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의 '사상계' 마지막 호(70.5). 사상계는 9월 29일 등록 취소됐다.

월간 교양지 ‘사상계’가 1970년 9월 29일 등록 취소(폐간)됐다. 등록 시점의 인쇄인과 실제 인쇄인이 다르다(신문ㆍ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는 게 취소 명분이었지만, 사사건건 정부를 비판하는 논조가 못마땅했던 게 이유였다 그 해 5월호에 실린 김지하의 담시(譚詩, 이야기 시) ‘오적(五賊)’ 으로 독재정권은 칼을 뺐다.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군장성 장ㆍ차관을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에 빗대 이른 말. 시인은 판소리 어조와 율로 원고지 40여 장에 걸쳐 그들의 죄상을 풍자하고 조롱했다.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로 시작하는 시는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로 이어진다.

“세금 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천원 공사 오원에 쓱싹, 노동자 임금은 언제나 외상…”(재벌)

“혁명이닷, 구악은 신악으로! 개조닷, 부정축제는 축재부정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표 도둑질 성전에로 총궐기하랏!...”(국회의원)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해먹고…”(고급공무원)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 죽는 쫄병들은/ 일만 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지을 재목 갖다 제 집 크게 지어놓고…”(군장성)

당초 책을 전량 수거하는 선에서 일단락 지었던 당국은 야당인 신민당이 기관지 ‘민주전선’ 6월호에 저 시를 재수록하자 뒤늦게 10만여 부 전량을 압수하고, 김지하와 사상계 발행인과 편집장, ‘민주전선’ 출판국장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군법회의는 김지하를 4년 뒤 민청학련 사건과 병합심리, 사형(무기징역으로 감형한 뒤 1년 뒤 형집행정지)을 선고했다. 나머지 셋은 선고유예 판결했다.

‘사상계’는 72년 대법원 등록취소청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정치 탄압에 따른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끝내 복간되지 못했다. 2005년 창간발행인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에 의해 인터넷 매체로 잠깐 복간된 바 있다.

함석헌을 비롯, 유신 치하 저항적 학자 문인들의 숨통 하나가 또 그렇게 막혔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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