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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의 마광수 교수, 불화했던 세상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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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의 마광수 교수, 불화했던 세상 떠나다

입력
2017.09.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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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마광수 교수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을 두고 "너무 두들겨 맞은 게 억울하다. 한국이라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마광수 교수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을 두고 "너무 두들겨 맞은 게 억울하다. 한국이라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과감한 성적 묘사가 담긴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와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 등으로 1990년대 사회적 파장과 함께 표현의 자유 논란을 일으킨 작가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5일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66세.

이날 낮 1시51분쯤 마 전 교수가 베란다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마 전 교수가 목을 맨 채 숨진 점을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현장에서는 자신의 유산과 시신 처리를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맡긴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난 마 전 교수는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3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윤동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부터 모교 국문과 교수로 일했다. 1977년 박두진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하고, 이듬해 27세에 홍익대 조교수로 임용돼 ‘천재 교수’라고 불리며 학계의 기대를 받았다. 첫 시집 ‘광마집’(1980)에 지식인으로서의 자괴감,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 윤동주와 상징시학, 놀이로서의 예술을 조명하는 등 연구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면모는 ‘가자 장미여관으로’와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으로 문단에서 ‘에로티시즘의 기수’로 떠오르면서 일반에 잊혀졌다.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수십 년에 걸쳐 그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한 여대생이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교수와 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의 이 소설은 1991년 서울문화사에서 출간됐으나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간행물 윤리위원회 고발로 자진 수거됐고 이듬해 8월 개정판이 청하출판사에서 출간됐다. 그 해 10월 마 전 교수와 장석주 청하출판사 대표가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구속됐고, 같은 이유로 소설은 문화부에 의해 판매금지됐다. 마 전 교수는 강의 중 긴급체포 돼 파장은 더 컸다. 성균관과 유도회(儒道會) 등 6개 유림 단체, 소설가 이문열, 10개 종교단체는 마 전 교수를 구속한 검찰 조치를 환영한 반면, 고은, 김병익, 유안진 등 문인 수 백 명은 ‘표현의 자유 침해와 출판탄압에 대한 문학ㆍ출판인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벌였다.

마광수 전 교수가 1994년 연세대 교수 시절 강의하는 모습.
마광수 전 교수가 1994년 연세대 교수 시절 강의하는 모습.

마 전 교수는 1992년 12월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 구속 파문으로 1993년 연세대로부터 직위해제 됐다. 1995년 대법원 확정 판결로 해직됐다가 1998년 사면 복권되며 복직했다. 우울증 때문에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작년 8월 퇴임했다. 마 전 교수는 해직 경력으로 명예교수 직함을 얻지 못했고 필화 사건 후유증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즐거운 사라’ 개정판을 출간해 마 전 교수와 함께 구속됐던 장석주 문학평론가는 “한국 사회에서 출연하기 힘든 독특한 천재 작가”라며 “마광수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펼친 작가는 보기 드물다. 사회 경직성 때문에 소외되고 따돌림 당했다는 점에서 불운했다”고 평했다. 1985년 12월 연극학 교수와 결혼한 마 전 교수는 1990년 1월 합의이혼했다. 자녀는 없다. 노모는 2015년 별세했고, 유족으로는 누나 조재풍, 조카 한옥미(가톨릭대 작곡과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7호실. 발인 7일. (02)797-4444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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