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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앤더슨 기지, 을지훈련 앞 긴장… 해변은 불안 속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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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앤더슨 기지, 을지훈련 앞 긴장… 해변은 불안 속 평온

입력
2017.08.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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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B 폭격기 6대 배치된 기지 삼엄한 경비

입구 주변 사진 찍었다가 1시간 조사 당해

해변의 젊은이 “설마 쏠까” 노인 “전쟁 공포”

관광산업 장기적 타격 우려 많아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된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북한이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비난한 7일 일본 규슈(九 州), 한반도 상공 등을 비행하기 위해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모양이 백조와 흡사해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는 유사시 괌 기지에서 이륙 2시간이면 한반도에서 작전이 가능하다. 앤더슨공군기지 홈페이지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된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북한이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비난한 7일 일본 규슈(九 州), 한반도 상공 등을 비행하기 위해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모양이 백조와 흡사해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는 유사시 괌 기지에서 이륙 2시간이면 한반도에서 작전이 가능하다. 앤더슨공군기지 홈페이지

여차하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격변의 진앙지가 될 미국령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 (Andersen Air Force Base)는 거대한 침묵 속에 웅크리고 있는 듯 했다. 한미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이틀 앞둔 19일 기자가 찾은 괌 북쪽 끝 앤더슨 기지. 주변도로에는 드문드문 민간인 차량이 오가고, 유명 휴양지의 한가로운 한 장소로 보였지만 경비는 삼엄했다. 입구 50m 앞에서 휴대폰 카메라로 주변 사진을 간단히 찍고 방문자 센터로 들어간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무장군인과 헌병이 따라와 “촬영 금지(Photography Prohibited) 문구를 못 봤느냐”며 기자를 1시간 동안 붙잡아 놓고 다그쳤다. 헌병은 직업, 주소는 물론 키와 몸무게, 머리카락과 눈 색깔에 이어 복장까지 상세하게 기록했고, 타고 온 차량을 샅샅이 수색했다.

기자가 사흘 전 보낸 이메일 방문 요청에 아무런 답이 없었지만, ‘미국의 아시아ㆍ태평양 군사기지 허브’인 앤더슨 기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죽음의 백조’로 알려진 B-1B 초음속 스텔스폭격기의 한반도와 댜오위다오(釣魚島ㆍ중일 분쟁지역) 주변 해역 전개 훈련 활약상을 전하고 있었다.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반발하는 미군의 전략자산이다. 북한군이 지난 10일 괌을 콕 찍어 중거리 미사일 화성-12형의 괌 주변 해역 포위 사격을 위협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괌 포위 사격 기미가 보인다면, 그리고 실행이 된다면 미국이 예고한대로 선제 혹은 보복타격 선봉은 앤더슨 기지에서 출격하는 ‘B-1B 랜서’일 게 확실하다. 이 기지에는 B-1B 랜서 6대가 배치돼 지난 5월부터 11차례 한반도 전개 훈련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사드도 배치돼 있다.

북미간의 상호 위협 속에 “미국 행태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북한 김정은의 반보 후퇴로 긴장이 일단 한풀 꺾이긴 했지만 UFG훈련을 앞둔 20일 북한이 “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는 등 위협 발언을 연일 이어가 괌 역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미연합훈련(UFG)을 이틀 앞둔 19일 괌 북부에 위치한 앤더슨 공군기지 앞 모습. 오른편에 위치한 공군기지 입구 사진 촬영은 불허됐다. 괌=정승임 기자
한미연합훈련(UFG)을 이틀 앞둔 19일 괌 북부에 위치한 앤더슨 공군기지 앞 모습. 오른편에 위치한 공군기지 입구 사진 촬영은 불허됐다. 괌=정승임 기자

“젊은이들은 ‘김정은이 설마 쏠까’하고 의심하는데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할머니는 진짜 위협을 느낀다.”

괌의 대표적 해변인 투몬 비치에서 만난 라파엘 모로우(39)씨는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명품 매장 직원으로 20년째 괌에 살고 있는 그는 “나와 친구들은 불안을 못 느끼는데 몇 달 전 마이크로네시아 얍 섬(Yap Island)에서 괌으로 놀러 온 할머니는 북한 위협에 ‘더는 못 있겠다’며 돌아갔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포위 사격 유보’ 발언 이후 평온함을 되찾고 있었지만 불안감이 아예 가시진 않았다. 1주일 전만 해도 괌 지방정부가 북한 도발에 대비한 비상행동수칙을 주민에게 배포하고 ‘포위 사격’위협 뉴스가 현지 신문 1면을 도배했지만 19일자 현지 일간지 ‘퍼시픽 데일리 뉴스’(Pacific Daily News)에는 북한 위협 뉴스가 진정되기는 했다.

한미연합훈련을 이틀 앞둔 19일, 괌의 대표적 해변인 투몬 비치에서 관광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괌=정승임 기자
한미연합훈련을 이틀 앞둔 19일, 괌의 대표적 해변인 투몬 비치에서 관광객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괌=정승임 기자

그럼에도 괌이 가진 유일한 자산인 관광산업 타격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조진영(58) 괌 한인회장은 “20년 전 대한항공기 추락 때처럼 한동안 관광업 침체기를 맞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여름과 달리 예약 취소 수수료가 적은 가을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주변에서 9월 말 예약한 관광객들이 취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괌에서 24년간 택시운전을 해온 앨드윈 파블로(42)씨는 “미군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서도 “북한이 앞으로 위협할 때마다 관광객이 줄어드는 게 더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18일 괌 국제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입국심사대로 이동하고 있다. 괌=정승임 기자
18일 괌 국제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입국심사대로 이동하고 있다. 괌=정승임 기자

정작 외부인들은 커다란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18일 오후 인천에서 괌으로 가는 국내 여객기는 전체 280여석 가운데 90% 이상 채워 출발했다. 괌 북부 리티디안 해변 주변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박영순(63)씨는 “걱정은 됐지만 취소하면 수수료가 많다고 해서 일단 가족들과 왔다”며 “간 큰 가족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평온하다”고 말했다. 이달 넷째 주 예정된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시험을 보기 위해 괌을 찾은 30대 한국 여성은 “출발 전까지도 시험과 안전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 세계인이 찾는 서태평양 휴양지가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노출되고, 전쟁의 도화선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현재 상황은 아이러니의 극치를 연출하고 있었다.

괌=글ㆍ사진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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