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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 식탁] 사라진 닭 모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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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심야 식탁] 사라진 닭 모가지

입력
2017.09.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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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럽게 구운 통닭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천운영 작가 제공
먹음직스럽게 구운 통닭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천운영 작가 제공

한국을 한두 번 다녀간 스페인 친구들에게 무슨 음식이 제일 먹고 싶냐 물으면, 많은 이가 치킨과 맥주, 치맥을 꼽는다. 그 많은 음식들을 제치고 기름진 닭튀김이라니. 거기다 맥주까지. 아쉬우면서도 일견 이해가 갔다. 치킨 천국 한국에 있는 나 또한 그곳의 통닭구이가 그리우니까. 시골장이나 시장 근처의 오래된 가게에서 팔던 전기통닭구이. 그것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 종종 생각난다.

파프리카 파우더나 각종 향신료 맛 차이도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기름이다.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닭기름. 구우면서 빠진 닭기름을 국자로 퍼서 구운 닭에 다시 뿌려준다. 듬뿍. 일부러 쏙 뺀 기름을 대체 왜? 처음엔 께름칙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기름 맛이 꽤 괜찮아졌다. 짭조름하고 고소하고. 전기통닭구이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한 수라고나 할까? 그 맛에 종종 혼자 달려 가 반 마리를 사 먹곤 했다. 반 마리를 주문하면 주인장이 꼭 물었다. 목 있는 쪽? 아니면 목 없는 쪽? 당연히 목 있는 쪽이지. 닭 모가지는 닭고기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인데.

내가 닭 모가지를 뜯고 있으면 사람들은 묻는다. 그게 뭐 먹을 게 있냐고. 고기랄 것도 없는 닭 모가지를. 사람들 말마따나 닭 모가지는 가장 먹을 것 없는 부위다. 가늘고 기다란 목에서 뼈를 제외하면 살은 얼마 남지 않는다. 발라먹기도 참 애매하다. 손가락도 써야 하고 앞니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까지 애를 쓰고 발라 먹을 맛이냐고? 물론이다. 닭은 살아 있을 때 다리를 움직이는 만큼 모가지를 움직인다. 걷지 않고 가만 앉아 있을 때조차 모가지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래서 근육이 잘 발달했다. 근육이지만 튼실하고 공격적인 허벅지와 달리 보드랍고 순종적인 근육이다. 질척거리거나 푸석거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보들보들 맛있다. 누군가는 양이 적어서 맛있게 느껴지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적은 살을 뜯어 먹는 재미랄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단지 뜯는 재미라면 닭발을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양식 닭발 수프. 게티이미지뱅크
서양식 닭발 수프. 게티이미지뱅크

내 할머니는 닭을 한 마리 잡으면 우선 닭발부터 생으로 좃아서(다져서가 아니라 좃아서) 소주 한 컵과 함께 자셨다. 좃은 닭발 맛의 핵심은 껍데기와 힘줄, 뼈 그리고 약간의 살이 만들어 낸 절묘한 배합에 있다. 그걸 두 손가락으로 집어 혓바닥에 올려놓은 다음, 오물오물 오독오독 굴리듯이 씹다가, 컵에 따른 소주 한 모금으로 입안을 헹구고, 손가락에 남은 짠 기름기를 쪽 빠는 것으로 마무리. 그렇게 몇 번 반복하고 나면,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고 닭도 마침 맞게 삶아진다. 그럼 비로소 닭 모가지를 비틀어 삶은 닭을 먹기 시작한다. 나는 다진 생닭발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닭 모가지에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취향은 나와 식구들이 비슷하다. 그래서 식구들 사이에 종종 닭 모가지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리나 날개나 가슴살이야 대략 분배가 가능한데, 모가지만큼은 나눠 먹기 불가능하니까.

그 누구도 그 모가지를 못 먹었던 적이 한번 있었다. 외할머니가 키운 토종닭이었다. 사위 온다고 마음먹고 고른 제법 큰 닭이어서 원래대로라면 두엇 나눠 먹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아무도 못 먹었다. 닭은 키웠어도 닭은 잡아 본 적이 없는 외할머니 덕분에, 처가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나선 아버지 덕분에, 아버지 역시 닭 잡는 일이 처음인 덕분에. 아버지는 그냥 닭 모가지를 비틀어 죽였다. 닭이 모가지를 덜렁거리며 뛰어다녔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닭 모가지가 조각조각 완전히 부스러져 있었을 뿐, 닭은 잘 삶아 먹었다. 다만 아쉬울 뿐이었다. 사라진 닭 모가지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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