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오은영의 화해] 뒤늦게 안 가족사... 어릴 때 미움 받은 기억에 괴로워요

입력
2017.08.07 04:00
0 0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jinjin@hankookilbo.com

저는 재혼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분 다 재혼이셨고, 아버지에겐 전 부인과 낳은 오빠와 언니가 있었어요. 어머니는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를 만나 절 낳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성인이 되고 나서 우연히 알았어요. 그리고 그제야 어릴 때 언니, 오빠에게 받은 미움과 구박이 퍼즐 맞춰지듯이 맞춰졌어요.

저보다 8살 많은 오빠는 항상 저를 때렸어요. 한 번은 정말 심하게 등을 발로 차였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뭔가를 주우려고 몸을 굽히고 있었는데 오빠가 등을 세게 차서 저는 앞으로 구르듯이 넘어졌습니다. 너무 무섭고 굴욕적인 기억이라 저는 지금도 누가 제 뒤에 있는 걸 싫어해요. 그때 옆에 엄마가 있었어요. 엄마랑 언니, 오빠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오빠는 엄마와 몸싸움을 한 적도 있습니다. 혹시 또 싸울까 봐 저는 엄마한테 ‘아무렇지 않다’고 웃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뭐가 괜찮냐’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성인이 되고 엄마랑 얘기했는데 엄마도 계모라고 손가락질 받을까 봐 무척 위축돼 있으셨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눈치를 보는 것도 속상해서 저한테 화내셨다고 하네요.

아빠는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셨지만 엄마 없이 자라는 언니, 오빠가 불쌍했는지 빚까지 져서 언니, 오빠에게 많은 용돈을 주셨어요. 그리고 언니, 오빠, 아빠가 셋이서 뭔가를 비밀로 하고 저에게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라’고 하는 게 거의 일상이었어요. 그게 드러나면 싸움이 되고, 저는 눈치를 보고, 미움을 받았던 게 어린 시절의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도 싸움이 있지 않을까 불안해서 ‘가장 최악인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것보다 더 나쁜 일이 생겨도 놀라지는 않겠지’하고 다짐했던 게 분명히 기억이 나네요.

20대 들어 많이 밝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마음은 항상 냉소적이에요. 어떤 일을 하다가 조금 어려워지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심할 때는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엄마도 무척 부정적인 분이세요. 한번은 제가 체육 동작을 잘 해서 전교생 앞에서 시범을 보였는데 기분이 좋아 엄마한테 말씀 드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실수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시더라구요. 칭찬을 기대했는데 충격이 컸습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놀라고, 늘 긴장하고, 잠을 못 자는 것도 문제지만, 집에 있을 때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왜 그런지 생각해 봤는데 ‘집 같이 편안한’ 느낌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잘 놀다가 저도 모르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해서 친구들이 어이없어한 적도 있어요. 남편과 사이가 좋은데 같이 있어도 외롭고 불편해서 남편에게도 미안하네요.

부모님, 언니, 오빠 모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라 옛날 일을 다시 꺼내고 싶진 않아요. 대화가 통할 것 같지도 않구요. 아빠는 자기가 불리하면 못들은 척 해버립니다. 가족 내 갈등에 한 번도 개입한 적 없어요. 제가 성인이 돼서 원망하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아무 대답도 못 들었어요. 그냥 지금은 아빠의 인간적 한계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요. 오빠랑은 우연히 둘만 남아 대화한 적이 있는데, 아빠와 엄마가 재혼하기 전, 친엄마가 없어졌을 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빠가 언니와 오빠를 어디에 맡겨놨었는지 아예 기억이 안 난다고, 아무도 이 닦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이가 다 썩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따져야겠다는 마음을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어요.

이제는 원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불안감, 미움 받는 느낌, 어두움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내가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텐데 원망스럽고, 나에게만 가족사를 감춘 게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과는 거리를 둔다고 쳐도, 지금 제 삶에서 긍정적으로 변하고 싶어요.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 중인데, 삶 자체가 무척 힘든 과정으로 느껴져 아이에게 이 힘든 삶을 굳이 살게 해야 하나 싶네요.

오수진(가명ㆍ27세ㆍ프리랜서 작가)

수진씨, 당신이 늘 가고 싶다고 하는 ‘집’이 어디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떠올리는 집의 이미지는 편안하고, 안전하고, 긴장을 이완하고, 쉴 수 있는 곳이에요. 그러나 실제로 수진씨의 집은 그렇지 못했죠. 수진씨의 집은 모호하고 불안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곳이었어요.

늘 긴장하고 잠을 못 이루고 사소한 것에도 잘 놀라는, 이런 과도한 긴장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저는 수진씨가 차라리 어릴 때 재혼가정이란 걸 알았다면, 언니 오빠가 이복형제란 걸 알았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새아빠, 새엄마 아래서 자랐는데 그걸 어른이 된 후에 안 사람들 중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차라리 일찍 알았다면 나한테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라고요.

수진씨의 어린 시절은 그 ‘왜’가 해결되지 않는 모호함의 연속이었어요. 도대체 언니랑 오빠가 나한테 왜 이럴까, 아빠와 언니, 오빠는 왜 늘 뭔가를 비밀로 할까, 엄마는 왜 나를 혼낼까. 보통 오빠가 동생을 때렸을 때 부모라면 ‘어린 동생한테 왜 그러냐’고 꾸중하고 말리죠. 모든 사람이 부모가 이렇게 해줄 것이라고 예측해요. 그런데 수진씨의 삶은 계속해서 이 예측을 벗어났어요. 이런 상황에 오래 노출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어두운 밤은 물론이고, 누구나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대낮의 길거리에서도 과도하게 불안하고 긴장이 높아져요. 지금 수진씨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긴장의 뿌리를 정확히 보려면, 수진씨가 자란 가정 환경을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아요.

아마 오빠와 언니는 스스로 버려졌다고 여겼을 것 같아요. 어릴 때 누군가의 집에 맡겨졌는데, 그 시절을 기억 못할 정도라면 대단히 불안정한 상황에 놓였던 것 같아요. 양치질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는 걸로 보아 거의 학대에 가까운 상황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엄청난 분노와 미움, 적개심, 좌절감에 사로잡혀요. 어찌 보면 누군가를 향해 언제라도 미움을 터뜨릴 준비가 돼 있는 거죠. 그 대상이 어린 동생이었다고 하더라도요.

이런 가정에 시집을 온 엄마는 어땠을까요. 안절부절 못 했을 겁니다. 자신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양육을 한다고 해도, 이미 나이가 든 전처의 자식들, 그것도 적개심과 미움으로 꽉 찬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전전긍긍했을까 싶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가장 안전한 약자인 자신의 딸에게 회한과 아픔을 다 쏟아냈던 것으로 보여요. 여기에 아빠는 문제를 회피해버리는 사람이었죠. 겉으로는 착해 보이지만 사실은 극도로 비겁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가장 주도적으로 가정 내 갈등을 해결했어야 할 사람이 숨는 바람에 가족 간의 갈등은 더 깊어진 면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수진씨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는 게 옳은지 판단할 수 없었어요. ‘누가 너를 이렇게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이럴 땐 네가 화를 내는 게 당연해, 너는 혼날 만한 일을 하지 않았어, 네가 잘못한 건 없어’와 같은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얼마나 모호하고 불안했을까요.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당한 대우를, 그것도 남이 아닌 가족에게, 다른 곳도 아닌 자기 집에서 받았어요. 그러므로 수진씨에게 있어서 집은 모호함과 두려움의 존재예요. 수진씨가 원하는 집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인데, 실제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던 곳이었어요. 수진씨가 집으로 가고 싶다는 건, 자기가 원하는 집으로 가고 싶다는 거예요.

자신의 감정과 판단이 옳고 그른지 확신하지 못하면, 삶에 임하는 방식도 100% 아니면 0%로 나뉘게 돼요. 과정이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선 100%만큼 해내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아예 0%로 놔 버리는 거죠. 그 예측불가능함을 뚫고 나갈 힘이 없는 거예요. 최악의 상황을 담보해놓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여기엔 엄마의 태도도 한몫을 한 것 같아요. 자녀가 부모에게 바라는 건 별 게 아니에요. 좋은 집, 좋은 학원, 좋은 휴대폰 보다는 힘들 때 용기를 주고, 좌절할 때 격려해주고, 보호가 필요할 때 보호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는 수진씨에게 ‘100% 잘할 게 아니면 하지도 마’라고 했죠.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건 원래 100% 장담할 수 없는 거예요.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걸 겪고 버티고 극복하는 게 인생이에요. 그런데 딸에게 그런 말을 했으니, 수진씨는 자신의 인생이 예상되지 않는 게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했을까요. 시도도 못하고 놔 버린 게 얼마나 많았을까요.

제가 수진씨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인생이란 언제나 최선을 다하되, 문제가 생기면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겁니다. 수진씨의 가족들은 보편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났지만, 일반적인 많은 사람들은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을 해요.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수진씨와 남편은 매우 온순하고 예측 가능한 사람들로 보여요. 그러니 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가정도, 두 사람이 낳은 자녀도, 함께 만들어갈 삶도 예측 가능할 거예요. 당신의 인생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수진씨가 실패해도 손가락질 할 사람보다 격려하고 위로해줄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오은영 박사의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