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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꿩들의 극성시대

입력
2017.09.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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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은 사냥꾼에게 쫓기다가 더는 피할 수 없게 되면 머리를 땅에 박고는 안심한다고 한다. 얼굴을 땅에 파묻어서 사냥꾼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사냥꾼이 더는 쫓아오지 않는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니 사냥꾼에 잡히면서 꿩은 모르긴 해도 왜 자신이 잡혀 죽음의 길로 접어든지 도통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본디 세상이 꿩 생각대로 돌아갈 리 없으니 죽음에 이른들 무슨 항변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꿩 입장에선 몹시 억울할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와 얼마나 다를까.

제자백가서의 하나인 ‘여씨춘추’에는 이런 일화가 실려 있다. 진나라 백성 하나가 난리를 틈타 종을 훔쳤다. 당시는 청동이 상당히 귀했던 시절이었다. 하여 짊어지고 도망가려 했다. 다만 종이 너무 커서 짊어질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잠시 후 그는 큰 망치를 구해왔다. 종을 부숴서 가져가려 했음이다. 그런데 망치로 내려치자 종이 크게 울렸다. 순간 당황한 그는 종소리를 듣고 모인 사람들에게 종을 빼앗길까 두려워 얼른 자신의 귀를 가렸다.

우호적으로 보자면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나에게 들리지 않으면 남들에게도 들리지 않는 거라고 믿었음이니 이 얼마나 엄청난 경지인가. 예서 조금만 더 기운을 내면 온 우주마저 자기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염원을 이뤄준다고 한 누군가가 절로 떠오르는 대목이다. 반면 상식에 기초하여 읽으면, 꿩이 들으면 기분 상할지 모르겠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이 꿩과 같은 반열에 든 셈이다. 온 우주에서 신을 제외하곤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러한 생각을 활용한 결과가 꿩이라니 신의 심기가 사뭇 불편할 듯도 싶다.

대문호 루쉰은 수천 년 중국 역사서 목도되는 이런 ‘꿩 되기’ 전통을 ‘아Q’라는 인물형상으로 빚어냈다. ‘아Q정전’의 주인공인 그는 ‘정신 승리법’이라 불리는 기막힌 정신력으로 혼란했던 시절을 살아가던 인물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하루는 꼬마들로부터 조롱과 돌팔매질을 당했다. 그는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도망치듯 거처로 돌아와 짐짓 자책하는 듯싶더니만 이내 활기를 되찾았다. 모종의 ‘정신 조작’ 덕분이었다. 사람이라면 노인에게 돌을 던지는 일 따위는 차마 못할 터, 그 녀석들은 분명 사람이 아닌 게다. 사람도 아닌 것들에게 곤혹을 치렀다고 화를 내면 자신도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 그에게 자책할 일은 애초부터 없었던 셈이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억견(臆見)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듯하다. 특히 힘 있는 이들에게 더욱 힘주어 경고한 이유도 절로 이해된다. 종을 훔치려던 백성 얘기는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꺼림은 그럴 수 있지만, 자기 스스로 듣는 것을 꺼려함은 잘못이다. 군주가 되어 자신의 허물 듣는 것을 싫어함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란 평으로 끝난다.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만사를 바라보면 힘없는 이들은 꿩처럼 강자에게 잡혀 결딴이 나고, 군주같이 힘을 지닌 이들은 진짜 세상을 뜻대로 돌리려다 애먼 백성들의 삶까지 피폐케 하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선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돌리려는 자들이, 아니 자기가 돌리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이들이 활개치고 있다. 함량 미달의 정치인과 언론인이 마구 쏟아내는 막말 얘기다. 자신만이 옳고 자기 생각이 사실이며 세상은 응당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지 않는 한 막말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내뱉을 수는 없기에 하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그들의 언행은 손으로 해를 가리려 하는 아둔함에 불과하지만, 손으로 자기 눈을 가려 해가 보이지 않으면 그들은 정말로 해를 가렸다고 믿으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냥 우기는 게 아니라 진짜 그렇다고 믿는 것이다. 단지 정파적, 경제적 이익 때문에 우기는 거라면 그렇게 치열하고도 일관되게 막말을 해댈 수는 없다. 그들의 막말은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내뱉은 것이 아니라 나름의 ‘정신적 가공’을 거쳐 생산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참된 이큐들이기에 그렇다. 하여 그들은 아큐처럼, 곧 자기중심적으로 국민을 보아 자기가 그렇게 얘기하면 정말 국민도 그렇게 믿는다고 여긴다. 자기 덕분에 그만큼이라도 살게 됐다고 여기기에 국민은 자기를 위해 기꺼이 꿩이 되고 아큐가 되어준다고 믿는다.

“삼인성호”라는 말이 있다. 세 사람이 연달아 호랑이가 온다고 말하면 그렇게 믿게 된다는 뜻이다. 말은 이렇듯 반복하여 쌓이면 듣는 사람을 믿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도 자꾸 거짓말을 하다 보면 결국 자기 거짓말에 넘어가게 된다. 자기가 하는 말을 상대만 듣는 게 아니라 자신도 듣게 되기에 그렇다.

말은 우주에서 신과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말의 가치와 역량은 크고 값지다. 그런 말을 활용해서 기껏 아큐나 꿩 되기를 일삼으니 그 작태가 참으로 딱할 따름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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