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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핵무력 완성 김정은과의 게임

입력
2017.09.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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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된 北 핵무력

핵을 핵으로 상쇄할 방안 강구 불가피

그래도 평화적 해결 노력 포기 말아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9월3일 6차 핵실험 실시에 앞서 핵무기연구소를 방문, 이번에 실험했다는 수소탄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9월3일 6차 핵실험 실시에 앞서 핵무기연구소를 방문, 이번에 실험했다는 수소탄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북핵 문제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9월3일 이전과 이후는 질적으로 다르다. “조선노동당의 전략적 핵무력 건설 구상에 따라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한다. 늘 실제보다 성과를 부풀리는 허장성세를 감안하더라도 인공지진 규모 ‘5.7’이 상징하는 북핵 능력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 본토에 도달할 ICBM 개발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미사일 기술 향상 속도에 비춰 시간 문제일 것이다. ICBM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미국을 상대로 전략 핵 게임을 벌이는 수준엔 근접했다. ‘조선노동당의 전략적 핵무력 건설 구상’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듯 김정은의 핵무력 완성 의지는 제재와 압박으로 꺾기 어려운 상수였다. 6차 핵실험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그리 놀랄 일도 아닌 셈이다.

이제 대한민국과 세계는 공식 인정은 못하지만 기술적으로 핵 보유국이 된 북한을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ㆍ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물론 일본 열도를 넘어 최소한 괌까지 타격할 수 있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 운반수단을 갖춘 핵무력 보유국 북한이다. 핵은 어떠한 재래식 군사력으로도 상쇄할 수 없는 비대칭적 절대무기이다. 핵은 핵으로밖에 상쇄할 수 없다. 북 6차 핵실험을 계기로 한반도 전술핵 배치나 독자 핵무장론이 힘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

물론 우리 군이 4일 현무-2탄도미사일과 공군 F-15K 전투기를 동원해 실시한 합동 실사격 훈련 등 첨단 재래식 무기 타격력 과시가 아주 무의미한 건 아니다. 장기 게임에서 외통수 장군을 불러 궁만 잡으면 판이 끝난다.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최고 지휘부를 일거에 제거해 버린다면 상황 끝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른바 ‘참수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북핵을 핵으로 상쇄하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크게 세 가지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자체 독자 핵무장론과 전술핵무기 재배치, 그리고 미국의 확장억지 강화다. 이 가운데 독자 핵무장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대로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커 현실적이지 않다. 전술핵무기 재배치도 간단하지 않다. 미국 동의 여부도 불확실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배치될 주한미군기지 주변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가 불 보듯 뻔하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 정도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핵우산 즉 확장억지 강화가 가장 유효한 방안이다. 확장억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전술핵 배치 효과가 있는 전략 자산 상시 또는 순환배치와 함께 전술핵 현지 배치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다만 명시적인 재배치가 아닌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방식이 될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반드시 핵으로 보복한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세계가 통제 불능의 핵 도미노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절대로 필요한 일이다. 한미 양국이 4일 외교ㆍ국방(2+2) 당국 간 확장억지전략협의체 운영 정례화에 합의한 것은 그런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이제 문재인 정부의 압박과 대화 병행 기조는 끝났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일정부분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노선’의 성과로 문재인의 ‘압박-대화 병진 노선’이 밀리는 형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확장억지 강화나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북한 핵무력을 상쇄한 뒤에는 또다시 게임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 게임의 방향이 전쟁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향해야 함은 당연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 미사일로 태평양 너머 문 대통령의 대화정책을 타격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트럼프가 ‘거래의 기술’로 한국을 패싱한 채 김정은과 엉뚱한 거래를 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지정학적 역학을 외면하고 ‘코리아 패싱’ 등의 용어로 공세를 펴는 것은 ‘자학적 정세관’이다. 한반도 위기가 전혀 다른 국면에 접어든 지금 어리석고 자학적인 정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진영과 정파를 초월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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