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신간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88년 작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을 통해 감독은 니체가 말한 '운명애'를 탐구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모르파티(amorfati). 운명(fati)을 사랑(amor)한다, 운명에 대한 사랑이라 해서 흔히 ‘운명애’라 번역됩니다. 니체의 핵심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운명을 사랑한다’라고만 말하면 숙명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운명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겠다는 자세, 포즈, 뉘앙스가 사라집니다. 그래서일 겁니다. 이 책의 제목을, 그러니까 ‘운명에 대한 사랑’을 ‘운명으로 달아나라’라고 또 한번 매만진 이유가.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래서 비극적 상황에 처한다는 것은, 어느 날 벼락처럼 닥친 운명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래서 그 운명에 대해 난 널 몰랐노라 변명하고 저주하는 게 아닙니다. 네가 내 운명이라면 진작에 잘 찾아오라고 내비게이션이라도 달아주려는 태도, 그리하여 마침내 만난 운명을 적극적으로 살아내 버리고야 말겠다는 태도를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운명에 대한 사랑일 테고, 그걸 조금 더 문학적으로 꾸민 말이 운명을 향해 달아나는 행위일 겁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운명애란 “필연을 의지의 행위로 바꿔놓고야 마는 행위”일 테니까요.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서평가 이현우씨가 니체의 ‘운명애’를 키워드로 읽을 만한 세계문학 작품들을 골라 해설한, 일종의 세계문학 가이드입니다.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는 필명 로쟈로 유명한 이현우씨의 세계문학 가이드북이다. 마음산책 제공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간단한 독해로 워밍업을 한 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최후의 유혹’을,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 ‘면도날’을,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을 찬찬히 읽어나갑니다. 모옴이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에 대한 얘기나, 어릴 적 음악교육을 받은 쿤데라가 다성악과 소설과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방식에 대한 얘기 등이 흥미롭습니다.

그 가운데 카잔차키스가 예수의 마지막 순간을 새롭게 해석한 소설 ‘최후의 유혹’ 얘기가 좋습니다. 이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십자가에 매달린 최후의 그 순간, 천사는 예수를 해방시켜 가족을 데리고 알콩달콩 잘 살게 만들어줍니다. 어느 순간 예수는 이 삶이 거짓이며 악마의 유혹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깨닫자마자 다시 골고다 언덕 십자가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합니다. 저자는 “마지막까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이 길을 택했다는 것, 하느님의 뜻을 수락했다는 것” 그 것으로서 예수는 명령을 이행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동시에 운명을 받아들인 그 행위로 인해 예수 이후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카잔차키스가, 스코세이지가 그려내려 한 ‘운명애’입니다.

새벽녘 바람이 차츰 시원해집니다. 여름휴가 시즌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 일할 게 아득한 이들에게 권합니다. 회사를 다녀야 할 비극적 운명을 만났다면, 징징댈 것만 아니라 그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테니까요. 휴가란 달콤한 악마의 유혹일 뿐입니다. 써놓고 보니 왠지 니체와 저자 뿐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에게 뭔가 죄 짓는 기분이 들긴 합니다만, 혹시 압니까. 그런 운명애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지.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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