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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그에게서 배운 ‘삶’

입력
2017.08.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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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는 늘 찍고 떠나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의 곁을 지키고 사진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고 했지만, 실은 그저 ‘찍고 빠지는’, 얼치기 사진가 부류에 더 가까웠다. 타인의 고통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그 아픔이 버거웠다고 자위해 보지만 지난 걸음을 되돌아보는 지금 부끄럽다.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이런 심정을 들춘 이유는 지난 7월 28일 간암으로 황망히 삶을 거둔 오랜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가 걷고 이룬 삶은 어려운 이들과 늘 ‘함께 하는 삶’이었고 세상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용기 있는 삶 그 자체였다.

늘 청년이었던 한 친구가 그렇게 ‘있었다.’ 68년생 동갑내기이고, 인연이 닿은 98년 즈음부터의 세월만도 짧지 않은 사이였다. 늘 청년인 이유는 세상을 향한 그의 시선과 행동이 20여 년부터 한결 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매체지만 사진과 영상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일했던 지라 오래 얼굴을 마주하지는 못했다. 유난히 빈곤과 장애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장애인이동권 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2002)>, <노들바람(2003)>, <에바다 투쟁 6년-해 아래 모든 이의 평등을 위하여(2002)> <이동할 권리(2005)>, <침묵을 깨고(2007)> 등을 남겼고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의 영상활동가로서 <416프로젝트 : ‘망각과 기억’-인양>, <망각과 기억2-인양(20170>를 포함, 최근까지 목포 신항에서의 세월호 선체조사 작업 기록 등의 작업이 한결같았다. 소외된 사람들의 곁을 꾸준히 지켰다. 같은 나이 같은 생각을 나누었지만 그는 내게 스승이었고 항상 앞서 가는 행동과 실천의 주체였다. ‘찍고 떠나는’ 대개의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과 친구이자 가족으로서 함께했다. 그러기에 너무 이른 그의 죽음이 더없이 안타깝다.

지금도 감동이 새로운 그의 작품이 하나 있다.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다시 보면서 그의 삶을 거듭 경이롭게 살핀다. 98년 그는 독립영화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 - 실직노숙자>를 발표했다. 서울역 인근 서소문 공원에서 만난 노숙자들과 함께 지내며 만든 영화에서 그는 단순한 현상 소개를 넘어 정부의 효율적인 실업대책을 촉구했다. 그 영상 속에서 내가 주시한 것은 노숙자들과 함께 지내며, 한없이 자신을 낮춘 앵글로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를 깊은 눈길로 보여주려던 그의 맑은 웃음이었다. 노숙인의 손을 빌려 등목을 하는 모습에서 표현할 길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오래 전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찍을 수 있었어?” 그가 씽긋 웃으며 답했다. “그냥 같이 살았지 뭐.”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늘 시대의 아픔 한가운데 있었고, 가슴에 못이 박힐 때마다 카메라를 들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오래도록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기에 몸에 스며든 병마마저 살피지 못했던 것일까. 친구이자 형님, 가족이나 다름없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는 애끓는 추모사를 통해 자신에게 “금관예수”였고, “가난한 사람의 삶이 되어 준”, 그리고 “함께 하는 삶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 준” 그의 명복을 빌었다. 이별을 슬퍼하는 많은 이와 더불어 고 박종필 감독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잘 가시게, 친구. 나 또한 오래도록 그대를 기억하리다.

임종진 사진치유공감 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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