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중국은 경제정책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분노를 사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는 동안, 독일과 중국은 가장 많은 흑자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의 끝없는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고 통상정책 참모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낮게 억누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미국의 동맹인 독일이 유로화 가치 저평가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미국 교역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은 나바로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본다.

독일과 중국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래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대체할 유력한 국가들로도 꼽혀왔다. 그러나 독일과 중국은 근본적으로 다르고, 둘 중 어떤 나라가 미국을 대신할 수 있을지, 또는 대신하려고 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둘 다 그들의 지도적 위상을 공고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메르켈은 9월24일(현지시간) 총선에서 4연임을 보장할 승리가 기대되고 있다. 이번에 승리하면 메르켈은 헬무트 콜 전 총리의 16년 재임 기록과 같아진다. 메르켈보다 오래 재임한 총리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 재상밖에 없게 된다.

독일 총선 토론에서 메르켈의 ‘이민 개방’ 정책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메르켈의 난민 수용책은 트럼프를 포함한 공격자들로부터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고, 독일 극우세력에게 반사이익을 줬다. 독일 극우세력은 ‘독일의 대안(AFD)’당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연방의회 의원을 배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행히 인본주의에 수호에 대한 메르켈의 완강한 입장이 지지자의 대량 이탈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과 기민당은 2015년 여름 난민 위기 후 선거에서 득표율 하락을 경험했지만, 이제 그 후폭풍도 지나갔다. 메르켈의 난민정책은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녀에 대한 지지를 굳건히 하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메르켈을 ‘대체 불가능한 유럽인’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메르켈 자신이 경고했듯, 그녀에게 글로벌 무대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 가치를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기대하는 건 기괴하고 뜬금없는 일이 될 것이다.

독일은 과거사 때문에 세계무대에서 지도적 역할을 자처하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최소한 유럽 차원에서 메르켈은 4연임을 그녀의 정치적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입지를 세우는 데 활용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향후 선거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협력을 통해 메르켈은 유럽연합 강화의 최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시 주석의 입지 역시 고비를 맞고 있다. 10월 중순, 중국 정치지도자들이 집결한 가운데 열릴 19차 공산당대회의 스포트라이트는 분명히 시 주석에게 모아질 것이다. 시 주석에겐 지난해부터 전임자인 후진타오 주석도 갖지 못했던 공산당 ‘핵심 지도자’라는 지위가 공식적으로 부여됐다.

공산당대회에선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직을 차지할 중앙위원회 위원들이 선출된다. 물론 시 주석의 재선이 확실시 되며, 그 경우 대부분 분석가들은 시 주석이 지금까지 부패와의 전쟁을 통한 정적 숙청작업을 지속하면서 충직한 지지자 그룹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경제가 둔화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더 이상 경제성장에만 의존해서는 중국인들에게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 주석의 부패와의 전쟁은 중국 공산당 입지 강화를 겨냥한 핵심 방안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외교정책에서도 국가주의를 강하게 조성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전통에 따르면 시 주석의 두 번째 5년 임기는 그의 마지막 재임기간이 돼야 한다. 하지만 시 주석이 강화된 입지를 통상적 임기를 넘어 새로운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데 쓸 여지는 여전히 없지 않다. 2022년 이후 시 주석의 역할 역시 아직 아무 것도 알려진 바 없다.

시 주석은 외교정책의 전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으로 초래된 글로벌 리더십의 공백을 보강할 의지가 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미흡한 소프트파워를 키우고, 동맹과 협력 관계를 확대시키지 못하는 한 미국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기 어렵다. 국가주의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집착 역시 글로벌 리더십 구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북한 위기는 트럼프ㆍ시진핑 시대의 미ㆍ중 관계가 치열한 전략적 경쟁이 되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메르켈의 독일이나 유럽이, 그 사이에 개입해 강대국 간의 협력이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개입 여부야말로 앞으로 수년 간 국제질서의 향방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하비에르 솔라나/2017-09-22(한국일보)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