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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 혹은 우리 안의 남한산성

입력
2017.10.12 16: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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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맞아 개봉된 영화 '남한산성'(황동혁 감독)은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데다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등 당대 연기파 배우를 대거 캐스팅해 제작단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언론 배급 시사회 때도 "배우들의 연기 호흡은 물론 문학적 연출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아 흥행에 큰 기대를 낳게 했다.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원작소설은 2007년 출간됐지만, 북핵과 사드 배치 문제 등을 놓고 스트롱맨과 매드맨이 벌이는 한반도 게임의 틈바구니에 끼인 곤궁한 우리 처지를 연상케 한 점도 화제를 키웠다.

▦ 하지만 예상외로 흥행은 신통치 않다고 한다. 개봉 1주일 만에 유료관객이 350만명에 육박해 대박 조짐을 보였으나 이후 급격히 줄어들어 손익분기점인 500만명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우선 패배와 굴욕의 역사를 다룬 스토리 라인이 명절의 유쾌한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명분과 의리, 삶과 죽음의 길을 다투는 400여년 전 사내들의 문어체 어법과 지루한 설전, 내내 어둡고 무거운 화면이 여성층과 젊은층에 낯설게 느껴졌다는 설명도 있다. 2012년 추석 때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 작가와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애초부터 상업적 성공을 꾀한 작품은 아니라고 했다. "프레임을 김상헌에게 맞춰 자존심, 민족의 기개로 틀을 잡았으면 독자도 관객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조의 투항은 선도 악도 아닌, 삶의 길이다"(김훈). "소설을 읽는 순간 할리우드의 클래식 영화같이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적 성공은 기대하지 않았다"(황동혁). 두 사람은 민족의 가장 비참하고 치욕적인 순간을 다룬 이야기가 논쟁의 계기가 되고 이 정도로 '이해'를 받은 것만으로도 성공이고 충분하다고 했다.

▦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작가와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생각해 봤다. 감독이 2년 전 시나리오를 쓸 때는 북핵이나 사드 문제를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대통령 탄핵사태가 없었다면 지금의 국내외 정치상황도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그가 "일정한 틀 속에 대중을 가두는 것은 반문화적"이라며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해석을 거부하는 이유다. 작가는 더욱 시니컬 하다. 영화는 후배 기자의 지적처럼 결국 나 혹은 우리가 '자신만의 남한산성'에 갇혀 넓고 복잡한 세상을 좁고 단순하게 사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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