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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열일하다

입력
2017.10.12 14: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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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느낌은 밝고 적극적이었다. 그 느낌이 말해 주듯이 알고 보니 모두 열일해 온 능력자들이었다.”

‘열일하다’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 낱말이 ‘열 가지 일, 즉 여러 가지 일을 하다’는 뜻이겠거니 생각했다. 이 낱말이 쓰인 문맥을 봐도 그렇고, ‘열 일 제치다’와 같은 익숙한 표현과 대비해 봐도 그렇고, 나로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말샘’에서는 ‘열일하다’를 ‘열심히 일을 하다’로 풀이해 놓았다. ‘熱心히 일하다’가 줄어 ‘熱일하다’로 되었다고 본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열에 일곱은 ‘우리말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래도 나머지 셋의 반응이 날 위로해 준다. 열심히 살아야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으니, 문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열(熱)일’보단 ‘열(十)일’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우리말에서 ‘백, 천, 만’ 등이 많은 수를 대표하는 말로 쓰이듯, ‘열’은 관용적으로 ‘여럿’을 대표하는 말로 쓰였다. “난 열 번 죽었다 깨어도 그런 일은 할 수 없었다.”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지”에서 ‘열 번’은 ‘여러 번’을 뜻한다. 이런 언어 관습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열일하다’의 ‘열일’을 ‘여러 가지 일’이란 뜻의 합성명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열일하다’를 ‘열일을 하다’처럼 쓸 수도 있다. “그는 광고부터 화보 촬영까지 쉴 틈 없이 열일을 하며 팬들을 만나고 있다”에서처럼.

새로운 말을 접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말을 근거로 새말의 뜻을 유추하게 된다. 한 언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유추하는 근거는 대부분 유사하지만, 유추의 근거가 다를 경우 새말을 달리 이해할 수 있다. ‘열일하다’를 이해하는 차이가 그렇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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