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나는 아버지가 공장 노동자라는 걸 부끄러워했다. 가정환경조사에서 아버지 직업을 물으면 회사원이라고 뭉뚱그려 답했다. 그러면서 이래도 괜찮은가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회사원이라고 하면 말쑥한 흰 와이셔츠를 입고 높은 빌딩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줄로 알았다.

그때도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하지만 그 어린이들조차 세상이 정말 그렇게 대우해주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았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차이는 마치 계급과도 같은 것이었다. 드라마의 회사원들은 모두 잘 빠진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서 일했다. 가끔 등장하는 공장은 대체로 억척스런 가난뱅이의 무대였다. 90년대, 아직 노동자의 반이 블루칼라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십 년이 지났다. 여전히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배운다. 하지만 블루칼라의 삶에 대한 주목도는 더 낮아졌고, 이젠 뉴스조차 그들의 이야기를 잘 다루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아주 가끔 호출된다. 누군가가 죽었을 때. 모 공단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두 명이 중태, 기계 고장이 일어나 한 명이 사망, 이런 건조한 문장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잠시 눈을 돌려 슬퍼하고는,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은 채 다시 잊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죽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한 친구가 있었다. 공장에서 화학약품을 다루는 일을 했다. 냉방이 충분하지 않아 푹푹 찌는 공장에서, 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일했다. 요구되는 작업 속도를 맞추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을 일하자 이유 없이 코피가 자주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몇 달이 지난 뒤 그만두었다. 사실 그는 사정이 나은 걸지도 모른다. 그만둘 수 있었으니까. 누군가는 그 공장에서 여전히 아주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일하고 있을 테니까.

수많은 일터에서 안전 절차가 효율상의 이유로 사실상 무시당했으며, 형식상의 안전 교육은 있었으나 제대로 된 현장 관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명백히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임에도, 그 심각성에 비해 턱없이 적은 논의만이 이뤄졌다. 사고가 터져야 겨우 관심을 샀고, 그나마도 금세 사그라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세상은 블루칼라가 놓인 위험을 무시할 만큼 비인간적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공단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공단은 도시 변두리에 뚝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아버지가 일했던 바로 그 공단 근처의, 2층짜리 오래된 상가에서 일을 했다. 공단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이삼 십 분에 한 대씩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면, 그때 비로소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유리된 생활권이 나타났다. 출퇴근에 세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분리되어 보이지 않으니 자연히 관심에서도 멀어진다. 공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최저임금 1만원, 하도급 및 비정규직 문제 해소 등 노동 현안에 있어 멋진 청사진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를 논의할 담론 지형은 몹시 불균형하다. 미디어 종사자에서 SNS의 호사가들에 이르기까지, 담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 및 수도권의 중산층 화이트칼라다. 자연히 담론도 그에 맞춰 형성되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주목 받는 건 공단의 작은 공장이 아니라 서울의 PC방과 편의점이다. 노동권 문제에 있어 화이트칼라는 저만치 나아가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블루칼라는 답보에 놓여 있다. 노동자들은 하나로 묶기엔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으나, 우리는 더 절박한 목소리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만을 공유한다. 희미해진 블루칼라의 이야기를, 우리는 일부러라도 더 찾고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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