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연동 임금인상 SK이노베이션

이정묵 노조위원장ㆍ이강무 전무

“진정성 갖춘 소통이 협력 원동력, 기본급 1% 상생기부, 최고 성과”

노사 소모적 갈등 큰폭으로 줄여

다른 기업으로 확산 여부 기대

SK이노베이션 이강무(오른쪽) 경영지원본부장과 이정목 노동조합위원장이 노사합의서 조인식에 앞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임금 인상률을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맞추기로 한 SK이노베이션 노사의 새로운 시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매년 관행처럼 반복되는 노사협상의 소모적 갈등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호봉 승급분도 결혼ㆍ육아 등 직원의 생애단계별 자금수요를 고려해 조정하기로 했다. 또 직원이 기본급의 1%를 기부하면 회사도 동일 금액을 기부해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노사가 함께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 등 참신한 시도가 여럿 포함돼 있다. 업계에선 SK이노베이션의 이런 노사협약이 임금단체협상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2일 의미 깊은 임단협 조인식에 앞서 서울 중구 서린동 SK이노베이션 이정묵 노동조합위원장과 사측 교섭책임자인 이강무 경영지원본부장(전무)를 함께 만나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노사 대표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진정성을 갖춘 소통”이 노사협력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 전무는 “회사는 구성원들이 실질적으로 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노조 집행부도 노조원들을 일일이 만나, 눈앞의 임금인상률 보다 중장기적 복리후생과 자기계발에 눈을 돌리는 게 옳은 방향이며, 대기업 노조를 향한 국민의 싸늘한 시선에는 노조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점을 설득했다.

지난해까지만 SK이노베이션 임금협상 과정도 갈등이 심했다. 6개월간 협상을 벌였으나 답을 찾지 못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중재를 신청, 결국 기본급 1.5% 인상으로 매듭지었다. 이번에도 임금체계를 바꾼다는 이야기에 노조원들의 우려와 걱정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임단협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조합원들에게 협상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며 “사측과 잠정합의를 마치자마자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2주간 전국 사업장을 다니며 조합원들에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음을 노사가 공감하고 있었다는 점도 이번 타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본부장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이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노조도 동의했다“며 “기본급 1% 상생 기부를 통해 사회양극화 해소에 기여하자는 내용에 대해 노사 모두 의견이 일치한 점이 이번 노사타협에 최고 의미있 는 성과”라고 말했다. 노조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벗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위원장은 “대기업 노조로서 사회양극화 해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완화, 청년 일자리 창출 등에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높은 임금 인상률 대신 실적에 따른 성과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기본급 1% 기부 상생 방안에 약 74%가 찬성한 점도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인상률을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연동시키자는 생각은 이 위원장의 아이디어였다. 2008년 노조위원장 시절 처음 제안했으나, 매년 4% 임금 인상이 일반적이던 당시에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올해 다시 위원장 후보에 출마하면서 이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경영진이 임단협 과정에서 이를 역으로 제안해 순조로운 타협에 이르게 됐다. 이 위원장은 “지난 10년간 자료를 분석해보니 임금인상률이 소비자물가지수를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임금상승률은 1990년대 정점을 찍고 2000년대부터 점점 내려가는데 대기업일수록 상승률 감소가 심화한다. 이제는 임금 상승에만 매달리지 말고 구성원들의 자기계발, 성취감, 행복감, 퇴직 후의 안정적인 생활 등 직간접적인 복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선 SK이노베이션 노사의 새로운 실험이 정유업계를 넘어 대기업 전체로 확산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이 위원장은 “1980년대부터 이어오는 노사 관계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데 여전히 많은 대기업 노사교섭은 사내문제보다 정치적 구호나 색깔론으로 변질된다“고 지적하며 “사용자가 먼저 노동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보여준다면 노조도 진솔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도 “이 위원장이 먼저 임금을 물가와 연동하겠다고 밝혀 감동했으며, 노조의 교섭력 약화를 우려하는 여론이 있었지만 노조 교섭권을 지속적으로 존중할 것임을 진정성 있게 전달했다”며 “노사간의 신뢰 구축만이 노사문제를 푸는 열쇠이며, 다른 묘책은 없다”고 강조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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