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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리포트] 석면 피해자들 “숨 쉬기도 힘든데 지원은 끊기고…”

입력
2017.08.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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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2만~64만원 2년간만 지급

석면폐증 2, 3급 환자들 소외돼

정부 “연장 불가” 추가 지원 난색

정지열 전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의회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과거 아시아최대 석면광산이었던 충남 홍성군의 광천광산 석면 분쇄기가 설치됐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정 위원장 너머로 광산 가동 당시 석면분진이 날렸던 덕정마을이 보인다.
정지열 전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의회 위원장이 지난달 28일 과거 아시아최대 석면광산이었던 충남 홍성군의 광천광산 석면 분쇄기가 설치됐던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정 위원장 너머로 광산 가동 당시 석면분진이 날렸던 덕정마을이 보인다.

“저기 보이는 집 양씨 할아버지는 석면폐증 2급 환자였는데 작년에 목을 매고 자살했어. 87세였는데 요양생활수당도 끊어지고, 숨이 가빠서 고통스러워하더니 더 버티기 힘드셨던 거 같아. 저쪽 골목에 있는 집 부인도 석면폐증이야. 이 집도, 저 집도…”

지난 달 28일 충남 홍성군의 화봉리 일대와 상정리 덕정마을을 기자와 함께 돌아보던 정지열(75) 전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의회(이하 석면피해자위원회) 위원장은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며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나갔다.

화봉리와 덕정마을은 아시아 최대 석면광산으로 불렸던 광천광산에 인접한 마을. 주민들 상당수가 근년에 운명을 달리하거나 힘겨운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씨는 “광산이 돌아가던 시절 서풍이 불면 덕정마을에, 동풍이 불면 화봉리에 석면이 섞인 돌가루가 날아들었다”며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재수가 좋다고 해야 할지, 부족한 정부보조금으로 겨우 버티는 게 안됐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시아 최대 석면광산이었던 광천광산이 위치했던 충남홍성군 지기산(가운데 별표) 일대와 인근 마을이 자리잡은 화봉리(왼쪽), 상정리(오른쪽)의 위성사진. 구글맵 캡처.
아시아 최대 석면광산이었던 광천광산이 위치했던 충남홍성군 지기산(가운데 별표) 일대와 인근 마을이 자리잡은 화봉리(왼쪽), 상정리(오른쪽)의 위성사진. 구글맵 캡처.

석면이란 단열성 절연성 내마모성 등의 특징을 가져 한때 ‘기적의 광물’로 불리기도 했던 섬유 형태의 비금속성 광물질이다. 하지만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침투하게 되면 악성중피종 및 폐암, 석면폐증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난 이후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관련 제품의 생산과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인 홍성에 돌아왔던 정 위원장이 석면 문제에 발벗고 나선 것은 2009년. 2008년 하반기 환경부가 홍성군의 5개 마을 주민 215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석면 관련 질환 검사를 시행한 결과가 그 해 1월 공개되면서다. 부산 제일화학 석면 사태에 이어 충남 홍성에서도 무려 110명에게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서 석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정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환경운동가들과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2010년 2월 국회에서 석면피해구제법이 통과됐고 이듬해 시행됐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 6년 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피해구제법 시행으로 정부 지원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지만 석면폐증 환자들에 대한 지원기간 연장 문제를 둘러싼 피해자들과 정부의 갈등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석면 흡입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환은 악성중피종, 원발성 폐암 및 석면폐증 등이다. 이 가운데 석면폐증은 석면으로 인해 폐섬유화 및 흉막의 석화(石化)가 진행되는 질환으로 대부분이 짧은 시간의 격렬한 신체 활동에도 호흡 곤란을 호소한다. 문제는 한국환경공단이 상대적으로 예후가 나쁜 석면폐증 1급 및 악성중피종, 원발성 폐암 환자 등 피해자들에게는 월 96만~133만원의 요양생활수당을 5년간 지급하면서도 석면폐증 2, 3급 환자들에게는 32만~64만원을 2년 동안만 지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6월까지 정부가 인정한 석면폐증 2ㆍ3급 피해는 총 1,142건으로 전체 석면 피해 사례(2,554건) 중 절반에 가까운 45%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폐쇄된 충남 홍성군의 홍천광산 갱도 입구.
현재는 폐쇄된 충남 홍성군의 홍천광산 갱도 입구.

피해자들을 비롯한 시민단체는 석면폐증 역시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질환으로 2ㆍ3급 환자에게 생활수당 지급 기간을 현재 2년에서 최소 1, 2년이라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숙견 한국노동안전연구소 상임활동가는 “2ㆍ3급 환자들은 대부분 숨이 가쁜 증상을 호소해 운동은 물론 육체 노동에 제약이 많은데다 한번 감기가 들면 길게는 5, 6개월씩 가면서 폐렴으로 사망하는 경우까지 있다”며 “2년이 지났다고 피해자들에 대한 생활수당을 중단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 본인도 석면폐증 환자로, 2011년 석면폐증 2급 진단을 받았다가 이듬해 1급으로 상태가 나빠진 경우다. 그는 “농사 일도 제대로 못 하는 2, 3급 환자들로부터 생활수당 기간이 끝나가는 데 막막하다는 소리를 제일 자주 듣는다”며 “지난 6월에도 홍성에 사는 김모씨가 석면폐증 2급이었다가 1급으로 악화되면서 환경공단에서 재판정을 받았는데 오히려 주위에서 부러움을 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석면피해자들에게 지급되는 요양급여 등 총 구제급여 지출은 법으로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 2ㆍ3급 피해자들에 대한 추가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해 150억원 규모로 피해구제기금을 조성하고 있어 아직 여유가 있는 것은 맞지만 관련 규정을 바꿔야 해 당장 지급 기간을 늘릴 수는 없다”며 “향후 2045년까지 피해자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기금을 비축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연간 구제급여 지급 총액은 구제법 시행 첫해인 2011년 21억원에서 2014년 98억원으로 급증했고 이후 2015년 70억원, 지난해 86억원을 기록했다. 환경부는 대표 질환인 악성중피종의 잠복기가 평균 30~40년인 것을 감안했을 때 한국은 2045년쯤 최고발병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어 관련 지급 금액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홍성= 글ㆍ사진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관련기사] ☞ 석면 기업들 구제기금 분담률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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