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는 당연히 영혼이 없다. 나무인형이기 때문이다. 인형이 영혼을 지니게 되면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 된다. 반면에 인간에겐 영혼이 당연하게 있다. 하여 인간이면서 영혼이 없게 되면 마찬가지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좀비처럼 말이다.

요즘 교육부의 모습을 접하다 보면 ‘영혼 없음’과 ‘피노키오’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근자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줄곧 그래왔다. 그래서 대학원에 갓 입학했을 즈음 접했던, “교육을 망침으로써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려는 뭔가 큰 그림에 의해 교육부가 돌아가는 듯하다”는 선배 학자의 자조가 잊히질 않는다. 잘해야 음모론 정도일 말임에도 ‘영혼 없는 피노키오’가 연신 출몰한 까닭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근자에 이슈가 된 정책만 봐도 그렇다. 현행 수능 개편을 두고 교육부는 전 과목 절대평가와 일부 과목 절대평가란 두 안을 내놓았다. 수능 개편은 응당 고교를 포함한 중등교육 전반에 대한 개혁과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함에도 개편안의 초점은 온통 대입에만 맞춰져 있다. 여전히 대입을 위한 중등교육이란 기존 패러다임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교육부는 어찌됐든 발표한 두 안 중 하나로 하겠다며 특유의 몽니를 부렸다. 거센 비판이 일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상황을 자초했다. 영혼 대신에 관성과 헛된 권위가 작동된 결과다.

지난 9일 공고된 ‘인문한국플러스(HK+) 지원 사업’도 그렇다. 공고를 전후하여 줄기차게 제기된 주요 문제는 인문학 진흥이라는 사업 성격 자체에 대한 교육부의 몰이해와 철학 부재였다. 이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난 10년 간 대단위 자금을 투입하여 양성한 인문한국 사업단에 대한 지원을 일률적으로 끊고 신규 사업단을 새로 지정하여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이는, 교육부가 10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대규모로 인문학 진흥 사업을 수행했음에도 자신들이 뭘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영혼이 주로 실종되어 있었기에 초래된 사태다.

그래서인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피노키오 노릇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관련 학계는 물론 언론 등이 교육부의 약속 위반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국정조사 감이라며 목소리를 높여도 교육부는 처음부터 10년 지원이 전제됐던 ‘일몰사업’ 운운하며 사태 해결에 미온적이다. 2006년 교육부가 공고한 인문한국 사업계획서에다가 “향후 30, 40년 동안 사회 장기전망 아래에서 10년 동안 수행할 아젠다를 정하라”고 명기했음에도 말이다. 교육 정책은 물론이고 연구 진흥 정책도 수립과 집행 시, 무엇보다도 중장기적 전망과 일관성의 견지가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영혼을 지닌 이들에겐 너무도 자명한 이 이치를 무시하고 우스꽝스런 코만 키우고 있음이 오늘날 교육부의 자화상이다.

마침 대통령은 지난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서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못돼도 “공직자는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한 봉사자”라는 영혼만큼은 잃지 말아야 하는 기본을 환기한 셈이다. 이는 특히 중등교육 개혁에 더욱 절실하다. 중등교육 개혁은 수능 같은 대입 제도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등교육 생태계 전반에 대한 혁신이어야 되기에 그렇다. 지금처럼 교육 개혁 운운하면서 대입으로부터 중등교육의 독자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구현할 것인지가 고려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게 된다. 한마디로 중등교육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혼의 힘이 필수 불가결하다. 익히 경험해왔듯이 틀을 바꾸고자 하면 관련 기득권 세력과 관성에 젖고 현실이 편한 당사자들로부터 야기되는 저항과 몽니가 거세기 때문이다.

하여 당장은 수능 절대평가제의 전면적 시행이 목표지만 이를 중고교 평가 전반에 걸친 절대평가제로 이어가고, 중등교육의 근간을 자율적이고 자족적 삶을 펼쳐내는 데 요청되는 역량 중심으로 재편해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관련 당사자들의 용단과 헌신이 요청된다. 교육 선진국처럼 ‘체계적으로 구조화한 동서고금의 좋은 책들의 집합’으로 주요 교과서를 대신하고, 중등교육은 중등교육 생태계에 일임함으로써, 예컨대 대입용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자격 시험을 시행하는 등 자족적 중등교육 생태계를 건설하기 위해선 살아 움직이는 영혼의 분발이 필요하기에 그렇다.

그 누구보다도 교육부가 영혼을 지녀야 하는 까닭이 이것이다. 이 녹록치 않은 과업을 중장기적 전망과 일관성을 가지고 추동하려면, 지금 우리 구조에선 결국 교육부가 가장 선진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결국은 기존 3권 분립에 교육을 더한 ‘4권 분립’ 체제를 적극 도입해야 하는 가까운 미래, 교육부의 존립 이유를 교육부 스스로 입증해 가야 되기에 그렇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교육’과 ‘영혼 없음’ ‘거짓말’은 결코 결합될 수 없기에 더욱 더 그렇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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