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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안 팔리는 종이신문

입력
2017.08.1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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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탔다. 승객도 적은 오후 1시 무렵이었는데 신문을 펼쳐 읽는 사람이 나 말고 둘이나 더 있었다. 몹시 낯설었다. 지하철에서 종이신문을 읽는 모습이 어느새 낯섦을 주는 풍경이 됐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부스럭대며 신문을 넘기는 승객들이 줄어들자 읽고 버린 신문이 쌓이던 짐칸도 비었다. 버린 신문을 수거하는 사람도 보기 어려워졌다.

지하철 가판대의 아저씨는 문 닫는 시간까지 신문을 다 못 파는 날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훑어보고 가는 사람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조차 드물다고 했다. 신문이 다 팔린 날을 기억하는지 물었다. 모든 신문에 대통령 탄핵 소식이 실린 날만 그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겹치는 역이 이러하니, 비교적 이용객이 적은 역의 가판대 사정은 더 할 것이다.

편의점에 들렀다. 신문 매대가 비어있었다. 다 팔렸냐고 물으니, 들어오긴 했는데 아직 찾는 사람이 없어서 창고에 있다고 했다. 점원에 따르면 안 팔리는 날은 한 부도 안 팔린다고 했다. 지금 꺼내드릴까요? 점원의 질문에 그리 해달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일하는 가게에 무슨 신문이 공급되는지도 몰랐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 몇 해 전 마지막 공중전화 카드를 산 일이 떠올랐다. 어디 있을 텐데, 라며 한참을 뒤적거리던 구멍가게 주인이 먼지가 쌓인 공중전화 카드를 꺼내주었다.

과거에는 흔했던 공중전화 카드다. 마찬가지로 신문도 늘 우리 집에 있었다. 날짜 지난 신문이 쌓이면 어머니는 신문을 접어 만든 모자를 나에게 씌워주곤 했다. 아버지가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신문을 읽었기 때문에 나는 신문 모자의 냄새를 께름칙하게 여겼다. 그 냄새가 아버지 대변 냄새가 아님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알았다. 학교를 통해 반강제로 구독했던 어린이 신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나는 어린이 신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나 1면에는 만사 귀찮은 표정의 어린이 모델들이 억지로 행복해하는 사진이 실려있었고 3면에는 수학문제 따위의 학습 기사가 실려있었다. 그래서 어른 신문을 읽었다. 어른 신문에는 “새롭게 비상하는 조양은”이라든지 “신한국당 이명박 의원 국회의원직 사퇴” 등등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려주는 기사로 빼곡했다.

어른 신문은 같은 소식도 어린이 신문과는 전혀 다르게 전했다. 어린이 신문에 “귀여운 복제양 돌리”가 나온 날, 어른 신문에는 “돌리, 유전자 결함으로 일찍 죽는다”고 나왔다. 나는 어른 신문을 읽으면서 어른들의 세계를 알 수 있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라는 외국사람의 생각마냥 신문 독자층이 상상의 공동체를 이룬다면, 내가 속한 최초의 상상의 공동체는 어른 세계였다. 돌리의 귀여움을 화제 삼은 급우들 사이에서 돌리는 일찍 죽는다고 말하고 다닌 나는 어차피 어린이 세계에 낄 수 없었다.

우리 집에 오는 신문 말고도 어른 신문이 또 있음은 더 나중에 알았다. 어른 신문들은 제각기 다른 어른 세계를 묘사했다. 이따금 그 차이는 어린이 신문과 어른 신문만큼이나 컸다. 그 신문들은 우리 집에 선풍기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구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세계를 보기 위해 밖에서 날마다 다른 신문을 사 읽는 습관이 들었다.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몇 안 되는 습관이다.

신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초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간 종이신문을 읽은 사람은 20%에 불과했지만 모바일과 PC를 통한 결합 열독률은 81%로 늘었다. 종이신문은 점점 더 읽히지 않고 있지만 신문 독자는 온라인으로 매체를 바꾸었을 뿐 더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공중전화 카드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가판대에서 종이신문이 팔리지 않는 시대가 가까이 오니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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