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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딸의 이혼 앞에서도 관심과 동정을 바라는 엄마

입력
2017.08.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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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모성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의심을 하게 될 줄 저도 몰랐습니다. 저는 1남 1녀의 엄마이자 아내, 딸입니다. 남편과 성격 차이로 이혼 소송 중이지만, 지금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편집증적인 시어머니도, 그를 두둔하는 남편도 아닌, 바로 어머니에요. 제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인, 모두가 동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딸이 20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려고 하는 이 순간까지도요.

어릴 때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엄하셔서 제겐 늘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엄마는 무섭진 않았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탓에 침울하고 차가운 편이었어요. 항상 관심을 받고자 애를 썼지만 ‘귀찮다’는 말을 자주 들었죠. 쓰러진 척하고 마당에 누워있다가 혼자 일어나 집안으로 들어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차라리 엄마가 자식에 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여성이라면 좋겠어요. 문제는 엄마가 끊임 없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자기 앞의 악당을 물리쳐주는 만능 해결사를 원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설령 자식이라 할지라도 연을 끊어 버려요. 엄마가 큰 오빠와 의절한 지도 벌써 10년이 다 돼갑니다. 오빠네가 풀려고 해도 사과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금껏 안 보고 있어요. 그때도 제가 올케를 함께 욕해주지 않는다고 얼마나 원망을 들었는지 모릅니다.

엄마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 자신의 상황이 첫 번째였어요. 큰 오빠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할머니가 돼서 슬프다”며 본인 감정을 추스르느라 병원에도 가지 않으셨어요. 제 결혼식 땐 제가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를 떠나면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린다”며 두고두고 비난하셨죠. 제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는, 자식들 다 소용 없다며 가족사진도 버렸다고 하시더군요. 심지어 호스피스에 입원한, 엄마의 사촌동생 병문안을 가서 도리어 위로의 말을 듣고 오는 모습을 볼 땐 환멸까지 느꼈습니다.

제가 미국에 온 뒤로도 통화의 대부분은 험담이에요. 아버지, 큰 오빠, 작은 오빠. 엄마를 사랑하고 동정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엄마의 적입니다. 작은 오빠가 엄마에게 손을 벌렸다고 욕을 하면서 “차라리 모르는 사이면 좋겠다”고 했을 땐 모성의 존재 자체를 의심했어요.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도 있는데, 제 엄마는 아픈 손가락을 외면하고 싶은 거잖아요. 이런 것도 모성인가요.

이런 의심은 최근 이혼소송을 겪으면서 절망으로 변했습니다.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엄마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한국에 올 거냐”는 거였습니다. 제가 와서 엄마를 위해주길 바라시는 거죠. 아직 생각 안 해봤다고 하니 “거기까지 끌려갔다가 이혼까지 하고도 남고 싶냐”고 하시더군요. 왜 그런 말로 딸을 비참하게 하시는지… 그때 제가 느낀 건 딸의 불행을 슬퍼하는 모성이 아니라 발 빠른 계산속이었어요. 제가 엄마의 마음을 왜곡하고 있는 걸까요.

예전엔 아버지에게 사랑 받지 못한 엄마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엄마도 너희 때문에 참고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어요. 그러나 제가 이혼을 겪고 보니, 엄마가 이혼을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어요. 오로지 피해자가 되고 싶어서요. 몇 년 전 할머니를 만난 제 딸이 “엄마, 할머니는 불쌍한 사람이고 싶은 거 같아”라고 하더군요. 웃으며 엄마에게 이 말을 했더니 정색을 하며 아이에게 “00아, 할머니는 고독사하게 될 거야. 할머니한테는 아무도 없어”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된 상태입니다. 아침은 꼭 생식으로, 좋다는 영양제는 다 챙겨 드셔서 일흔 중반이 넘으신 나이에도 건강하세요.

엄마가 바라는 건 뭘까요. 엄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흐르는 딸일까요. 괴로운 건, 그런 딸의 모습으로부터 제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겁니다. 엄마가 되면 자기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저는 어째 점점 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네요.

곽정미 (가명ㆍ49세ㆍ간호사)

모성이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흔히 위대하고 숭고한 감정을 떠올리죠. 모든 걸 품어주고 희생하고 배려하는 모성은, 분명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본능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낳은 순간부터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성숙도와 깊이는 부모의 인격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정미씨의 엄마는 미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입니다.

정미씨는 엄마의 자기중심적인 태도의 원인을 아버지와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에서 찾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개념, 타인에 대한 태도, 어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일관된 방식, 즉 인격은 이론적으론 만 18세 무렵에 기틀이 세워집니다. 인격이 평생에 걸쳐 변화하는 경우는 오히려 흔치 않아요. 정미씨의 엄마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나 남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매우 일관된 특징을 보이고 있어요.

손주가 태어났을 때 기뻐하기 보다는 자신의 늙음에 대해 슬퍼하고, 딸이 이혼을 했을 때 함께 울어주기 보단 자기에게 올지 안 올 지부터 생각하죠. 모든 상황을 본인 감정에 맞춰 임의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합니다. 이건 성격이 아닌, 그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인 인격(personality)에 속하는 문제예요.

엄마가 받고자 하는 관심 또한 매우 유치한 수준입니다. 서로의 인생에 관심을 기울이고 같이 아파해주는, 성인과 성인 간에 오가는 무르익고 성숙한 관심이라고 볼 수 없어요. 무조건 편들어주고, 대화의 중심엔 늘 자신이 있어야 하고, 남의 고통보다 자기 손에 박힌 가시에 더 많은 동정을 바란다는 건, 한 마디로 성숙하지 못한 인격입니다. 성인기부터 중년기, 장년기, 그리고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비례할만한 인격 구성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여요. 그러므로 이건 정미씨 엄마의 문제입니다. 자식들이 더 많이 이해해준다거나, 더 많이 효도한다고 해서 절대로 엄마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가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 정미씨에게 필요한 건 엄마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채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마음을 그릇에 비유한다면, 그 그릇을 자기 자신으로 꽉 채운 엄마와 달리, 정미씨는 그릇의 절반 이상을 남에게 내어주는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엄마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그런 면모를 느낄 수 있어요.

정미씨의 이타적인 성격은 분명히 좋은 것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죄책감에 짓눌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딸로서 엄마가 원하는 관심을 주지 못한 것, 자녀로서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것,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거죠.

정미씨는 모성을 희생과 배려가 포함된 가장 고차원적인 사랑으로 규정하고, 엄마에게 그런 모성이 있는지를 의심하고 있어요. 너무나 합당한 의심이지만, 미성숙한 인격과 자녀에 대한 사랑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성숙한 부모도 자식을 사랑해요.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고차원적인 모성애까지 다가가지 못할 뿐이에요.

모성을 인류 최고의 가치로 규정하고, 그것을 엄마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 자식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순간, 정미씨의 존재가 위협 당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받는 모성조차 받지 못한,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폄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정미씨 엄마의 사랑이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이 아니었던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한 건 당신이 부족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엄마의 인격이 거기까지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얘기는 이제 죄책감을 내려놓으시라는 겁니다. ‘내가 좀 더 잘 했으면 엄마에게 사랑 받았을까’ ‘더 많이 효도했으면 엄마가 행복했을까’, 본인의 선을 넘는 이런 생각을 털어내시라는 거에요. 이건 정미씨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지금 정미씨는 특히 위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문제에서 눈을 돌려 스스로에게 몰두하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마 미련이 많이 남을 거예요. 부모와 자식 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충분히 이해하지만, 엄마에게 가진 기대와 바람을 잘 정리하셔야 해요. 연을 끊으라는 게 아니라, 엄마이자 딸로서, 딸의 비중을 조금씩 줄이시라는 거예요. 딸로서는 충분히 마음 고생했습니다. 지금까지 의절하지 않고 산 것만으로도 정말 애 많이 썼어요. 백세 인생이라면 아직 절반이나 남았으니, 나머지 인생은 ‘여자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의 비중을 늘리시면 좋겠습니다. 엄마와는 자식의 도리를 지키는 선에서 연락은 하되, 정미씨가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로 관계의 빈도를 줄여나가는 걸 고려해보셨으면 해요.

당신이 존재해야 모든 관계가 발생합니다. 딸로서 건강하게 존재해야 어머니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 먼저 당신을 지키고 회복하세요.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오은영 박사의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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