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 없게... 시험영업 기회까지 제공 '창업 인큐베이터'

스타트업 성장단계별 맞춤형 지원
건물 내 푸드코트 공간 제공해
개업 전 메뉴ㆍ조리법 조정
외식업 5곳 등 88개 기업 입주
외식업체 창업을 앞둔 이들이 미리 창업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서울창업허브의 ‘키친 인큐베이터’. 배우한기자

“현장은 학교와 전혀 다르더라고요.” 전쟁 같던 점심 영업을 막 끝낸 ‘마이웨이 퀴진’의 셰프 진윤선(37)씨가 말했다. 진씨와 하강웅(34)씨는 8월부터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창업허브 내 ‘키친 인큐베이터’에서 본인들이 개발한 메뉴를 판매 중이다. 키친 인큐베이터는 외식업체 창업을 앞둔 이들이 임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푸드코트 형태의 공간. 창업을 미리 경험해 보고 시행착오를 줄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진씨와 하씨도 직접 겪기 전엔 몰랐던 일들과 맞닥뜨리고 있다. 르꼬르동블루(프랑스),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ㆍ미국)와 더불어 세계 3대 요리학교로 불리는 쓰지조(辻調)그룹이 운영하는 오사카 쓰지 조리기술연구원을 졸업한 ‘요리 엘리트’들이지만 이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하듯이 야채도 하나하나 예쁘게 썰었어요. 그런데 재료 준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한 번에 작게 썰었는데 손님들이 한입에 먹기 좋다고 더 좋아하는 거예요. 미소된장국을 만들 때도 일본식으로 고등어 뼈를 오븐에 구워 소금을 치고 우리면 비리지 않고 생선 감칠맛이 살아나요. 그런데 손님들은 다시마나 야채 육수 같은 달짝지근한 국물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진씨의 말이다.

그는 키친 인큐베이터에서 “음식점을 운영할 때 선택과 집중, 조리법을 간소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하씨는 “손님들의 반응을 보고 몇 차례 수정을 통해 이제야 메뉴가 안착된 것 같다”며 “얼마 전엔 지금까지 먹었던 생선 요리 중에 가장 맛있었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도 전 메뉴 위에 ‘Sold Out(판매 완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들은 조만간 연남동에 가게를 연다.

서울창업허브의 키친 인큐베이터에 공모를 통해 입점하면 3개월 간 건물 내 입주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주 고객으로 ‘실전 같은 연습’을 할 수 있다. 마이웨이 퀴진 외에도 총 5곳의 예비 외식업체가 입주해 있다.

'마이웨이 퀴진'의 하강웅(왼쪽)씨와 진윤선씨가 손님이 주문한 요리를 만들고 있다. 배우한기자
“한국의 실리콘밸리 역할” 목표
3년 미만 기업 1000만원 지급
월2만5000원에 사무실 임대
세무ㆍ법률ㆍ특허 등 컨설팅 지원

서울창업허브는 스타트업을 성장 단계별 맞춤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올해 6월 설립된 창업보육기관이다. 서울시내 24개 창업보육센터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 과거 산업인력공단 건물 2동을 사용하는 국내 최대 규모(2만3,659㎡)다. 창업허브에는 10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88개 기업의 사무실과 키친 인큐베이터, 공용 사무실, 창업정보 자료실, 세미나실, 대강당 등 창업에 필요한 여러 공간이 조성돼 있다.

입주기업 중 17곳은 한 번 창업했다 실패한, ‘재도전’ 기업이다. 예비창업기업 105팀도 공용 사무실을 쓰고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창업허브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서울산업진흥원 김영민 파트장은 “우리는 창업 ‘지원’이라는 말 대신 가급적 ‘보육’이라는 말을 쓴다”며 “일회성 지원에 끝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창업허브에서 만난 반려견 공놀이 장난감 제조업체 ‘볼레디’의 박승곤(53) 대표는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창업까지 이룬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 박 대표는 창업 전 3년 동안 매일 2, 3시간씩 강의를 듣거나 멘토를 만나며 창업 기반을 다졌다고 했다. 철저한 준비를 하고 시작했지만 기업 운영은 아직까지 고비의 연속이다. 박 대표는 “자금난 탓에 세 번째 위기를 맞았다”며 “창업허브에서 제공하는 자금 지원이나 전문가 컨설팅을 활용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볼레디는 최근 터키에 제품 100개를 수출하며 해외 판로를 모색하고 있다.

반려견 공놀이 제조업체 '볼레디'의 박승곤 대표. 서울창업허브 제공

창업도 어렵지만 버티기는 더 어렵다. 통계청이 집계한 창업 기업 2년 생존율은 47.5%(2015년 기준). 기업 두 곳이 생기면 둘 중에 하나는 2년을 못 가 망한다는 이야기다. 신생 기업들은 창업 후 3~5년 차에 만나는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건너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업 아이템이 있어도 안정적인 기업으로 정착할 때까지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은 개인이 감당하기 버겁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창업허브 입주기업인 전자칠판 제조업체 애니랙티브의 임성현(41) 대표는 “우리 같은 하드웨어 업체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돈이 억단위로 들어간다“며 “기업 활동은 재료비, 마케팅, 개발, 세금, 보험, 부가세 등 자금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창업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부의 지원 역시 ‘자금’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16년 창업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7년 미만 창업기업들은 필요한 창업 지원 정책으로 ‘초기단계 금융지원(46.6%)’과 ‘창업 세금감면 지원(32.4%)’을 가장 많이 꼽았다.

창업허브는 입주기업으로 선발되면 3년 미만의 초기창업기업에겐 1,000만원, 3~7년의 포스트창업기업에겐 2,000만원을 지급한다. 값싼 사무실 임대료도 창업허브의 매력이다. 관리비 명목의 월 2만5,000원만 내면 4인 기준 사무실(21.78㎡)을 이용할 수 있다. 사실상 무료와 다름 없는 액수다.

창업허브에선 기업 활동을 돕는 여러 민간 기관과 수시로 협력도 가능하다. 창업허브 내엔 입주기업 외에도 엔젤투자자나 엑셀러레이터와 같은 유관기관이 15곳 입주해 있다. 언제든지 기업 성장 과정 중 필수적인 투자, 세무ㆍ법률 상담, 해외 진출, 특허 출원과 관련된 컨설팅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현재 인공지능(AI)엔진 개발업체인 ‘아스크스토리’, 자동전원차단장치 제조업체 ‘인지(Ing)’, 통근셔틀서비스 앱인 ‘모두의 셔틀’, VR게임업체 ‘나날이’, 핀테크업체인 ‘리플포유’ 등 유망 창업기업들이 창업허브를 발판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스타트업 발굴 육성 정책은 사회경제적으로 그 효과가 입증됐다. 서울시의 대표적 창업보육 프로그램인 ‘챌린지 1000프로젝트(2009~2016년)’를 운영하던 기간 동안 지원을 받은 창업기업(6,000개)이 올린 총 매출액은 1,500억원, 고용창출 효과는 1만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재근 시 경제진흥본부 디지털창업정책팀장은 “서울창업허브는 하루 1,000명이 오가는거대한 생태계”라며 “서울창업허브가 중국의 중관촌(中關村ㆍ베이징의 첨단기술 개발구),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창업 정신의 상징이 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애니랙티브'의 직원이 전자칠판을 사용하는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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