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1969년 그룹 모태 미륭건설 창업
운수업 세우며 ‘동부’ 첫 내걸어
1970년대 중동 붐으로 급성장
동부화재 인수 등 사업영역 확대
제철ㆍ건설 부진과 반도체 적자로
계열사 40개 매각 구조조정
재계순위도 30위권 밖으로 밀려
동부하이텍 흑자전환 실적 회복세
동부금융센터 전경/2017-09-22(한국일보)

뚝심의 기업인이 황망하게 퇴장했다. 창사 이래 처음 총수를 떠나 보내는 동부그룹은 크게 술렁였다. 반세기 그룹을 이끌던 총수의 명예롭지 못한 퇴진인데다, 지난 수년간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끝내고 다시 새롭게 도약하려던 때였기에 아쉬움은 더욱 진했다.

동부그룹은 그동안 사용했던 ‘동부’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연내 'DB'라는 새 이름과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준비해왔다. 경영난과 유동성 위기로 한때 그룹 해체 단계까지 내몰렸다 살아났기에 이름까지 바꿔가며 새로운 틀 짜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동부의 새 출발 계획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1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사퇴 발표는 최근 여비서 성추행 파문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고소인의 주장과, 강제성은 없었으며 오히려 고소인이 거액을 요구했다는 그룹 측 주장이 맞서는 상황이지만, 김 전 회장으로서는 수사결과와 상관없이 파문에 휘말린 것 자체가 큰 부담이 됐다.

무한정 사업 확장하다 유동성 위기

동부그룹은 다른 국내 그룹들에 비해 한 세대가량 늦게 출발했다. 김준기 전 회장은 강원 동해시 출신으로 부친은 7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1969년 3선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데 역할을 한 ‘공화당 4인방’ 중 한 명이다.

김 전 회장은 부친과 달리 정치가 아닌 기업인의 길을 선택했다. 김 회장이 처음 뛰어든 사업은 건설업이다. 고려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동부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했다. 자본금 2,500만원에 직원 3명으로 처음 꾸린 회사다.

이후 1971년 동부고속운수를 세우며 처음으로 ‘동부’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청년사업가의 회사는 1970년대 중동 붐을 타고 건설업에서 급성장해 도급순위 10위 안에까지 진입했다. 1980년 중동에서 철수할 때까지 총 20억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는 ‘오일달러’를 종잣돈으로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하는 등 사업 영역을 빠르게 확대해나갔다. 1997년 설립한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를 발판으로 2000년대 들어서 반도체사업에까지 뛰어들면서 금융, 반도체, 바이오산업 등으로 성장동력을 다변화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룹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유동성 위기와 철강 등 업황 악화를 버텨내지 못했다.

동부그룹 구조조정/2017-09-22(한국일보)

세간에 나돌던 동부의 유동성 위기설은 2013년 말 현실이 됐다. 그룹의 성장을 이끌던 제철ㆍ건설업이 크게 부진한 것이 결정타였다. 동부제철은 2010년부터 실적 부진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부제철은 1조2,000억원을 들여 충남 당진에 전기로 설비를 마련했지만, 경기 악화로 손해를 더 키웠다. 그룹의 모태이던 동부건설도 부진의 늪에 허덕였다.

동부의 위기엔 반도체회사 동부하이텍의 만성적자도 한몫했다. 동부하이텍은 2001년 시스템반도체 생산 사업에 진출한 뒤 오랜 기간 수익을 내지 못했다. 반도체 사업 특성상 초기 투자비용이 컸고, 기술 진입장벽도 높았던 데다 반도체 업계 불황까지 겹쳤다. 2000년대 중반 동부하이텍의 부채는 2조3,000억원에 달했다.

2014년부터 그룹은 구조조정에 내몰렸고 채권은행과 피 말리는 작업 끝에 동부건설,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들을 남의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동부건설은 모태기업이고 동부제철은 한때 철강왕을 꿈꾸며 밀어붙였던 사업이었다.

김준기 전 회장은 2015년 초 신년사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며 격한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구조조정으로 그룹 계열사는 2014년 64개에서 지난해 말 24개로 3년 새 40개나 줄었다. 숫자로만 보면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재계 순위도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00년대 초반 10위권으로 진입했고 2005년엔 13위까지 올랐던 그룹이다.

그룹이 이름을 바꾸려는 또 다른 이유는 ‘동부’라는 상표권을 보유한 모태기업 동부건설이 사모펀드 운용사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동부라는 상호를 그냥 사용하려면 매년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

구조조정 이후 동부의 실적은 회복세를 보인다. 동부그룹 반등의 상징은 동부하이텍이다. 그룹 부실화의 주범 중 하나였던 이 회사는 당초 매각 대상이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매각을 면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동부하이텍은 2014년 영업이익 456억원을 기록해 처음 흑자로 전환했고, 2015년 영업이익 1,250억원, 지난해에도 1,72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부채비율도 크게 줄이며 효자 계열사로 바뀌고 있다. 업계는 김준기 전 회장의 오랜 노력과 뚝심이 뒤늦게 빛을 발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현재 그룹 전자사업의 한 축인 동부대우전자가 매각 위기에 놓였다. 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이달 안에 동부대우전자 매각을 위한 비공개 예비입찰이 실시된다. 동부대우전자 지분 45.8%를 보유한 SBI인베스트먼트와 KTB프라이빗에쿼티 등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동반매각권 옵션 행사와 함께 제삼자 공개매각을 추진하면서 동부그룹이 경영권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 것. 그룹은 일단 매각만큼은 막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뜻밖의 총수 부재 상황이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쉽지 않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장남 김남호 상무로 경영권 넘어가나

김준기 전 회장 사임의 후속 조치로 이근영 전 금융감독원장이 그룹의 회장에 선임됐지만 업계의 시선은 김 회장의 장남 김남호(43) 동부금융연구소 상무의 향후 행보에 쏠리고 있다. .

김 전 회장 1남 1녀 중 장남인 김 상무는 2009년 동부제철에 입사해 동부제철 부장, 동부팜한농 부장 등을 거쳤으며 동부 지분 18.59%와 동부화재 지분 9.01% 등을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승계가 유력하다. 그룹 안팎에서는 “김 상무가 언제든 경영 일선에 올라서도 이상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동부그룹 일가는 화려한 혼맥과 인맥을 자랑한다. 김 전 회장의 누나 김명자씨는 국내 최초 치약회사인 동아특산약화학 창업주의 아들 임주웅 전 동부생명 사장과 혼인했다. 김준기 전 회장 본인 역시 삼양그룹 창업주의 손녀인 김정희씨와 혼인했다. 김 전 회장의 첫째 여동생인 김명희씨의 남편은 김평우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론을 맡은 장본인이다. 김 전 회장의 남동생 김택기 전 의원은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의 딸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와 연을 맺었고, 막내 여동생인 김희선씨는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아들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과 부부이다.

아들 김남호 상무는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의 딸 차원영씨와 결혼했고, 딸 김주원씨는 김동만 전 해동화재 회장의 손자 김주한씨의 배필이 됐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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