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시인이 페이스북에 말복날 생일이라며, 선풍기 하나로 여름 나려니 힘들다고 쓰자 댓글이 엄청나게 달렸다. 집집마다 있는 에어컨이 우리 집만 없다고 얼마나 덥겠냐고, 그러면서도 자기 같은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많겠느냐고 했다. 탄핵 정국 때 광화문 촛불 집회가 열리면 지역에서 어김없이 올라오던, 치열하고 열정적인 선배였다. “저두 에어컨 없어요~ 그냥 미니토끼 선풍기 틀고 다녀요~” “저도 어머니 집에서 자다가 세 번씩이나 샤워를 해야 했습니다.” “ㅎㅎㅎ 저는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에 걸려서 에어컨하고 안 친해요, 선생님.” “전 선풍기도 없어요. 소주 2병만 있으면 잠 잘 와요.” “수건을 찬물에 적셔서 목에 감고 계셔 봐요. 저의 어머니께서 쓰시던 방법입니다.” “형이 유독 더운 이유는 성질이 급해서 더 덥게 느껴지는 겁니당!” “여름 한 더위 때 아내에게 에어컨 사자고 하면 매번, 곧 여름 끝날 건데 뭐 하러 사냐고 합니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팬티 하나 입고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견딜 만해요.” “점심 먹고 아예 냉방 시설 잘 되어 있는 곳을 찾아서 밖으로 무작정 나갔습니다.”

촛불 집회 뒤에도 높은 목소리로 시국 비판을 멈추지 않으며 거침없이 할말을 해 온 선배가 더위 타령을 짠하게 하니 인간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페친들은 격하게 공감하며 더위 때문에 겪는 괴로움, 자기만의 더위 대처법 등을 술술 털어놓았다. 지구가 온통 들끓고 있으니 지구를 식히는 게 급선무인데, 에어컨은 더운 열기를 밖으로 뿜어 지구를 더 데우고, 사드니 북한 미사일 발사니 살충제 계란이니 시국 상황도 식을 줄 모른다.

김유진 시인의 ‘뽀뽀의 힘’은 상큼하다. 어느 가정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에피소드다. 쉬는 날 피곤해서 잠에 빠진 아빠를 깨우려는 아이, 툭툭 건드려 보고 팔을 잡아 끌어 봐도 꿈쩍 않는 아빠에게 비장의 무기로 “쪽!/뽀뽀 한 방”. 그러자 “아이구, 우리 딸” 하며 “반짝/일어나”는 아빠. 과연 이 아빠가 눈을 비비고 아이와 잘 놀아줄지, 아니면 다시 해롱거리며 소파로 가 엎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이 장면은 맑고 정겨운 그림이다. 행과 연 나눔, 말의 선택에 조그만 틈도 없다.

뽀뽀와 키스의 차이는? 딸과 아빠가 아니라 딸과 엄마 사이였다면? 이런 질문을 떠올릴 필요 없다. 그러면 더워진다. 더위를 날려 줄 ‘뽀뽀 한 방’은 없을까. 처서가 다가오니 요 며칠 기온이 떨어지고 선선한 바람도 부는데, 가을을 마중하는 건 아직 이르겠지.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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