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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얼얼한 사천요리와의 첫 만남… 그 황홀함 잊지 ‘마라’

입력
2017.10.13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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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사천) 음식은 비주얼부터 이미 울긋불긋해 화려하다. 맛 또한 화려하다. 맵고 얼얼한 통각에 오미가 어우러진다. 서울 서촌 ‘마라샹궈’의 훠궈. 강태훈 포토그래퍼
쓰촨(사천) 음식은 비주얼부터 이미 울긋불긋해 화려하다. 맛 또한 화려하다. 맵고 얼얼한 통각에 오미가 어우러진다. 서울 서촌 ‘마라샹궈’의 훠궈. 강태훈 포토그래퍼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이 전통적 대명사다. 요즘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좀더 다양한 메뉴가 떠오른다. 전국 팔도의 맥주 안주로 군림 중인 양꼬치가 중국 음식의 또 다른 대명사가 된 지 몇 해다. 이 계열 음식은 동북 지역 맛으로부터 변형된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음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다른 계열의 음식이 있다. 그 단어만으로도 무시무시하고 동시에 군침이 가득 고이는 마라, 즉 쓰촨(사천) 지역의 얼얼하고 매운 맛이다. 새빨간 마라탕 육수가 기본이 된 ‘훠궈’를 필두로 ‘마라탕’ ‘마라샹궈’ ‘마라롱샤’ ‘마라두부’ ‘라즈지’ 등 생소한 이름이 중국 음식의 새로운 연관 대명사로 떠오른다. 대림, 구로, 건대 입구 등 서울 안의 차이나타운은 물론 차이나타운과 관계 없는 곳곳에 사천음식을 다루는 중국 식당이 불쑥불쑥 생겨나는 추세다.

땅덩이가 넓은 중국 음식은 풍토와 산물에 따라 워낙 다양하고 제각각 깊어 지역별로 다른 나라 음식인 양 개성이 다르다. 4대 요리로 산둥(노), 쓰촨(천), 장쑤(소), 광둥(월)를 꼽는다. 8대 요리로는 산둥, 쓰촨, 화이양, 광둥, 안후이, 후난, 푸젠, 저장 요리를 꼽는다. 좀더 넉넉하게 10대 요리를 꼽을 때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독립시켜 보태는데, 이 중 매운 맛에 특화된 것이 쓰촨과 후난 요리다.

쓰촨의 매운 맛은 맵지만은 않다. ‘중국의 음식문화’(이해원 저ㆍ고려대학교 출판부)에 따르면 쓰촨의 매운 맛은 마늘과 후추, 쓰촨 산초, 생강을 기본으로 사용해 맵고, 시고, 향기로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쓰촨 산초의 싱그러운 산미는 얼얼함과 맵기보다 더욱 계속 그것을 찾게 하는 힘이다. 매운 맛의 세계 수도라 할 수 있는 쓰촨에서는 매운 맛도 간향랄(干香辣), 소향랄(酥香辣) 유향랄(油香辣), 방향랄(芳香辣), 첨향랄(甛香辣), 장향랄(醬香辣) 등으로 구분할 정도로 매운 맛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고추와 훈제 고기를 많이 사용한 후난 요리의 매운 맛은 맛과 향이 강하고 신선하며, 맵고, 시고 동시에 부드럽다.

쓰촨성의 수도인 청두시는 한국의 여름이 우스울 정도로 덥고 습하다. 이열치열을 그 누구보다도 생활로 실천하는 이들인 것이다. 서울 서촌의 쓰촨 음식 전문점 ‘마라샹궈’ 고영윤 오너 셰프에 따르면, 쓰촨 음식에는 한약재가 풍부하게 사용된다. 그는 “훠궈의 새빨간 마라 육수는 덥고 습한 날씨에 지친 몸을 보하는 각종 한약재가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며 “단지 얼얼하고 매운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 최근의 훠궈 육수는 그 의미가 퇴색해 아쉽다”고 말했다.

쓰촨음식의 ‘마라함’을 만드는 결정적 재료. 왼쪽 둥근 고추부터 시계방향으로 채친 고추, 홍화자오, 청화자오, 일초, 쥐똥고추, 가운데는 쓰촨고추. 강태훈 포토그래퍼
쓰촨음식의 ‘마라함’을 만드는 결정적 재료. 왼쪽 둥근 고추부터 시계방향으로 채친 고추, 홍화자오, 청화자오, 일초, 쥐똥고추, 가운데는 쓰촨고추. 강태훈 포토그래퍼

쓰촨 음식의 매운 맛은 한 마디로 “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매운 것이 아닌 다른 것이 더 큰 특징이다. 쓰촨 음식은 한 마디로 ‘마랄(麻辣)’인데, 흔히 ‘마라’라고 하는 이 단어는 두 가지 맛에 대한 설명이다. ‘랄’은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고추의 매운 맛이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이 담당한다. 더 중요한 쓰촨 음식의 특징인 ‘얼얼함’을 뜻하는 ‘마’는 ‘랄’과 마찬가지로 통각을 주는 매운 맛인데, ‘맵다’보다 ‘얼얼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강한 탄산이 든 음료를 마셨을 때의 따끔거리는 통각 또는 9볼트 건전지에 혀를 댔을 때 느껴지는 혀끝이 멍해지는 찌릿찌릿하고 얼얼한 감각 같은 통증을 준다. 산쇼올이라는 화합물이 담당하는 고통의 맛인데, 캡사이신이나 후추의 피페린 같은 고약한 족속이다. 동시에 중독되도록 매력적인 고통이다.

‘마’한 맛을 내는 향신료는 화초(花椒)다. 흔히 ‘화자오’라고 부르며, 산초로 눙쳐 부르기도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의 산초 또는 제피와 달라 ‘쓰촨 산초’라 하는 것이 정확하다. 둘은 비슷하면서 다른 산초 친척이다. 화자오는 기본적으로 레몬과 똑같은 청량한 향을 내 신맛이 나고 향도 싱그러운데, 좀더 세분화하면 청화자오와 홍화자오로 나뉜다. 롯데호텔서울 중식당 ‘도림’ 여경옥 셰프는 “청화자오와 홍화자오는 다른 나무에서 나는 서로 다른 종화자오”라며 “푸른 빛을 띄는 청화자오는 신 맛과 얼얼한 맛이 더 강하고, 화자오는 아린 맛은 덜하지만 향이 좋아 쓰임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쓰촨에서는 청화자오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여 셰프는 “중국에서는 쓰촨성뿐 아니라 궈저우성을 비롯해 산지마다 다른 품종의 화자오를 생산하며, 맛도 향도 제 각각이라 현지 요리사들도 모두를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중국 재료 도ㆍ소매상과 식당에서는 청화자오를 ‘마자오’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도 ‘마자오’라는 말은 낯선 것이 아니다. 쓰촨과 궈저우의 화자오가 다른 지역 것보다 얼얼한 맛과 향이 강해 특별히 마자오로 불리기도 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매운 맛으로 명성을 뻗치고 있는 쓰촨음식 전문점 ‘라라관’ 김윤혜 오너셰프는 중국 청두에서 쓰촨음식을 배웠다. 그는 “청두에서는 ‘마자오’라는 말을 쓰지 않기도 하고, 마라탕이 아닌 다른 요리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는 충격적 이야기를 전했다. “마자오는 쓰촨성 바깥 지역 사람들이 쓰촨음식의 ‘마’한 특징을 화초 앞에 붙여 ‘마초(麻椒)’, 즉 마자오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마라탕이 쓰촨성에 없는 것은 쓰촨 음식의 탕은 당연히 ‘마라’하기 때문에 굳이 마라탕이라고 부를 것 없이 탕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해물탕’과 ‘매운탕’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김 셰프의 설명이다.

그리하여 ‘마라한’ 마력의 쓰촨음식 중 무엇을 먹으면 되는가. 우선 손댈 메뉴는 널리 퍼져 어디서나 맛보기 쉬운 한국의 대표적 쓰촨음식이다. 한 가지나 두 가지, 또는 네 가지 끓는 육수에 갖은 재료를 담가 먹는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 맵고 얼얼한 국물과 풍성한 재료의 조화가 일품인 마라탕, 고기, 해산물과 갖은 채소, 얇게 띄운 피두부부터 햄과 소시지까지 온갖 재료를 취향대로 골라 볶는 마라샹궈, ‘롱시아’로 읽히는 작은 가재 ‘소용하(小龙虾)’를 얼얼한 양념에 볶아낸 마라롱샤, 기성 중국집 마파두부와 양념부터 다른 마파두부, 수북한 말린 고추 안에 튀긴 닭조각을 뒤섞어 고추향을 진하게 씌운 라즈지가 쓰촨요리 열풍의 주인공들이다.

차이나타운 어디서나 맛볼 수 있으며, 서울 홍대 앞 ‘소고산제일루’와 연남동 ‘삼국지’ 동대문 ‘동북화과왕’ 등 이름난 중국 음식점에서도 마라의 향취를 경험할 수 있다. 초심자를 위해 난이도별로 찾아갈 만한 네 곳 음식점 정보를 정리했다. 마라의 세례를 받으면 처음은 낯설지라도 대번에 입 안이 황홀할 것이나, 다음날 아침까지 소화기관을 따라 얼얼함과 매운 맛이 이어지니 신중히 선택하기를.

▦시추안하우스(난이도 ★)

라즈지. 시추안 하우스 제공
라즈지. 시추안 하우스 제공
마파 두부. 시추안 하우스 제공
마파 두부. 시추안 하우스 제공

외식 기업 썬앳푸드에서 마라 열풍이 불기 훨씬 이전인 2009년부터 선보인 쓰촨요리 전문점이다. 개업 당시 상호는 ‘스파이스 차이니즈 퀴진, 레드 페퍼 리퍼블릭’이었다가 이듬해 상호를 바꾸었다. 가족 외식이나 비즈니스 식사에 걸맞은 분위기와 가격대인데, 그래서인지 열혈 마니아를 위한 맛보다는 대중적 선에서 누구나 낯선 마라 맛을 경험해보기에 가장 적합한 조리법을 쓴다. R&D팀 오준승 주임의 설명. “본연의 향을 살리면서도 한국인에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고 더 맛있게 느껴지도록 균형을 맞춘 음식이다. 현지에서는 편안한 식당에서 맛보는 대중적인 메뉴들이 한국에서 인기인데, 이를 다이닝 레스토랑의 톤앤매너에서 즐기는 것은 시추안하우스의 장점이다. 시추안하우스 이후로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쓰촨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등장했다”. 서울 여의도와 삼성동, 영등포 타임스퀘어 등 세 곳 지점이 있으며, 순하고 익숙한 광둥 요리도 맛볼 수 있다.

▦하이디라오(난이도 ★★)

하이디라오는 다양한 육수와 오만 가지 조합의 소스, 그리고 더욱 풍성한 샤브샤브 재료를 맛볼 수 있는 중국 본토의 훠궈 전문점이다. 하이디라오 제공
하이디라오는 다양한 육수와 오만 가지 조합의 소스, 그리고 더욱 풍성한 샤브샤브 재료를 맛볼 수 있는 중국 본토의 훠궈 전문점이다. 하이디라오 제공
하이디라오의 대표 소스 다섯 가지.
하이디라오의 대표 소스 다섯 가지.

중국에서 1994년 개업해 이제는 중국 전 지역에 190여개 매장을 거느린 쓰촨식 훠궈 전문점. 2014년 서울 명동에 지점을 낸 글로벌 식당이다. 중국 본토 것인 만큼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 예단하기 쉽지만 의외로 무난하다. 마라한 정도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 수십 종류의 소스를 마음대로 조합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소스 바의 위용이 눈길을 끌며, 홍탕(마라탕)과 백탕(삼선탕)뿐만 아니라 얼큰한 버섯탕, 토마토탕 등 다양한 육수를 선택할 수 있다. 중국 훠궈 전문점에서 그리하듯, 소 천엽과 오리 혀, 돼지 대창, 돼지 콩팥 같은 특수 부위도 메뉴에 올렸다. 단지 얇게 썬 고기만이 훠궈의 전부가 아닌 중국의 훠궈를 한국에서 경험해볼 수 있다. 홀 직원을 넉넉하게 두고 일대일 전담에 가까운 ‘극진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네일 아트까지 받을 수 있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명동과 홍대, 강남역 등 서울에서 세 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마라샹궈(난이도 ★★★)

냉장고에 있는 재료라면 무엇이든 넣고 볶는 마라샹궈. 서촌 마라샹궈의 마라샹궈는 고기는 물론 새우와 주꾸미부터 고구마, 연근까지 산해진미를 다 담았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냉장고에 있는 재료라면 무엇이든 넣고 볶는 마라샹궈. 서촌 마라샹궈의 마라샹궈는 고기는 물론 새우와 주꾸미부터 고구마, 연근까지 산해진미를 다 담았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아직 한국에 제대로 상륙하지 않은 더 많은 사천음식의 마라함. 쓰촨성 청두에서 겪은 최고 난이도를 별 다섯이라 하면, 마라샹궈와 아래 소개할 라라관은 별 셋이 적당하다. 뜬금 없이 서촌에서, 더 뜬금 없이 쓰촨음식이 낯설기만 하던 2011년 쓰촨음식 전문점으로 시작한 ‘마라샹궈’는 언니가 홀을, 동생이 주방을 맡은 자매의 식당이다. 주방에서 마라함을 떨치는 고영윤 오너 셰프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중국에 머물며 중국 음식에 홀딱 빠져 업을 요리로 바꿨다. 신동방요리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2008년경부터 북경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작돼 중국 전역을 강타한 마라샹궈에 반해 한국에 돌아와 마라샹궈를 상호로 달았다. 상호는 마라샹궈지만 훠궈와 철판가지요리, 향라새우 등 다양한 메뉴를 내놓는다.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한 것이 확연히 태나는, 솜씨까지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라라관(난이도 ★★★)

쓰촨식 양고기 마라전골. 라라관 제공.
쓰촨식 양고기 마라전골. 라라관 제공.
라라관의 롱샤 요리 라라롱샤.
라라관의 롱샤 요리 라라롱샤.

2015년 부산 금정구 장전동 구석에 문을 연, 역시 뜬금 없는 쓰촨음식 전문점이다. 2년만에 50m 떨어진 곳으로 식당을 넓혔을 정도로 인기 있는 동네 맛집이기도 하다. 쓰촨식 양고기 마라 전골, 쓰촨식 마라/마늘 소롱샤, 양고기 마라샹궈를 기본 메뉴로, 수시로 바뀌는 사이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쓰촨음식에 대한 지식과 실력과 열정에 대한 소문이 서울에까지 뻗쳐, 쓰촨음식 하면 김윤혜 셰프를 빼놓을 수 없다.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베이징에 갔다가 처음 쓰촨음식을 맛보고 ‘경천동지’를 경험한 뒤 마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타공인 쓰촨음식 마니아이자 전문가다. 쓰촨음식의 본산이자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미식 도시’로 선정된 청두에서 요리 연수를 하기도 했다. 그의 작은 식당은 청두에서 서민 식당을 재미있게 이르는 ‘창승관자(苍蝇馆子ㆍ창잉콴즈ㆍ파리처럼 바글바글 사람 많은 작은 식당)라는 말 그대로, 사람이 바글바글한 밤을 매일 맞는다. 물론 파리는 없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강태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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