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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스마트폰 소외

입력
2017.10.1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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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정한 여행자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여행자란 이것저것을 보고, 맛보고, 느껴보고, 생각해보고자 다니는 사람이지요. 그러니 여행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분명 목적이 있는 것이고, 목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출장을 가는 것과도 다르지요. 출장 가는 길에 잠깐 여수(旅愁)에 젖거나 여행의 즐거움을 즐길 수도 있지만 여행이란 분명 이것저것 보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은 없이 떠나는 겨지요. 이런 면에서 진정한 여행자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얘기를 꺼내게 된 것은 3주 전 강릉을 다녀오면서 모처럼 시간을 냈습니다. 물론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그럴 수 있었지만 다른 때 같았으면 빨리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 중국 출장의 정신적 피로를 씻고 싶어서 부러 고속도로가 아닌 시골국도를 택했습니다. 그랬더니 기대한 바대로 정신적 피로가 씻겼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좋고 바른 생각들이 들어왔습니다. 여행은 분명 정신 세탁의 효과가 있고, 창의적 생각과 힘이 들어오게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은 대전을 다녀오게 되었는데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전날의 여운과 기대도 있었고 여행 중에는 창 밖을 무심히 보는 습관도 있어서 창 밖을 보고 싶었지만 앞뒤 좌우의 모든 사람들이 창의 빛 가리개를 쳐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햇볕이 뜨거워 그랬을까 싶어 둘러보니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 스마트 폰 삼매경에 빠져 있어서 그랬던 거였습니다.

그 작은 스마트 폰 하나가 빛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밖을 보는 것도 막았습니다. 스마트 폰 하나가 그 많은 풍경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니! 스마트 폰 때문에 그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선택권을 뺏기다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작년의 안타까운 경험까지 중첩되면서 안타까움이 더욱 커졌습니다. 작년 가을 젊은 친구들과 함께 연수회를 시골로 다녀왔습니다. 서울을 벗어나자 가는 길 좌우의 산들과 가로수들의 단풍이 화려한 것을 넘어 불타고 있었고,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 무딘 제 감각도 일깨우고, 웬만하면 감탄할 줄 모르는 제 입에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해 저는 같이 가던 친구들에게 ‘야! 창밖을 좀 내다 봐! 너무 아름답지 않니?’하고 저도 모르게 탄성과 함께 동감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졸고 있던 친구들은 잠깐 눈을 떴다가 내처 잠을 이어가고, 스마트 폰으로 무엇을 보느라 깨어 있던 친구들도 잠깐 밖을 봄으로써 제 초대에 조금 성의를 보이고 나서는 모두 다시 스마트 폰 삼매경에 빠져드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도 나와 같이 단풍을 보는 사람이 없다니!’ 그 순간 동감 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그 아름다움을 혼자 본다는 쓸쓸함이 올라오면서 아주 짙은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그래! 그것이었습니다. 스마트 폰 소외감! 나무들은 잎을 떨구며 저물어가는 자기들을 봐 달라고 색깔로 그리 절절히 호소하는데 그 아름다움의 호소가 외면당하니 소외감이 얼마나 클까 하고 나무의 소외감이 공감되면서 저는 사람과는 공감하지 못하고 나무와 공감하고 있다는 슬픔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내 옆의 나무들을 직접 보는 것은 놓치고 스마트 폰에 있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것이고, 교향곡처럼 울리는 단풍의 사운드는 직접 듣지 못하고 스마트 폰이 전해주는 영상을 보며 감상을 전해 받을 겁니다. 가서 볼 수 없는 운동경기를 중계방송으로 보는데, 아름다움도 직접 볼 기회는 팽개치고 스마트 폰으로 받아 보다니!

이번 한가위 명절. 가족끼리 여행을 간 분들도 많고, 고향을 방문하여 친척들을 만나는 분들도 많았을 텐데, 그 같이 기쁘고 즐거워해야 할 자리에서 스마트 폰 소외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옆에 사람 놔두고 멀리 있는 다른 사람과 내내 만나는 그 스마트 폰 소외 말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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