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100일 이상 표류한 끝에 결국 부결되었을 때, 한편에선 환호성이 울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그를 코드인사로 규정하고 줄기차게 반대해 왔다.

부결에 환호한 것은 보수정당만이 아니었다. 개신교계 주류가 김이수 낙마를 목표로 조직적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은 비밀도 아니다. 누구보다 소수자 보호에 앞장서 왔던 그를 종교계가 배척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동성애 이슈 때문이었다.

문제의 계기가 된 것은 구 군형법 92조의 5(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에 대한 위헌소원이다. 당시 헌재는 5대 4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 반대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 중 김이수 재판관의 이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명시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옹호나 비판 의견을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수의견은 ‘그 밖의 추행’이 어떤 행위를 의미하는 것인지, 이성과의 행위도 처벌하는 것인지, 어디에서의 행위를 처벌하는 것인지 등이 모두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이 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다수의견보다도 합당한 데가 있다.

개신교계가 동성애 이슈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지는 오래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9월 22일에서 26일 사이에는 개신교계에서 가장 큰 교파인 장로회 교단의 총회들이 열렸다. 여기에서 그들은 동성애자와 동성애 옹호자의 직분 제한, 신학교 입학 금지, 동성애자 추방 조항 등을 새로 만들었다. (여기서 이뤄진 다른 결정들로는 요가 금지, 마술 금지, 종교인 과세 유예 등이 있다.)

개신교계는 왜 이토록 동성애에 민감한가? 동성애가 성경이 규정하는 금기라는 이유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일부는 이것이 전략적인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소위 국민정서에 위배되는 동성애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기득권을 지키고, 여론을 주도하며, 내부를 단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리와 성 추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개신교계에게 동성애는, 신실한 ‘우리’와 비윤리적인 ‘남들’을 구분하는 아주 편리한 도구일 수 있다.

이건 오래된 폐단 중 하나인 색깔론과 닮았다. 일부를 ‘빨갱이’로 규정하고 그들을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면 ‘빨갱이’로 몰아가던 과거의 색깔론이 힘을 잃어가자, 우익세력이 젊은 세대를 포섭하기 위해 새로운 색깔론을 만든 것이다.

기득권 질서에 부역하는 이 전형적인 방식에 보수정당 또한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대법원장 후보자 표결을 앞두고 동성애ㆍ동성혼 찬반 여부를 사상 검증의 무기로 삼았으며, 결국 반대 당론을 채택했다.

이들의 주장엔 논리나 근거가 없다. “성 소수자를 인정하게 되면 시체 상간, 수간까지 비화될 것”이라는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의 주장은 대표적이다. 외국의 혐오 발언 사례를 왜곡하여 퍼뜨리고, 정신의학계가 한 목소리로 효과가 없으며 유해하다고 말하는 전환 치료를 몇 사람의 증언만으로 신봉한다. 사실 색깔론에서 중요한 건 낙인과 배제 그 자체지, 옳고 그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다시 색깔론이 판치는 꼴을 볼 수는 없다. 늘 비판적이어야 한다. 기계적 균형에 사로잡혀 보ㆍ혁의 입장을 동등한 것처럼 받아들이거나, 김이수ㆍ김명수 임명동의안 때 그랬듯 머릿수 싸움에만 주목해선 안 된다. 과거 구 색깔론에 무비판적으로 어영부영 힘을 실었던 것처럼, 신 색깔론에도 모르는 새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낙인과 배제에 맞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색깔론에 맞서 싸워야 할 때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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