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김석희

1979년 번역을 시작해 ‘로마인 이야기’ ‘쥘 베른 컬렉션’ 등 수많은 책을 번역한 김석희씨. 소설 쓰기와 번역 작업을 동시에 하던 그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재번역한 1997년을 기점으로 번역가로서의 정체성에 더 무게를 싣게 됐다. 시공사 제공

소설가를 꿈꿨으나 번역으로 먹고 살았고, 이제는 번역가로 살면서 소설을 꿈꾸고 있다. 그러니 내 인생은 글쓰기라는 너덜밭에서 이모작을 한 셈인데, 소출은 변변치 못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게 살아온 듯하다. 다행히도 책을 (지금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시절을 지나온 덕분이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내가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였다. 그때 내 고향 제주도는 바닷길과 하늘길로 사방이 열린 관광지가 아니라 바다로 갇힌 척박한 섬이었고, 바닷가에 서면 그 답답한 섬을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에 숨이 막히곤 했다. 그런 나를 다잡기 위한 방편으로 책에 빠져들었고, 일기를 쓰면서 시도 쓰고 산문도 썼다. 글 쓰는 몇몇 선후배와 문예서클을 만들어 동인지를 펴내기도 했고, 동국대가 주최하는 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에 뽑히기도 했으니, 나름대로 ‘문학소년’의 면모를 과시했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공부는 뒷전이고, 책도 참고서 대신 문학서를 많이 읽게 되었다. 방과 후에는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도립도서관이 집에서 학교를 오가는 도중에 있었고, 때마침 고모부가 도서관장을 맡고 있어서, 서고를 우리 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책을 꺼내 읽는 일은 특권이라도 얻은 듯한 즐거움마저 안겨주었다.

그 무렵 내가 읽고 감동 또는 충격을 받은 책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카뮈의 ‘이방인’이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 두 책을 한두 달 사이에 연이어 읽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더욱) 두 살인자에 대한 이해가 요령부득이었다. 라스콜리니코프와 뫼르소―너무나도 판이하고 대조적인 두 주인공 때문에 나는 종종 꿈속에서 두 인물을 서로 뒤바뀐 모습으로 만나기도 했다. 나의 독서 이력에서 서너 번 되풀이해서 읽은 책도 이 두 책뿐이다. 처음엔 소설 속 주인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매달렸으나, 나중엔 그 상이한 자의성이야말로 소설 밖 작가의 재능이자 세계관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쪽으로 나의 인식도 성장하게 되었다. 더불어 소설가가 어떤 존재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고, 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막연하게나마) 갖게 되었다.

위에서 서너 번 되풀이해서 읽은 책을 말했는데, 나의 번역 이력에도 세 번이나 번역한 책이 있다.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가 그것. 이 책을 처음 번역한 것은 1982년이었다.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어느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번역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영어 실력이 짧았고 번역에 대한 개념도 없이 작업한 터라 늘 께름칙하고 안타까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오면 다시 제대로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심어두고 있었는데, 다행히 국내 출판권을 확보한 출판사에서 번역을 재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처음엔 부분적으로 고치는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번에 번역한 책을 다시 읽어보고는 가슴이 철렁했다. 손보는 정도로 냈다가는 번역가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 나의 신망마저 와르르 무너질 판이었으니까. 출판사와 상의한 끝에 아예 새로 번역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그렇게 해서 새 번역본이 나온 것이 1997년이었다. 그 후 출판사가 사업을 접게 되자 나는 친분이 있는 열린책들 대표에게 출판권을 새로 확보할 것을 당부했고, 이곳에서 책이 나오는 것을 계기로 다시 한번 꼼꼼히 읽고 개역 수준의 수정 작업을 더했다.

[관련기사] ☞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을 새로 번역하던 1997년은 ‘로마인 이야기’의 번역과 더불어 내 삶의 추가 소설보다 번역으로 기울던 때였다. 내가 소설가로 데뷔한 것이 1988년이니 10년 가량 소설과 번역에 양다리를 걸치고 다닌 셈인데, 번역은 조강지처 같고 소설은 애인 같다는 흰소리를 하며 으스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속으로는 창작의 어려움 때문에 소설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결정적인 용기를 준 것이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이 책을 다시 번역하면서, 한편으로는 글쓰기의 욕망과 창작의 갈증을 대리만족의 형태로나마 달랠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만한 작품을 써낼 수 없다면 아예 글쓰기를 작파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시한 소설 쓰느라 끙끙대느니 좋은 책을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뜻있는 작업이자 수지맞는 사업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애인과 헤어지고 아내한테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20년 가까이 속 편하게 살았는데, 멀리 떠난 줄 알았던 애인이 요즘 다시 찾아와 또 한번 놀아보자고 꼬드기고 있으니, 이 노릇을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꼬.

김석희 번역가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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