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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롯데마트 관광명소로 키웠는데 빈손으로 나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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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롯데마트 관광명소로 키웠는데 빈손으로 나가라니…”

입력
2017.09.2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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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정책 급변에 당혹

민자역사 귀속 법적 하자 없지만

계약만료 몇 달 전에 전격 통보

전국 최상위권 알짜매장 날릴 판

‘클린 디젤’ 생산 장려하더니

미세먼지 주범으로 강력 규제

롯데쇼핑은 최근 민자역사 정부 귀속 방침에 속앓이하고 있다. 국가에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사업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서울역과 영등포역은 30년 계약으로 올해 만료가 된다. 법적으로 따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조치이지만 롯데는 이러한 결정과 통보가 계약 만료를 앞두고 불과 몇 달 전에 이뤄졌다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서울역점의 경우 원래 운영자인 한화가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점포를 2004년 롯데마트가 재임대해 전국 매장 중 매출 1~2위를 다투는 알짜 점포로 키웠다. 롯데 관계자는 “당시 내부에서 투자 반대 여론이 높았을 정도로 전망이 어두웠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본과 중국에서 홍보에 주력해 ‘서울에 가면 꼭 가봐야 할 명소’로 키웠다”며 “정부가 갑자기 빈손으로 나가라고 할 거면 한화와 임대 계약을 2024년까지로 정할 때는 왜 모른척했는지 답답하다” 말했다. 영등포역사 역시 1991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을 열어 낡은 이미지의 영등포를 대규모 상권으로 되살려 놨다. 이 매장은 연 매출 5,000억원대로, 롯데백화점 전국 33개 매장 중 4번째이지만 역시 빈손으로 떠나야 할 처지다.

자동차 업계는 급변한 경유 정책에 어리둥절하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배출저감장치를 단 경유차에 ‘클린디젤’이라는 명칭을 붙여 친환경차의 범주에 포함하고 생산 확대와 판매를 장려했다. 경유차가 연료 효율성이 뛰어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현대차가 모델별 디젤차 엔진 개발에 각각 약 500억~1,000억원을 투자해 2015년까지 8종의 디젤차 라인업을 완성하는 등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디젤차 분야에 수천억원의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디젤차 판매량도 2010년 국내에서 20%를 밑돌았지만 지난해 47.9%까지 치솟으며 휘발유차(41%)를 넘어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디젤 차량이 질소산화물 등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강력한 규제대상으로 전락했다. 환경부는 기존 유럽연비측정방식(NEDC) 디젤차 배출가스 실험실 측정 방식보다 훨씬 강력한 국제표준배출가스시험방식(WLTP)을 도입하기로 했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오락가락한 정부의 대책으로 당장 디젤차 판매가 어려워진 것은 물론 그간 투자한 돈도 회수하기 어렵게 됐다.

원자력 관련 업체들은 초상집 분위기다. 공사가 중단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의 경우 부지 매입부터 기자재 마련까지 1조 6,000억원을 투입한 삼성물산ㆍ두산중공업ㆍ한화건설은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2014년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 등 신고리 5ㆍ6호기 주기기에 대한 공급 계약을 체결해 이미 원자로 용기 등 주요 기자재를 만드는 작업을 상당 부분 진행했다. 두산중공업의 주기기에 대한 공급 계약 규모는 2조3,000억원으로 공정률이 50%를 넘어서며 1조1,70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건설이 무산될 경우 잔금 1조 1,300억원을 못 받게 될 뿐 아니라 기기 개발에 투입한 R&D 비용, 운영비, 이자비용 등으로 인한 손실까지 떠안게 될 위험이 있다. 업계에선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재개하더라도 두산중공업이 원자력발전소 사업과 관련해 수조원의 시장을 잃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정부 정책을 방치해 생기는 피해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 핵심 과제인 ‘창조경제’가 폐기 절차에 들어가면서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수술이 불가피하지만, 전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아직도 장관을 찾지 못해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삼성, SK, KT 등 전담 기업들도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센터 관련 업무에서 손을 뗀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혁신성장’을 강조하며 “기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활용하되 운영은 민간 중심으로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기업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새정부의 혁신성장도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전 정권의 창조경제의 재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전 정권 정책 처리를 민간에 책임을 지우는 듯한 형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변화가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디젤차 정책 변화로 자동차업계 피해액과 세금낭비 등을 합치면 최소 1조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지적했다. 민간 발전사 관계자는 “외국 기업이 사업자로 참여했다면 국제 분쟁이 생길 수도 있는 사안”이라며 “이처럼 이전 정부 정책을 180도 뒤집어 시장의 불안감을 조장한다면 정부 정책에 맞춰 투자하려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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