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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오래된 관행 ‘밥 총무’ 없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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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오래된 관행 ‘밥 총무’ 없애다

입력
2017.09.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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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선 갑론을박

“업무 시간 중에도 이래라저래라 강압적 문화 폐지 환영”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 사회생활 의전도 배우는데…”

대검, 부드러운 조직문화 방안

이달 말까지 의견 모으기로

검찰 관계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서울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검찰 관계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서울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최근 익명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소속과 이름을 적진 않았지만 발신인이 검사로 추정되는 내용이었다. 핵심은 막내 검사가 도맡는 이른바 ‘밥 총무’ 역할이 부담스럽고 힘들다는 취지였다.

‘밥 총무’는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부장검사나 다른 검사들과 점심, 저녁식사를 할 때 참석 여부를 확인한 뒤 부서원의 메뉴를 정해 식당을 예약하고, 자리를 마친 후 식대로 모은 공금으로 계산까지 하는 역할로, 밥 당번이라고도 불린다. 보통 해당 부서 막내급인 말석 검사가 한다.

이들은 자질구레한 각종 민원과 압력에 시달린다. 주로 검찰청사 주변의 맛집 리스트를 확보해 매 끼니 때마다 식당을 달리 정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선배 검사들이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속이 안 좋은데 이런 걸 먹어야겠냐”거나 “난 못 먹는 음식이니 다른 메뉴를 정하라”는 식이다. 예전에는 오전에 직접 검사실마다 들러 의견을 수렴해 정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검찰 내부 통신망 메신저를 이용해 중지를 모으기도 한다. 해당 편지 작성자는 이 의견 수렴 과정이 번거롭고 품이 들어가는 데다 까다로운 선배들 탓에 힘들다고 하소연한 걸로 전해진다.

박 장관은 이 편지를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 이를 무겁게 받아들인 문 총장은 밥 총무 등 상명하복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 토론해 의견을 모아 보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5월 서울남부지검 소속 검사가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선에서 총장의 일방 지시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형식도 공문이 아닌 업무연락 형식을 취해 토론을 권장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무일 검찰총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선 검찰청이 신속하게 사법연수원 기수나 성별 모임을 통해 의견을 취합한 덕에 밥 총무 관행은 대부분 사라지게 됐다. 해당 부장검사실 실무관이나 검사들이 요일마다 돌아가면서 총무 역할을 하는 등 변화를 꾀하게 됐다. 그런데 검찰 내부에선 여전히 찬반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밥 총무 폐지 찬성론자들은 강압적인 조직문화를 바꿨다는데 방점을 찍는다. 한 평검사는 “막내 시절엔 쉽지 않다고 느끼던 걸 일단 그 일에서 벗어난 뒤 후배들의 애로사항을 잊게 된 것 같다”고 반성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업무 시간 중에도 식사 장소나 메뉴를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까다롭게 구는 선배 검사들이 있어 힘들었다”라며 “업무 외적으로 압박을 느끼지 않는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게 왜 강압적인 문화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어느 조직에서나 누군가는 밥 총무 역할을 해야 하고 막내 시절은 금세 지나간다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으레 해야 하는 일종의 ‘의전’을 배운다 여기면 될 텐데 사소한 잡일로 치부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했다. 또 다른 중견 검사는 “어려운 사건은 선배 검사들이 맡고 있으니, 후배 검사들은 그런 면에선 조금 희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본인들이 선배가 됐을 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의 의견을 내는데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 검사 일을 할 수 있나”라며 장관에게 익명의 편지를 써서 어려움을 토로한 방식을 따지는 검사도 있었다.

대검은 이달 말까지 밥 총무를 비롯해 부드러운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모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검찰개혁위원회 주요 안건 중 하나로 다룰 방침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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