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된 나날' 여론 속 '지겨운 시간' 등 반론도
의지ㆍ방향 옳아도 속도ㆍ능력 뒷받침 의문
만기친람 대신 책임내각ㆍ협치 제도화해야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고영권기자

"이제 겨우 100일 지났을 뿐인데..."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전광석화' '상전벽해' 등으로 긍정 평가하는 측이나, '내로남불' '포퓰리즘' 등으로 폄하, 비난하는 측이나 모두 이런 느낌일 것이다.

전자는 문재인 정부가 이 기간에 검찰ㆍ재벌ㆍ군 등 큰 덩어리의 개혁부터 저소득층ㆍ비정규직 등 차별, 가습기ㆍ세월호 피해자의 눈물을 치유하는 감성적 조치까지 적폐를 모두 들춰내고 속도감 있게 청소해 가는 것에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을 것이다. 후자는 보수정권과 결이 다른 소통 행보로 반사이익을 챙긴 뒤 내로남불식 내각ㆍ청와대 인사로 휘청한 새 정부가 국민과 기업은 물론 미래세대에 큰 부담을 안기는 선심공세로 내내 고공 지지율을 누려온 것에 피로감이 누적됐을 것이다.

같은 100일의 의미는 이처럼 극과 극을 오간다. 한쪽은 '소통'의 힘에 놀라며 사회 구석구석에서 전개될 천지개벽을 기대하는 벅참이고, 다른 쪽은 '쇼통'에 빠진 국민이 청구서를 받아들고 대오각성할 변곡점을 기다리는 지겨움이다. 이즈음 조사된 여론은 압도적으로 전자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코리아 패싱' 논란으로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고, 탈원전 최저임금 증세 등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는데도 국정 지지율은 80%를 넘나든다. 상황이 특이했던 김영삼 정부를 제외하면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역대급 기록이다.

어떻게 이런 지지율이 가능할까, 또 이 지지율은 약일까 독일까. 무릇 개혁이든 변화든 어떤 일을 하려면 의지와 능력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 또 방향과 속도를 잘 잡아야 탈선하지 않는 법이다. 촛불ㆍ탄핵 민심에 힘입은 문 정부가 우리 사회의 기득권 동맹이 만든 차별과 불평등의 정상화에 타깃을 맞춘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보수정권에서 더욱 강화된 기득권 동맹과 그 폐해는 워낙 뿌리 깊고 넓어 '할 수 있을까' 식으로 접근하면 거센 저항을 부르고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그래서 일단 '할 생각'부터 천명하고 접근한 문 정부의 의지도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일을 도모하는 것은 의지와 방향이지만, 성사시키는 것은 속도와 능력이다. 돈키호테식 발상이다, 곳간 거덜내는 퍼 주기다, 일머리가 없다, 편 가르기다 등 보수의 반격이 시작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이 대목일 것이다. 사실 문 정부가 임기 중 실천을 약속한 100대 국정과제는 물론, 최근 쏟아낸 일자리ㆍ의료ㆍ보육ㆍ부양 등 복지 어젠다를 보면 "저 돈을 어디서 끌어올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너무 빨리 뛰다가 넘어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을 금할 수 없다.

또 최저임금과 탈원전 문제처럼 우산 장수 아들만 생각하다 나막신 장수 아들이 배곯는 우를 범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엊그제 "모든 정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우리가 빛을 보고 대담하게 나아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림자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하는 지혜를 항시 놓쳐서는 안 된다"고 모처럼 자기 목소리를 낸 것도 이런 맥락일 거다.

문 정부의 전쟁은 지금부터다. 첫째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몽니로 곤궁함을 달래는 야당과 벌여야 하는 입법 전쟁이다. 개혁의 성패는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포섭하는 협치 모델을 진정성 있게 고민해야 한다는 데 달렸다는 뜻이다. 둘째는 노동계와 시민사회 등 이른바 아군과의 전쟁이다. 기득권 동맹에 편승해 자기 밥그릇만 챙기거나 논공행상을 요구하는 아군의 적폐에 '노(NO)' 할 수 있어야 개혁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는 얘기다.

또 있다. "임기 초 개혁의 주도권은 청와대가 쥘 수밖에 없다"는 말을 인정해도, 대통령의 '만기친람'은 불편하다. 책임총리ㆍ책임내각 등 분권과 자율 약속과 맞지 않는 데다 자칫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한다. 들었다 놨다 하는 여론을 늘 두렵게 여기고 골방에서 겸허하게 기도하기를.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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