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장애인 처지 이해 못한 기계적 판결 답답”

알림

“장애인 처지 이해 못한 기계적 판결 답답”

입력
2017.09.28 04:40
0 0

갈 곳 없는 지적 장애인 18명

민형사 무료변론 3년간 맡아

구체적 일관된 진술 받기 위해

복지사 배석 통역하듯 조각 맞춰

축사ㆍ타이어 노예 사건도 자원

장애인 사회 인식 변화 땐 보람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염전 노예 사건' 민ㆍ형사 소송을 맡아 진행해 온 최정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이 27일 오전 경기 안산 원곡법률사무소에서 인터뷰를 하며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지난 2014년부터 3년간 '염전 노예 사건' 민ㆍ형사 소송을 맡아 진행해 온 최정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이 27일 오전 경기 안산 원곡법률사무소에서 인터뷰를 하며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도움을 요청 받은 경찰은 지적 능력이 부족한 원고를 보호하고 염전(鹽田)주인의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염주에게 연락해 원고를 다시 염전으로 돌려 보냈다. 원고의 당혹감과 좌절감이 극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부장 김한성) 심리로 지난 9일 열린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들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며 염주와 유착한 경찰을 적나라하게 꾸짖었다. 지적장애인 수십 명이 전남 신안ㆍ완도군 외딴 섬 염전에 감금돼 10년 넘게 강제 노역 당한 사건이 2014년 처음 드러나고 3년이 흘렀다. 현대판 노예사건으로 회자될 만큼 공분을 샀지만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염주 상대 형사 소송을 시작으로, 이들 처지를 알고도 눈감은 국가 공무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기까지 1,227일 동안 묵묵히 이들의 무료 변론에 힘써 온 변호사가 있다. 27일 경기 안산 원곡법률사무소에서 최정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장을 만났다.

“목포노숙인쉼터로 구출된 피해자들을 만났는데 학대와 노동 후유증이 역력했어요. 일부는 탈수 증세가 심해 병원에서 상담을 하기도 했죠.” 최 소장은 처참했던 피해자들의 첫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감금된 한 시각장애인이 염주와 지역사회 눈을 피해 뭍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 한 통을 띄웠고 이 편지가 사회를 뒤흔들었다. 전남청 광역수사대가 나섰고, 염전에 감금됐던 장애인 70여 명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가족이 있는 피해자들은 일찌감치 합의해 쉼터를 떠났고 가족도 갈 곳도 없는 지적장애인 18명만이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남아 있었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민ㆍ형사 무료 변론을 맡았지만 난제가 많았다. 구체적이고 일관된 피해자 진술이 필요했지만 이를 직접 듣는 것조차 어려웠다. “수사 초기부터 피해자를 도와 신뢰가 형성된 사회복지사와 진술조력인을 배석해 통역하듯 조각을 맞춰 나갔어요.” 경기 안산 사무실에서 전남 목포까지 KTX를 타고 왕복 6시간, 한 달에 두 세 번씩 오가며 피해자 말을 듣고 또 들었다.

물리적 거리보다 최 소장을 힘들게 한 건 “장애에 대한 법조계의 뿌리 깊은 편견, 이해 부족”이었다. 2017년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에 인신매매 사례로 실릴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지만 형사소송에서 염주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여기에는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무지가 작용했다.

그는 2014년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선고된 형사 판결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무려 13년간 피해자를 감금한 염주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염주 아들이 쉼터에 있던 피해자를 찾아가 선고 직전 사인을 받고 제출한 합의서가 결정적 양형 사유로 작용했다. 피해자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1급 지적장애인이었다. 사회복지사를 대동하지도, 합의를 뒷받침할 인감 증명을 내지도 않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과 합의해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 의사표시를 했다”고 판시했다. “지적장애인 처지를 사려 깊게 따지지 않은 기계적 판결”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유사 사건에 적용된 혐의도 제각각이었다. 똑같이 염전에 감금해 강제 노동을 시켰는데, 담당 검찰청에 따라 근로기준법 위반, 준사기, 감금죄 등으로 달리 기소됐다. 최 소장은 “수사기관의 의지나 장애 이해도에 따라 사건 진행이 천차만별이었다”고 했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한 민사 소송에서도 지적장애인 노동력에 대한 판단은 최저임금으로, 혹은 농촌일용임금(최저임금의 약 2배)의 60%로 판이했다. “지적장애인의 노동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는 설명이다.

10여 건 넘는 소송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 손에 쥔 건 법원소송구조제도로 지원 받은 1,000만원이다. 최 소장의 보람은 뭘까. 역설적이지만 끝나지 않는 소송이다. 염전 노예 사건 이후 줄줄이 터진 ‘10여 년 축사 노예’, ‘타이어 공장 노예’ 사건을 그가 또 자원해 맡고 있다. 관행으로 넘겨 왔던 일들을 주민들이 신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갈 데 없는 장애인 거둬 먹여줬다. 일이라도 시켜준 걸 감사히 여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염주들 주장에 우리 사회가 “아니다”라고 대답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최 소장은 말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