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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서 신현확 만난 전두환, 사과의 큰절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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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서 신현확 만난 전두환, 사과의 큰절 올려”

입력
2017.09.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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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확 전 부총리의 회고록을 낸 아들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이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신현확 전 부총리의 회고록을 낸 아들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이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아버지, ‘신군부 사람’이란 오해 늘 억울해 해

최규하, 신군부 지지 받아 대통령 할 걸로 착각

계엄 반대 안한 과오? 당시 상황 몰라서 하는 말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증인이었다.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역사적 격변기에는 그 한복판에 서있던 인물이다. 침묵으로 생을 마감한 지 만 10년, 아들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이 최근 ‘신현확의 증언’이란 책을 냈다. 그를 만나 아버지가 전한 역사의 뒷얘기를 들었다.

_부친께서는 왜 회고록을 내지 않았습니까?

“역사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진다, 내가 내 입으론 말 못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녹음기 들이밀고 ‘그럼 다른 입으로 할 테니 말씀하시라’고 했습니다. 그게 이 책이고요.”

-1980년 봄, 대학가 시위에서 부친은 신군부쪽 사람으로 알려져 타도 대상이었는데요.

“아버지는 늘 그게 안타깝고 억울하다 하셨습니다. 바로 그런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_10ㆍ26 이후 정부의 실권이 신 총리에게 있었기 때문 아닌가요.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장관들이 보고하러 가도 만나주지를 않으니 그 아래 상급자인 아버지에게라도 와서 상의할 수 밖에요. 그러니 바깥에선 신현확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비치고, 신현확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_최 전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요?

“신군부에 업혀서 나중에 다시 대통령을 하려 한 게 아닌가 아버지는 생각했습니다. 1980년 7월30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뜻을 받은 김정렬 전 국방장관이 최 대통령에게 하야를 종용했는데 군부가 자신을 지지한다고 착각한 최 대통령이 “왜 물러나느냐”고 반발했다고 합니다. 결국 군부가 재차 사람을 보낸 뒤에야 물러났죠.”

1978년 1월 보건사회부 순시에 나선 박정희(앞줄 왼쪽) 대통령을 신현확(앞줄 오른쪽) 당시 보사부 장관이 안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8년 1월 보건사회부 순시에 나선 박정희(앞줄 왼쪽) 대통령을 신현확(앞줄 오른쪽) 당시 보사부 장관이 안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펴낸 회고록에서 최 대통령이 김 전 장관을 만났을 때는 이미 하야 결심을 굳히고 상의하려 했던 것으로 신군부 압박은 음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전 장관은 아버지와 자유당 시절부터 잘 알고 지냈지만 최 대통령과는 별 친분이 없었습니다. 최 대통령이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을 만나 그런 내밀한 얘기를 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_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아버지에게 대통령을 제안했고, 그때 “건방진 놈”이라며 호통을 쳤다고 회고록에 돼있던데 미화한 건 아닌가요?

“지금이야 전두환이라면 총칼로 권력을 잡은 강한 인물이라 생각하지만, 12ㆍ12 당시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장군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입니다. 아버지 입장에서 전두환과 노태우는 나이 50도 채 안된, 새파란 투 스타짜리 군인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 막내 동생의 동창이 노태우였고 전두환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거리낌없이 맞담배 피던 관료들의 대부였던 아버지와 갓 사회에 얼굴을 내민 전두환과는 비교조차 안됐습니다.”

_신 총리가 직접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는데요.

“10ㆍ26이 하극상이었고, 신군부가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제거한 12ㆍ12도 하극상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최 대통령을 제거해 대통령이 되는 또 다른 하극상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해 1988년 12월6일 국회에서 진행된 ‘광주청문회’에서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해 1988년 12월6일 국회에서 진행된 ‘광주청문회’에서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_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껄끄러웠겠습니다.

“자신에게 대놓고 반대한 유일한 사람이라 좋지 않게 봤지만 그렇다고 고향의 큰 어른 같은 분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 대통령 퇴임 뒤였으니까 아마 1988년쯤이었을 겁니다. 한번은 골프장에서 아버지와 우연히 마주쳤는데 전 전 대통령이 달려와서는 ‘그 동안 서운한 게 있으셨다면 죄송합니다’라고 깍듯하게 인사하곤 넙죽 큰 절까지 올리기도 했습니다.”

_신 총리는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처음부터 시나리오가 있던 건 아니고 유동적이었던 것 같다고 봤습니다. 10ㆍ26 자체가 우발적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신군부는 12ㆍ12를 통해 군부내 반대파를 제거하면서 권력이 자신들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권력 장악 계획은 그 이후 상황 변화에 따라 굳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정치권과 국민들의 계엄 해제 요구에 신군부는 물론이고 정부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 게 결국 신군부 집권을 도와줬고 신 총리가 비판 받는 부분도 그 대목인데요.

“지금이야 이런저런 상상을 할 수 있는데, 당시 상황에선 황당한 얘깁니다. 1980년 4,5월엔 모든 정치인이 다 자기가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더러 당신이 뭔데 경제정책을 그대로 이어나가냐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연일 도심시위로 경찰은 군대 출동을 수시로 요청했고, 신군부는 불러만 달라고 할 때였습니다. 훗날 어떤 사람은 아니 할 말로 할복이라도 해서 막지 그랬느냐고 하는데, 당시 상황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신 총리가 물러난 건 5ㆍ17 계엄 전국 확대조치에 반발해서였죠?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 계엄법상 내각이 무력화되고 군부가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10ㆍ26 당일 밤 김재규가 국무회의에서 계엄 전국 선포를 요구했을 때 아버지가 유일하게 부분계엄을 주장해 관철한 것도 군부 실권 장악을 우려해서였습니다. 그날로 초법적인 쿠데타가 완성돼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절감한 겁니다.”

-노 전 대통령과는 관계가 좋은 편이었죠?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두 가지 감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어차피 전두환과 한통속이라는 것이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어쨌든 막내 동생의 친구이고, 조언을 자주 구해 도와주고 싶어하기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5공화국 때부터 뭔가 좀 어렵다 싶으면 언제나 ‘어르신 의견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거든요.”

1997년 1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신현확 전 총리가 김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1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신현확 전 총리가 김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6ㆍ29선언과 3당합당에 대한 조언을 아버지가 했다고 회고록에 돼있던 데 사실입니까?

“1987년 4ㆍ13 호헌조치 후 시위가 심해지자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밤 늦게 아버지를 찾아와 ‘제가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어 ‘자네가 살 길은 직선제밖에 없네’라고 정면돌파를 권유했습니다. 3당합당은 노태우 정권 말기 여권에 변변한 대선후보가 없어 전전긍긍하길래 이제 군인도 안되고 여당도 안되니 못마땅하더라도 야당과 합쳐야 하고 다음 대통령은 YS가 되는 게 순리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런데 ‘노태우 회고록’엔 아버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요.

“아버지 얘길 되도록이면 다 뺐을 겁니다. 군부정권의 막후 실세처럼 비치는 걸 질색하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조언은 노 대통령과 테니스를 자주 치던 막내 동생 등을 통해 비밀리에 전달됐습니다. 3당합당 같은 경우 아버지와 YS의 메신저로 저와 YS 아들 김현철씨가 역할을 했습니다.”

대담=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정리=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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