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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한스 치머 공연에… 히스 레저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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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한스 치머 공연에… 히스 레저 추모

입력
2017.10.0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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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병헌이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영화 음악 거장 한스 치머의 내한 공연에 깜짝 등장해 '다크나이트' 음악과 고 히스 레저에 얽힌 얘기를 낭독하고 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배우 이병헌이 7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영화 음악 거장 한스 치머의 내한 공연에 깜짝 등장해 '다크나이트' 음악과 고 히스 레저에 얽힌 얘기를 낭독하고 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영화 음악 거장 한스 치머의 첫 내한 공연에 배우 이병헌이 깜짝 등장했다. 영화 ‘다크나이트’ OST 테마곡 무대에서였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검은색으로 상하의를 맞춰 입은 이병헌은 영화와 곡에 얽힌 이야기를 5분여 동안 차분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그가 찍은 모든 장면은 매우 강렬했고 우리를 압도했다.” 이병헌은 ‘다크나이트’에서 조커 역을 맡아 촬영 직후 200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배우 히스 레저를 추모했다. “레저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캐릭터를 위해 녹슨 면도칼 소리 같은 불쾌한 요소들까지도 그대로 살려 무자비한 성격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방법 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이병헌은 영화 음악 마무리 작업 때 레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작곡 방향을 고민했던 치머의 생각도 대신 전했다.

"마이 프렌드, 병헌 리." 한스 치머는 낭독자로 자신의 공연에 선 배우 이병헌을 이렇게 소개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마이 프렌드, 병헌 리." 한스 치머는 낭독자로 자신의 공연에 선 배우 이병헌을 이렇게 소개했다. 프라이빗커브 제공

치머의 내한 무대를 이끈 공연기획사 프라이벗커브에 따르면 치머가 ‘다크 나이트’ 무대에서 관객들에 들려줄 얘기를 글로 쓴 뒤, 이병헌에게 한국 공연에서의 낭독을 부탁했다. 공연기획사도 치머가 입국한 지난 5일 처음 알게 된, 치머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

이병헌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치머가 이병헌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영화 음악 총감독이었다”며 “이 인연으로 치머 측에게서 연락이 와 무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병헌의 낭독이 끝나자 치머는 “내 친구, 병헌 리”라고 관객들에게 그를 소개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치머는 이날 ‘글래디에이터’를 비롯해 ‘라이온킹’, ‘인터스텔라’ 등 자신이 만든 영화 음악을 19인조 밴드와 국내 오케스트라의 협연 속에 2시간 여 동안 웅장하게 들려줬다. 치머의 내한 무대는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페스티벌 2017’ 일환으로 이뤄졌다. 치머에 앞서선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가 먼저 무대에 올라 재즈 밴드와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영화 음악을 선보였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이병헌이 치머의 내한 공연에서 낭독한 글 전문>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 배트맨 비긴스를 시작했을때, 그것이 결국 세 편의 시리즈물이 될 줄 몰랐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리즈의 제작기간이 12년이란, 저희 삶의 큰 일부가 될 거라는 건 더더욱 몰랐죠. 이 3부작이 여러분들에겐 단순한 영화 세 편으로 느껴지실 수 있지만, 저희에겐 12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린 작품이었습니다.

누구의 인생에서도 12년이란 시간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죠. 이 긴 여정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게 전화로 영화 ‘배트맨’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영화사에선 저희에게 속편 제작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놀란은 본인의 의지나 아이디어가 없이는 절대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란이 제 작업실에 찾아 왔습니다. 그리곤 그는 자기가 요즘 구상하는 매력 있는 캐릭터가 있다며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해 여러 가지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머릿속 조커는 분노에 가득 찬 무질서하고 무자비한 망나니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가장 솔직한, 복잡하고도 매력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그가 조커에 대한 생각을 제게 풀어놓을수록, 이토록 어려운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쉽게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놀란에게 고려하고 있는 배우가 있는지 물었고, 그는 히스 레저라는 어떤 젊은 배우를 제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히스 레저는 조커 역을 맡게 되었고, 그는 놀란이 구상하던 조커캐릭터, 그 이상으로 조커라는 캐릭터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역할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에게 두려움이나 주저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찍은 모든 장면들은 매우 강렬했고 저희를 압도했죠.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치 꿰뚫어보는 것 같았어요. 그의 강렬한 퍼포먼스에 힘입어 영화와 제 음악작업이 마무리 될 쯤, 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당시 저는 패닉에 빠진 채, 그의 캐릭터를 망나니 같이 보이게 하고 냉혹하게 만드는 모든 불쾌하게 들리는 요소들을 빼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죠. 레저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그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캐릭터와 레저에게, 애도와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녹슨 면도칼 소리 같은 불쾌한 요소들까지도 그대로 살려서, 캐릭터의 복잡하고 무자비한 성격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방법 밖엔 없다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놀란이 제게 또 와서는 이왕 하는 거 마지막 편을 하나 더 만들어서 삼부작으로 만들자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저희는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모험을 통해 완성 된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시사회는 뉴욕에서 많은 찬사를 받으며 성대하게 마쳤습니다. 그리곤 연이은 런던의 시사회를 위해 비행기에 곧바로 몸을 실었죠.

아마 아침 일곱시 쯤 런던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이른 아침에 갑작스레 전화가 울렸고, 전화를 건 기자가 뜬금없이 제게 코멘트를 요청하더군요. 그는, 미국 콜로라도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주 작은 도시인 오로라에서, 우리의 영화 상영 도중 일어난 총격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물었습니다. 저희는 밤새 비행기에 있었기에 전혀 소식을 접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 소식을 기자에게 처음 들으며 떠오른 첫 단어이자 유일한 단어인 절망을 그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곤 그 날 하루 종일 이 사건의 피해자들과, 뒤에 남겨진 피해자의유가족들에 대한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자에게 말한 절망이란 단어가, 제가 소식을 접했을 때의 감정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래서 합창단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가사가 없이도 바다 건너 유가족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곡을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고, 그 곡을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계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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