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환경 인권운동가로 2004년 노벨평화상을 탄 왕가리 마타이가 2011년 오늘 별세했다. greenbeltmovement.org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 1940~2011)는 70년대 말 나무심기 캠페인을 시작해 아프리카 밀림의 수호자로 이름난 케냐의 환경ㆍ인권 운동가로 2004년 노벨평화상을 탔다.

다수 부족 키쿠유 족 출신인 그는 가톨릭 선교재단과 국가의 도움으로 중등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생물학을 전공하고 71년 동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케냐 국립 나이로비 대학에서 동물해부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 교수가 됐다. 여성이 최초로 뭔가를 해내는 과정이 결코 순탄했을 리 없다. 그는 당연히 부족 가부장 체제 하의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는 피츠버그대 대학원 시절 환경운동에 눈을 떴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환경운동은 사회 변혁운동이기도 했다. 그가 1977년 환경NGO ‘그린벨트 운동’을 설립, 밀림 훼손 근절 및 나무 심기 운동을 본격화하던 무렵은 78년 집권한 대니얼 아랍 모이(Daniel Arap Moi, 2002년까지 집권) 독재정권이 국제 개발자본과 이권 결탁을 본격화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의 환경운동은 당연히 반독재ㆍ반기업 운동이었다. 그 일은 벌목 현장이나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들어선 마리화나나 커피 농장 노동자들의 생계와 관련된 일이기도 해서, 사실 그의 대중운동의 대중적 기반은 썩 탄탄하지 못했다. 반면 나무 심기는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진출시키고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인권을 개선하는 노둣돌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의 환경 훼손을 막아 지속 가능한 삶의 공간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저 험한 일을 그는 해직 당하고 투옥 당하면서, 물러서지 않고 투쟁하며 설득했다.

그의 운동은 10년 뒤 범아프리카 그린벨트 네트워크로 성장했고, 그렇게 심은 나무는 이웃 우간다 말라위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등지까지 포함하면 최대 4,500만 그루에 달한다고 한다. 그 작업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는 200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환경운동가의 평화상 수상에 대해 말이 없지 않았지만, 그는 “자원에 대한 지속 가능한 관리를 통해 자원 전쟁도 줄일 수 있다. 환경 보호는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역사에는 인류의 휴머니즘이 더 높은 도덕적 차원으로 도약하는 각성의 시기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서로 희망을 나눠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그는 6년 전 오늘 자궁암으로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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