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의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사라. 서울 신촌의 한 대학에 재학중인 미대 3학년생이다. 키 168㎝. 하얀 피부에 코는 작지만 적당한 높이. 대학입시 합격 후 쌍꺼풀 수술을 해서 마치 ‘튀기’같은 외모다. ‘내 몸을 캔버스 삼아 그림 그리는 기분으로 화장하고 옷 입고 액세서리를 걸치는’ 덕에 학교 안에서도 ‘야하기로’ 소문났다. 광고나 영화출연 제의도 받아봤지만 카메라 테스트에서 번번히 실패했다.

사라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순결을 잃었다. 아니, ‘첫 경험’을 했다. 화실에서 입시미술을 가르쳐주던 대학생 기철과 함께. 대학생이 된 사라는 아버지의 미국 발령으로 가족들이 모두 해외로 떠난 뒤 한국에 홀로 남아 대학교수, 50대 남성, 고등학교 동창 등과 ‘자유분방한’ 관계를 즐겼다. 그리고 이름을 세상에 알린 지 2년 만에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의 이야기인 ‘즐거운 사라’가 판매금지됐기 때문이다.

‘사라라는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
연세대 재직 당시 마광수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홀연히 나타났다 조용히 사라진 사라. 그에 대해 말하려면 지난 5일 세상을 뜬 사라의 ‘창조주’인 고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를 빼 놓을 수 없다.

사라를 창조하기 전부터 마 교수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1977년 은사인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시인이 됐고 이듬해 27세 젊은 나이에 홍익대 조교수로 임용된 ‘천재 교수’ 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 교수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성에 대한 솔직한 표현을 주창하고 그 때문에 ‘금지’되고 ‘정지’ 당하면서였다. 그는 연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라는 에세이집을 발간한 뒤 그 해 2학기 강의제한 조치를 받았다. 이듬해 출판한 그의 첫 소설 ‘광마일기’ 역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소설은 필자의 여성편력과 함께 문란한 성행위, 두 부부의 부도덕한 혼음 등 불륜행위를 아무 비판없이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1992년 불교방송의 청소년 프로그램 ‘밤의 창가에서’에 출연해 혼전순결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가 방송위원회로부터 3개월 출연 정지도 당했다.

1991년 세상에 내놓은 사라의 즐거운 생활이 죄가 되면서 마 교수는 그의 말대로 ‘사라라는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 그는 1992년 음란문서 제조 및 판매 혐의로 연대 강의 도중 긴급체포돼 구속기소됐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교수 지위를 잃은 것은 물론이고 사라를 영영 어두운 곳에 가둬야 했다.

1992년 음란문서 제조 및 판매 혐의로 구속된 마광수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라가 끝까지 반성을 안 한다’

‘사라’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검찰의 기소 이유는 이렇다. “변태성행위ㆍ혼음ㆍ동성연애 등을 노골적으로 묘사, 건전한 사회도덕과 미풍양속을 현저하게 해쳤다고 판단된다.” 검찰은 1969년 외설시비에 휘말렸지만 무죄 판결을 받은 염재만의 소설 ‘반노’를 예로 들며 사라의 죄를 부연했다. “’반노’는 남녀간의 맹목적 성행위 뒤에 오는 권태와 허무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내용으로 주제나 표현의 음란성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즐거운 사라’는 전편에 걸쳐 노골적이고 퇴폐적인 성행위 묘사로 일관한다.” 결국 사라와 ‘반노’ 의 차이는 주인공의 자아성찰 여부였다.

2심 재판 때 사라의 음란성을 감정한 이태동 전 서강대 영문과 교수가 감정서에 “사라가 끝까지 반성을 안 한다”라고 지적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전두환 정권이 스크린ㆍ스포츠ㆍ섹스 등 3S를 강조한 우민화 정책으로 사라만큼 ‘야한’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결말에서 죽거나 몰락하는 등 작품 속에서 알아서 ‘교화’됐다. 1985년 영화 ‘어우동’에서 성적 매력을 이용해 양반들을 사로잡은 어우동이 자결로 생을 끝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반성없는 사라’는 남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문제적 캐릭터였다. 번역가 오진영은 “1990년대 마광수가 구속되고 대학에서 쫓겨난 결정적인 이유는 여자 주인공이 자유로운 성 주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인공인 사라가 남자였다면 세간에서 사라의 도덕성 시비와 마 교수에 대한 질타 수준이 사뭇 달랐을 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1992년 11월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문인 및 화가, 연세대 국문과 학생 등 50여명이 모여 마광수 당시 연세대 국문과 교수 구속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손용석 기자.
‘현실에서 사라 같은 사람이 있더라도 처벌할 수 없는데...’

‘건전한 사회통념과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한’ 사라. 결국 사라의 자유분방한 성생활, 마 교수가 이를 솔직하게 표현한 것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 1심부터 상고심까지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었다.

주목할 점은 앞서 소개한 이태동 교수를 포함해 음란성 여부 감정에 참여한 5명의 감정위원 전원이 ‘즐거운 사라가 성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특히 법학자로 참여한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사라’가 음란물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작품을 읽고 충동적 모방심리에 의해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의 행위를 현실적 행동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인물이 될지는 모르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

그렇다면 결국 위험한 것은 소설이 아니라 사라인 것일까. 마 교수는 1994년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재판은 작중인물의 행위를 단죄하고 있는 것인가, 현실에서 사라와 같은 성의 행각(작품 속의 사라는 성범죄를 범한 일이 없다)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처벌할 수 없는 데 작중인물의 행위에 대해서는 작가를 처벌할 수 있단 말인가.” 소설 속 주인공이 살인을 저질러도 작가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는데, 사라는 비도덕적일 뿐 범죄자도 아니라는 것이 그와 동료들의 논리였다.

권명아 동아대 국문과 교수는 “사라 사건의 핵심은 작품의 문학성이 아니라 국가가 사회의 풍속을 통제하려 하는 것” 이라고 밝혔다. ‘즐거운 사라’를 읽는 것, 사라처럼 행동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도덕의 영역이자 개인의 사생활이지만 국가가 법전 어디에도 없는 ‘사회통념’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이를 처벌하고 금지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 비춰보면 마 교수 사건 이후 연극 ‘미란다’와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이 외설 시비에 휘말려 법적 처분을 받고, 최근 육군이 동성애 장병을 색출해 처벌한 것까지 모두 형태만 다를 뿐 같은 맥락의 사적 개입인 셈이다.

그림 5 고 마광수 교수가 1994년 발표한 에세이집 ‘사라를 위한 변명’. 한국일보 자료사진.

25년 동안 자취를 감춘 사라는 마 교수 사망 이후 중고 서점에 다시 등장하며 크게 몸값이 뛰고 있다. 이미 50대 황혼의 나이가 됐을 사라. 그가 이후에도 수많은 애인을 만났을지, 지금껏 즐거웠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사라가 계속 이 사회에 살았다면 마 교수만큼이나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으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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