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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큰 믿음과 작은 믿음

입력
2017.08.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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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인 제가 믿음에 대해서 얘기한다니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얘기하려나 보다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오늘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보다 우리 인간 삶에 꼭 필요하고, 모두에게 필요한 믿음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감이란 한자어가 ‘自信感’이니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거나 스스로를 믿는다는 뜻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는 것마다 다 실수를 했는데 어떻게 자기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기에 대한 믿음이 작은 사람, 다시 말해서 작은 믿음의 사람은 자기를 믿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고, 반대로 큰 믿음의 사람만이 자신감이 있습니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해도 거듭 너는 ‘할 수 있어!’라고 믿어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 큰 믿음이지요. 그래서 작은 믿음은 작은 실수와 실패 때문에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하며 인생 전체를 실패케 하는데 비해 큰 믿음은 큰 실수와 실패도 ‘까짓 것’하며 ‘이런 실수를 하였으니 이제 다시는 그런 실수 하지 않을 거야!’라고 자신에게 말할 것이고, ‘이제는 더 잘 할 거야!’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큰 믿음의 원칙은 남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남을 크게 믿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 출가하여 그런 경험이 별로 없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는 큰 믿음에서 비롯되는 행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딸이 직장에 갔다가 와서 엄마에게 온갖 짜증을 부리고 조금이라도 나무라면 막 대듭니다. 예의 없는 것 같은데 실은 믿는 것이고, 크게 믿는 것입니다.

직장에서는 한 소리 듣고 그 불만을 그 당사자나 다른 동료에게 말했다가는 직장에서 잘리거나 왕따 당하니 억지로 참습니다. 그것을 집에 가지고 들어와 엄마에게 온갖 짜증을 다 부리는데 그래도 엄마는 다 받아준다고 믿기에 짜증을 그렇게 부리고, 덤벼도 내쫓기지 않을 거기에 덤비는 겁니다. 허물이 많아도, 큰 잘못을 범해도 다 품어줄 수 있을 정도로 엄마의 사랑의 품은 크다는 것을 엄마 품에서 자란 딸은 알고 있는 것이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믿음은 부모와 자식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살아온 삶을 통해서 어느 정도 큰 믿음이 형성되어 있지만 형성된 믿음이 전혀 없는 생판 모르는 남남 간에도 큰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이발소가 있는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면도를 여자가 해주는 이발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발을 하고, 면도를 하는데 다른 곳의 면도를 다 한 다음 목 부분을 면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내 아무 생각 없이 면도를 해왔는데 그날따라 ‘내가 뭘 믿고 이 여자에게 내 목을 맡기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습니다. 그 여자 분이 부부싸움을 하고 나와서 아직도 화가 나 있다면. 그리고 생긴 것이 제가 그 사람을 닮았다면 어떻게 될까. 순간 착각을 하고 제 목을 면도날로 그으면 나의 목의 숨은 바로 끊어지는 건데 내가 뭘 믿고 이 여자에게 내 목을 맡기고 있지?

그 후에도 제 목을 맡기면서 저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고, 그래서 아무도 못 믿는 것 같지만 모두를 믿고, 크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돌아가는 것입니다. 실상 아무도 믿을 수 없고, 그래서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집 바깥도 나가지를 못할 것이고, 작은 믿음의 사람도 여간 해서는 누구와 뭣을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 큰 믿음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정부가 국민을 크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성공하는 정부가 되려면 정부가 먼저 국민을 크게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 평화를 빕니다. 김레오나르도 형제 드림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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