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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싱가포르 추월 이끈 ‘금메달 3자매’ 국민영웅으로

입력
2017.09.2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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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동남아시안게임서 3위 차지

여자 선수 3명이 금 12개 휩쓸어

자긍심 심고 국민 통합 효과 만끽

축구 요가 태권도 배드민턴 등

생활체육도 발달해 미래 밝아

정부서도 과감한 투자로 지원

축구 대표팀 외국인 코치 12명

사격 유도 등 한국인 감독도 6명

지난달 막을 내린 제29회 동남아시안(SEA) 게임에서 활약한 베트남 여성선수들. 수영에서 금메달 8개를 조국에 안긴 안 비엔(왼쪽부터),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각각 2개씩 획득한 딴 뚜 찐, 띠 후엔. 징닷컴 캡쳐
지난달 막을 내린 제29회 동남아시안(SEA) 게임에서 활약한 베트남 여성선수들. 수영에서 금메달 8개를 조국에 안긴 안 비엔(왼쪽부터),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각각 2개씩 획득한 딴 뚜 찐, 띠 후엔. 징닷컴 캡쳐

지난달 치러진 동남아시안(SEA) 게임에서 베트남은 금메달 58개를 땄다. 주최국 말레이시아와 태국에 이은 호성적. 2년마다 열리는 SEA 게임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에 동티모르까지 더해 11개국이 돌아가며 치르는 역내 최대 스포츠 행사다. 결승전에서 적지 않은 자국 선수들이 뛰기 때문에 SEA 게임은 올림픽ㆍ아시안 게임보다 훨씬 인기가 있다. 2003년 베트남이 대회를 주최했을 때 종합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지만, 3위도 나쁘지 않은 결과이다. 동남아에서는 탄탄한 경제력이 밑바탕이 된 말레이시아와 태국, 인도네시아가 스포츠 강국으로 꼽힌다.

스포츠에 눈 뜬 베트남

대회가 끝난 뒤 베트남에서는 여성 스포츠 스타 3명이 국민영웅으로 등장했다. 58개 금메달 중 12개를 수영의 안 비엔(21), 육상 티 후옌(24), 뚜 칭(20)이 따낸 것. ‘금메달 자매’ ‘베트남의 보배’ 등 언론의 화려한 갈채가 뒤따랐다. 그 중에서도 무려 금메달 8개를 독식한 비엔은 단연 주목을 받았다. 베트남은 이번 대회에 모두 471명을 출전시켰다. 베트남 최대 온라인 매체 징(zing.com)은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없었다면 싱가포르에 밀려 4위에 머물렀을 것” 이라며 스포츠에서만큼은 베트남이 싱가포르를 앞질렀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1,500달러로 베트남(2,300달러)의 22배다.

베트남은 정치적 안정과 연 6% 이상의 경제성장으로 국제사회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나라다. 지금까지 아세안 후발 개발도상국인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와 함께 묶여 ‘CLVM’으로 통칭됐지만 시나브로 이 그룹에서 탈출하는 조짐이 뚜렷하다. 스포츠 분야 성적표를 놓고 보면 베트남은 이미 대열에서 벗어나 말레이, 태국, 인도네시아 등 역내 스포츠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000년 이후 SEA 게임에서 4위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박창건(51)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은 27일 “과거 한국이 그랬듯 베트남도 서서히 ‘스포츠의 힘’에 눈을 떠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국제대회 선전을 토대로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고 통합을 도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은 42년 전 통일을 이뤘으나 전쟁을 치른 남북 갈등은 잠복해 있다. 박 감독은 지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사격(10m) 금메달리스트인 쑤언 빈(43)을 지도했다. 빈은 베트남의 전국구 영웅이다. 박 감독은 “올림픽 이후 ‘베트남의 사격 실력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줘 고맙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등의 인사를 수도 없이 받았다”고 말했다.

경주-호찌민 세계문화엑스포 50여일 앞두고 25일 호찌민시 푸우타 경기장에서 열린 한-베트남 친선체육대회의 한 장면. 주중에 열린 친선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1,200여명의 관중이 몰렸다. 경북도체육회 제공
경주-호찌민 세계문화엑스포 50여일 앞두고 25일 호찌민시 푸우타 경기장에서 열린 한-베트남 친선체육대회의 한 장면. 주중에 열린 친선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1,200여명의 관중이 몰렸다. 경북도체육회 제공

아직은 ‘동네 수준’ 머물러

빈이 베트남에 금메달을 안기기 전 첫 올림픽 메달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나왔다. 여자 태권도(57kg) 히우 응안이 주인공이다. 베트남이 1952년 헬싱키 대회부터 올림픽 무대에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반세기 만의 올림픽 메달이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는 시드니 올림픽(7명)보다 많은 11명의 선수를 출전시키고도 ‘노 메달’에 그쳤고, 2008년 13명이 출전한 베이징 올림픽에는 남자 역도(56kg)에서 안 투언의 은메달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메달은 구경하지 못했다.

강동우(42) 베트남 유도 국가대표팀 감독은 “국제대회 입상을 위해서는 체육 인구의 저변 확대와 국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아직 베트남이 미약한 것은 맞지만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요가 스포츠 댄스 당구 태권도 배드민턴 등 소득 수준에 비해 발달한 생활체육을 보면 미래는 밝다”고 진단했다.

이런 분위기는 25일 저녁 호찌민시 푸우타 경기장에서도 느껴졌다. 오는 11월 열리는 경주-호찌민 세계문화엑스포 홍보를 위한 배구ㆍ배드민턴 경기가 열렸는데, 호찌민시 대표팀과 경북 영천시(배구)ㆍ김천시(배드민턴) 팀 경기에 1,200명이 넘는 관중이 몰렸다. 경북체육회 관계자는 “친선 게임 하나에 이렇게 많은 관중이 들어 찰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마이 바 홍(55) 호찌민시 문화체육관광청장은 “호찌민시에서만 친선 경기를 포함해 연 200회 이상의 대회가 열린다”며 “선수들은 물론 관람객들의 열의도 대단하다”고 말했다.

호찌민 시내 한 당구장에서 한 고등학생이 당구를 치고 있다. 2만5,000동(약 1,250원)이면 1시간 동안 경기를 즐길 수 있다. 당구도 베트남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종목이다.
호찌민 시내 한 당구장에서 한 고등학생이 당구를 치고 있다. 2만5,000동(약 1,250원)이면 1시간 동안 경기를 즐길 수 있다. 당구도 베트남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종목이다.

한국은 스포츠 강국 도약 조력자

뭐니뭐니해도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은 축구다. 월드컵, 올림픽과 같은 국제대회에서는 아직 확실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아세안 회원국들과의 경기에서는 수만명의 관중들이 운집한다. 특히 태국과의 경기는 한일전을 방불케 한다. 하노이에서 고교 교사로 근무하는 레 탄 콩(41)씨는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열강들을 물리친 게 베트남 사람들”이라며 “내색은 않지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7월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K리그 올스타팀과 SEA게임 대표팀 경기에서 베트남 팀이 1대0으로 이기자 하노이 미딩 경기장 일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밤늦게까지 경적을 울리며 ‘자축 파티’가 열렸을 정도다.

베트남 정부가 스포츠 투자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종목별 국가 대표팀을 이끄는 외국인 감독과 코치 숫자로도 증명된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우 역대 코치 26명 중 12명이 외국인이다. 대표팀 감독도 대개 포르투갈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축구 강국 출신들이 맡아왔다.

축구뿐이 아니다. 박 감독과 강 감독이 이끌고 있는 사격, 유도 외에도 펜싱 레슬링 태권도 양궁 등 6개 종목에서 한국인 지도자들이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훈련시키고 있다. 신무협(43) 베트남 펜싱 국가대표팀 감독은 “현지인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많은 비용이 드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베트남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박창건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이 25일 푸우타 경기장에서 대회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에 들어와 있는 많은 한국인 스포츠 지도자들이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박창건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이 25일 푸우타 경기장에서 대회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베트남에 들어와 있는 많은 한국인 스포츠 지도자들이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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