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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제작진 "경영진이 국정원 아바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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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제작진 "경영진이 국정원 아바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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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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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MBC ‘PD수첩’ 제작진인 김환균(왼쪽부터) 최승호 PD, 정재홍 작가가 29일 국정원의 ‘MBC 정상화전략 및 추진방향’ 문건과 관련해 외압을 받았던 정황을 공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제공
전 MBC ‘PD수첩’ 제작진인 김환균(왼쪽부터) 최승호 PD, 정재홍 작가가 29일 국정원의 ‘MBC 정상화전략 및 추진방향’ 문건과 관련해 외압을 받았던 정황을 공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제공

“검사에게 ‘이 문건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지시로 작성됐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웃더라고요. 원 전 원장 차원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문건인 겁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등 권력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관련자는 법적 책임을 꼭 져야 합니다.”(정재홍 작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작성한 ‘MBC 정상화전략 및 추진방향’ 문건과 관련해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최승호 이우환 PD, 정재홍 작가,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위원장인 김환균 MBC PD 등이 28일 오후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사 과정과 ‘PD수첩’에 대한 외압 정황에 대해 밝혔다. 29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한 한학수 PD는 기자회견에 불참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2010년 3월 작성한 ‘MBC 정상화전략 및 추진방향’ 문건과 관련해 26일 최승호 이우환 PD, 정재홍 작가를, 27일 김환균 PD를 각각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를 벌였다. 문건의 지시 내용이 실제로 MBC 내에서 실행됐는지, 제작진에게 당시의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서 국정원의 문건을 접한 제작진은 “경영진이 아바타처럼 문건 내용을 그대로 실행해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PD수첩’ 제작진에 따르면, 문건에서 ‘MBC 정상화’ 추진은 크게 3단계로 나눠 명시됐다. 1단계로 2010년 3월 말까지 ‘간부진 인적 쇄신을 통한 편파보도 퇴출’ ‘좌편향 프로그램 제작진 전면쇄신’을 진행하고, 2단계로 4월부터 연말까지 ‘노조 무력화 및 조직 개편으로 근본적 체질 변화를 유도’한다. 3단계에서 ‘소유구조 개편을 논의해 언론 선진화에 동참’, MBC를 민영화시키자는 계획이다.

이우환 PD는 “문건을 보면 당시 국정원이 우리(‘PD수첩’ 제작진)를 간첩 보듯이 했다”며 “김환균, 유현, 강지웅, 이승준, 오행운 등 이름까지 명시해 ‘PD수첩’은 좌편향 제작진 일색으로 좌파 세력의 해방구로 고착화됐다고 적어놨다”고 말했다. 이 PD는 2011년 ‘남북경협 중단 그 후 1년’ 편에 대한 취재 중단 지시에 항의했다가 MBC 용인 드라미아개발단으로 전보 발령됐으며 2012년 파업에 참여해 3개월 대기 발령을 받았다. 2014년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다가 사측과 갈등을 빚어 스케이트장 관리직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이 PD는 “좌파 PD의 농성장 ‘PD수첩’은 보도본부 산하로 옮기고 헤쳐 모여식 조직개편을 이루고, 시사교양국은 해체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2011년 MBC는 ‘PD수첩’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편성본부로 옮겼고, 그 다음해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했다. 최승호 PD는 “‘PD수첩’을 보도본부로 옮기는 건 지나치게 무리가 발생하니 편성본부로 옮긴 것 같다”며 “과거 KBS에서 ‘추적 60분’이 속한 TV제작본부를 보도본부로 이관한 전례가 있었는데, 그게 사측의 게이트키핑 강화에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해 그런 결정을 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김환균 PD는 문건의 파기 날짜에 주목했다. 김 PD는 “문건이 2010년 3월 2일 작성됐는데, 조사 받을 때 보니 문건 상단에 ‘3월 4일 파기’라고 적혀있었다. 비밀 문서인데 (문서가) 살아있는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며 “그 문건이 김재철 전 MBC 사장에게 전달됐고, 김 전 사장이 숙지한 후 즉시 파기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해 ‘PD수첩’에서 보직해임된 김 PD는 “국장실에서 해임 통보를 받으면서 ‘PD수첩’ 내 반발이 클 테니 최승호 PD는 남겨야 한다는 얘기를 30분간 했다”며 “국정원의 문건을 보니 그 때부터 (경영진이) 국정원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7월 작가 6명과 함께 해고 당한 정재홍 작가는 당시 외압을 받은 일화를 밝히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정 작가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PD수첩’에 팩트체크 팀장이라는 자리가 신설됐는데, 당시 팩트체크 팀장이 정부 비판 아이템은 무조건 ‘킬’시켰다”며 “그 팀장이 이중각 PD의 기획안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국정원 문건에 ‘PD수첩’ 등 좌편향 제작인의 경우 담당 PD는 물론, 프리랜서 작가까지 전면 교체라고 써 있었다”며 “이미 2010년부터 우리는 전원 잘리는 걸로 돼 있었다. ‘PD수첩’의 상징성 때문에 폐지는 못했지만, 정체성을 없애려는 노력이 오늘날까지 계속 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제작진은 국정원 문건을 조사하는 검찰에게 더 적극적인 노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최 PD는 “검찰에 가서 국정원 문건을 보긴 봤는데, 자료가 너무 부실해 실망스러웠다”며 “국정원과 MBC 내 공범자들의 만남 등 세부 기록들이 국정원 서버에 남아있을 테니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서라도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부당노동행위 혐의가 드러난 김장겸 MBC 사장 등 전·현직 임직원 6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8일 밝혔다. 김 사장은 2012년 MBC 파업 이후 노조 활동에 참가한 기자, PD, 아나운서 등에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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