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추몽(一場秋夢)이었다. 그러나 그 꿈의 여운은 아직도 나에게 짙게 남아있다. 나는 2015년 9월 1일부터 4일까지 베이징에 머물면서 국제여유반점에서 열린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시스트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국제학술토론회’에 참석하고 천안문광장에서 거행된 ‘열병식’을 참관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학술기관이 초청했다.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게 좀 께름칙하여 참석할까 말까 한참 망설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좋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역사관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는 중국의 당·군·정을 대표하는 역사문제 책임자가 잇달아 등단하여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전쟁 승리’의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중국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공산당의 현명한 전략과 지도, 공산당군의 용맹한 전투와 공작 덕택이라는 요지였다. 공산당군이 일본군의 주력을 대륙에 묶어둠으로써 연합군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했고, 공산당이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전쟁’을 주도함으로써 중국의 국제위상이 세계 4대 강국 수준으로 높아졌으며, 이 전쟁을 통해 중화민족이 부흥의 기초를 닦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당·군·정 역사문제 책임자들은 시종 확신에 찬 어조로 역설했다. 서로 한 치의 견해 차이도 없어 오히려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들은 국민당의 역할이나 국민당군의 전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소련과 미국의 협조에 대해서도 조금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동북항일연군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세계의 평화공영을 다지는 교훈을 얻기 위해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전쟁 승리’를 강조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다음날 ‘열병식’에서 시진핑 주석도 같은 골자의 연설을 했다.

나는 이틀 동안 그들의 연설을 열심히 들었다. 그렇지만 사실과 어긋나는 내용과 평가가 많아 마음은 편치 못했다. 내가 그럴진대 타이완에서 온 원로 역사학자는 오죽했겠는가. 더구나 그는 국민당의 거물 인사였다.

나는 그에게 중국이 강변하는 역사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거리낌 없이 답변했다. 일본이 패전한 후 사회당 대표가 중국을 방문했다.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 일본이 군국주의 침략전쟁으로 중국에 피해를 입힌 것을 사죄했다. 마오쩌둥은 사죄할 필요 없다, 오히려 일본에 감사한다고 맞받았다. 논리는 이랬다.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이 없었으면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공산당군을 철저히 탄압했을 것이다, 국민당군이 일본군과 혈전을 벌이는 동안 공산당군은 힘을 길렀다, 국민당군이 일본군과 싸우다 지친 틈을 타서 공산당군은 세력을 확장했다, 국공내전에서 공산당군이 국민당군을 무너뜨리고 대륙을 차지한 것은 일본군의 침략 덕분이다, 게다가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이 일본의 관동군에게서 빼앗은 첨단무기를 공산당군에 넘겨주었다, 그러므로 중국공산당은 일본군에 이중으로 감사해야 한다.

타이완의 원로 역사학자는 덧붙였다. 국민당군의 부패가 민심을 공산당군 쪽으로 기울게 만든 측면이 있다. 그렇다 해도 일본군과 싸워서 승리한 것은 분명히 국민당군이다. 연합군에 가담하여 싸운 것도 국민당군이다. 연합국의 대표로 카이로회담에 참석한 사람이 바로 국민당의 지도자 장제스 아닌가. 그런데 지금 중국은 공산당이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전쟁 승리’의 주역이라고 선전한다. 타이완의 원로 역사학자는 내가 알아듣기 쉽도록 일화를 들어 설명하면서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베이징에 체류하는 동안 틈나는 대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중국 당·군·정의 역사관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파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텔레비전 채널은 사흘 내내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전쟁’에 관한 영화, 드라마, 가극 등을 방영했다. ‘동방주전장’ ‘팔로군’ 등은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공산당이 모든 전투를 지도하고 수행함으로써 승리했다는 줄거리다. 여기에 중국국민당도, 미국도, 소련도, 한국도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었다.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2015년 9월 2일과 3일 베이징의 공기는 거짓말처럼 깨끗해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따사로웠다. 소문에는 ‘토론회’와 ‘열병식’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베이징 내외의 공장과 자동차를 쉬게 하고 날씨마저 인공강우로 조절했단다.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전쟁’도 이 햇볕에 바래 중국공산당의 승리사관으로 둔갑한 것일까. 절묘하게도, 주요 행사가 끝난 4일 아침부터 베이징에는 비가 내렸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청명한 가을날에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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