 묘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다.

동자석은 제주의 돌하르방보다 육지부의 장승(벅수)과 더 유사하지만 가장 제주적인 특성을 간직하고 있다. 돌하르방이 관아의 수문장 역할을 하며 권위적이고 위압적인데 반해 동자석은 해학적인 부분이 두드러진다. 일반 백성들의 삶과 죽음에 관련된 석상이기에 더욱 서민적이다. 현무암이라는 돌의 성질을 이용해 음각과 양각으로 간단하게 표현한 동자석에서 단순미를 보게 된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과감한 생략기법으로 제작된 동자석은 가장 서민적인 조각양식이기도 하다.

동자석에는 인체의 상반신만 표현되는데 얼굴 부분이 전체의 3분의 1에서 절반에 이르는 경우도 흔하다. 대체로 계란형 얼굴에 하나같이 웃을 듯 말 듯하거나 무표정하고, 무섭다거나 근엄한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다. 손에 들고 있는 지물도 제각각인데, 술병과 술잔을 들고 있는 동자석이 나란히 있는가 하면 연꽃, 반쯤 편 부채, 방울, 표주박, 홀(笏)을 든 동자석도 있다. 신체의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하반신이 없어도 불완전하거나 어색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도 선인들의 미적 감각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제 손으로 동자석을 팔아 넘길 후손은 거의 없다. 무덤가에 있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 불법 유출된 것들이다.
제 손으로 동자석을 팔아 넘길 후손은 거의 없다. 무덤가에 있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 불법 유출된 것들이다.

이처럼 동자석은 제주 주민들의 내세관과 미적 감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임에도 수없이 도난당하는 수난을 겪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동자석들을 집중 촬영했는데, 최근에 다시 가보면 90% 가량은 사라져 씁쓸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2003년 6월 동자석 24점을 화물차량에 싣고 화물선으로 밀반출하려던 일당이 해경에 검거되기도 했다. 당시 범인은 양배추를 실은 컨테이너 속에 동자석을 숨겨 몰래 반출하려다가 제주항6부두에서 제주해양수산청 청원경찰의 검색에 적발됐다.

이럴 때 동자석을 분실한 피해자들이 제때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인을 찾지 못해 원위치에 돌아가지 못한다. 행정당국에서 인터넷을 통한 주인 찾기 운동을 벌이기도 하지만, 대개 추석 무렵에야 조상의 묘를 찾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그때까지 도난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동자석은 박물관에 넘겨진다. 현재 제주돌문화공원이나 박물관 등에 전시한 동자석은 대부분 이런 경로를 거친 것들이다. 확실한 것은 거의 모든 동자석이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반출된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제주에서는 조상의 묘에서 돌 한 덩어리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묘를 새로 단장할 경우 산담 옆에 파묻거나 눕혀 놓는 정도다. 후손의 손을 거쳐 반출된 경우는 없고 모두가 장물이라는 말이다.

제주에서 밀반출된 동자석들은 골동품 가게를 통해 은밀하게 거래되는데, 2015년 8월 서울 인사동에서 동자석 한 쌍이 350만원에 매매된 사례도 있다. 심지어 경기도의 한 사설박물관은 현재도 제주 동자석 수백기를 전시하고 있다. 밀반출된 동자석을 전시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개장 초기에는 제주도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불법 유출된 제주의 동자석은 모두 제자리에 돌려 놓아야 한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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