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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트럼프와 김정은을 위한 기도

입력
2017.08.2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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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한반도 위기 높이다 긴장완화 제스처

한미연합 군사훈련 후 대화국면 전환 기대

두 사람 미친 게 아니고 천재임을 입증하길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치기 한 사진. 최근 트위터에 올라와 많은 웃음을 자아냈다. 트위터 사진 캡처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치기 한 사진. 최근 트위터에 올라와 많은 웃음을 자아냈다. 트위터 사진 캡처

며칠 전 트위터에 은발머리 트럼프와 짧은 검은머리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을 서로 바꿔치기 한 얼굴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김정은이 더 멋있어 보여 트럼프가 손해 본 것 같다는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충동적이고 예측불가능 하기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두 사람은 최근 말 폭탄을 주고 받으며 한반도 전쟁 위기 지수를 한껏 끌어올렸다. 한 순간에 인류사 최대 참사가 벌어질지 모를 긴박한 상황인데도 어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두 사람을 놀이의 소재로 삼는다는 게 기막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벌이고 있는 게임은 아슬아슬하지만 유유상종이라고 서로 뭔가 통하는 게 있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시절인 2015년 김정은에 대해 “미쳤거나 아니면 천재”라고 촌평한 바 있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남북 포격전으로 한반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된 때였다. 트럼프는 그 뒤에도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회담하고 싶다” “김정은을 만나면 영광이다” 등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발언을 심심치 않게 했다.

김정은이 트럼프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은 있다. 김정은은 미 프로농구(NBA) 스타 출신으로, 트럼프와 친분이 깊은 데니스 로드먼을 여러 번 평양으로 불러 들였고 그로부터 트럼프의 저서 ‘거래의 기술’을 선물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 또 한 사람의 악동으로 꼽히는 로드먼의 오버일지 모르지만 김정은도 그를 통해 트럼프에 대해 모종의 호감을 갖게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북한이 괌 포위 사격을 유보하기로 하자마자 트럼프가 즉각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상당히 이성적인 결정을 했다”고 칭찬하고 나선 것도 이채롭다. 바로 직전까지 “화염과 분노” “군사적 옵션 장전” 등 세계를 아연케 한 초강경 발언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를 극대화했던 그였다. 하지만 마치 김정은의 유보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기고 나선 것이다. 물론 “어리석고 미련한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더 지켜볼 것”이라는 김정은의 거친 언사에 비춰 트럼프가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매년 한반도 위기를 한층 증폭시키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군사연습이 비교적 차분하게 시작된 것은 김정은과 트럼프가 주고받은 긴장완화 제스처 덕분이다. 지난해에는 북한이 이 훈련기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을 하고 이어 정권수립일인 9월9일 5차 핵실험을 감행하는 바람에 한반도에 극도의 긴장이 조성됐다. 그런데 이번 훈련에는 미군 참가 병력이 7,500명이나 줄면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한미 군당국은 애써 의미를 축소하지만 북한이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이달 말 훈련 종료와 함께 대화 국면 조성 기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군 장성 출신 참모들이 한반도 전쟁의 재앙적 사태를 경고하며 분별력 있고 냉철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비핵화 없이 대화 없다는 강경 입장이던 미 국무부는 최근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동북아 안정 저해 언행 중단 등 북한과의 대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김정은이 조금만 더 자제하고 분별력 있게 처신한다면 극적인 국면전환도 기대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북한의 핵 능력보유는 이제 거의 상수가 됐다. 미국 조야에서도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ICBM완성과 핵탄두 탑재”를 레드라인으로 본다고 답변한 것도 이런 흐름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북한 핵을 어느 수준까지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놓고는 우리 국민만 아니라 주변국들 사이에서도 첨예한 갈등이 불가피하다.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다”는 문 대통령의 대국민 다짐은 신성하지만 방법은 너무 어렵다. 제발 김정은과 트럼프가 미친 게 아니라 천재이기를!

논설실장 wkslee@hank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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