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인 A(35)씨는 휴대폰 통화 녹음 덕을 톡톡히 봤다. 피해를 당한 지 6개월이나 지난 2015년 6월 고민 끝에 경찰 신고를 했는데, 성폭행 사실을 입증할 증거라곤 “고소하지 말아달라”는 가해자 목소리가 담긴 통화 녹음이 전부였다. A씨는 “그때 통화를 녹음하지 않았다면 신고는 고사하고 어쩌면 무고죄를 덮어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고 안도했다.

#직장인 B(30)씨는 지난해 몰래 당한 통화 녹음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앙심을 품은 전 남자친구가 사귈 당시 주고받았던 은밀한 대화를 녹음한 파일을 보내온 것. B씨는 “통화를 녹음하는 줄 알았다면 당연히 말을 조심해서 했을 것”이라며 “사적인 대화를 녹음해 계속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휴대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이제는 간단히 버튼만 누르면 언제든 상대 몰래 통화를 녹음하는 게 가능한 시대. 비위사실 폭로 등 강자에게 약자가 대응할 수 있는 무기로써 순기능을 한다는 옹호론이 있는가 하면, 사생활을 침해하는 도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단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상대방 의사를 묻지 않고 통화 녹음을 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대에게 묻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재판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주요 증거로써 인정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녹음으로 인한 피해가 무시되는 건 아니다. 음성권(통화 목소리에 대한 권리)이 민사소송에서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통화를 몰래 녹음해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면 법원은 “음성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녹음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공개로 인해 생기는 피해 보상 측면이 강하다.

통화 녹음을 찬성론자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최씨 전횡이 담긴 통화 녹음이 사태의 이면을 드러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등의 전례를 근거로 삼는다. 최근에도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의 ‘밥 하는 아줌마’ 막말 등이 폭로되면서 '약자가 강자에 맞설 수 있는 무기' 쪽으로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 직장인 강세인(30)씨는 “통화 녹음 기능이 없다면 이런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기 어려운 것 아니냐”고 했다.

사생활 침해와 오남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대학원생 김한나(27)씨는 “언제 어떻게든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공직자나 기업 임원 사이에서는 민감한 내용 통화 시 “혹시 녹음이 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는 게 일상이 되고 있다. 통화 녹음 금지가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도 편다. 영국 프랑스 등 상당수 나라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이 가능한 나라는 일본 중국 등 6개국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 등 10명은 지난달 20일 통화 중 녹음을 할 때 상대방에게 신호음을 통해 자동으로 알리도록 하자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에 달린 150개 남짓 의견 중 반대가 60% 정도로 우세한 상황이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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