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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문재인 ‘증세 정치’ 피하지 말라

입력
2017.07.3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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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감세, 박근혜 ‘꼼수’로 증세 회피

중산층 부담 증대 없이 복지확충 어려워

‘증세 저주’ 두려워 말고 논쟁 본격화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 날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 날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증세 필패론’을 주장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게 부가가치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다. 박정희 정부의 부가가치세 도입과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가 민심의 저항을 불러와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의 몰락은 장기집권과 억압적 통치가 결정적 요인이었고 노무현 정부의 쇠락은 잇단 재보선 참패와 지지층 이탈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훨씬 중요한 요인을 제쳐 놓고 세금 하나로 정권의 몰락을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논리다.

증세가 인기 없는 정책임은 분명하다. ‘혁명의 역사는 조세저항의 역사’라는 말처럼 증세를 잘못 다뤄 정권의 기반이 흔들린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시대적 상황이 증세를 필요로 한다면 회피하지 않고 정공법을 택하는 게 올바른 정부의 역할이다. 돌이켜보면 부가가치세 덕분에 매년 50조원이 넘는 안정적 세입을 확보하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종부세는 이명박 정부가 무력화시키지 않았다면 세수 확보와 부동산 투기 억제에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진짜 ‘나쁜 정부’는 정치적 계산으로 증세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역행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정부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직격탄을 맞자 이듬해 감세 정책을 발표해 위기를 벗어났다. 두 번에 걸친 법인세 인하로 기업의 자금사정은 넉넉해졌지만 기대했던 투자 증가나 경기활성화 효과는 없었다. 세수만 축내는 바람에 이후 정부에 큰 부담으로 남았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한 박근혜 정부도 위선적 태도를 보였다. 증세를 않는 이유로 국민을 내세웠지만 실은 자신의 지지층인 대기업과 자산가를 의식한 정치적 의도가 컸다. 그러고는 세수가 부족하자 국민 건강을 위한다며 담뱃값을 인상해 지난해만 5조원을 거둬들였다.

그에 비하면 문재인 정부의 초대기업ㆍ초고소득자 증세안은 증세의 첫 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논란이 되는 건 ‘부자증세’ ‘핀셋증세’의 실현 여부나 당위성이 아니라 그 실효성이다. 무엇보다 공약재원 마련에 필요한 돈은 178조원인데 부자증세로 들어오는 세수는 5년간 20조원으로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이 논란이다. 저출산ㆍ고령화와 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도전 과제들에 대응하기는 매우 미흡하다. 국민 간에 공감대가 형성된 ‘중부담ㆍ중복지’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더 큰 문제는 문 대통령이 “중산층과 중소기업에 대한 증세는 임기 안에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최상위계층만 찍어서 증세하니 서민들 정서에는 부합할지 모르나 다음 정부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점에서 떳떳하지 못하다. 극소수 초고소득자만을 대상으로 한 증세가 조세 정의와 불평등 해소에 역행한다는 최근 연구결과는 의미심장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현행 세금 제도가 저소득층은 적게 내고 고소득층은 훨씬 많이 부담토록 누진적으로 설계돼 이른바 ‘보편적 증세’가 부자증세에 비해 조세정의 차원에서 더 부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대한 강력한 증세를 통해 복지 강화를 원한다면 보편적 증세가 더 합리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종부세 파동을 접한 문 대통령은 증세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법도 하다. 그가 대선 내내 증세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정권 일각에선 야권의 ‘세금폭탄’공격을 피해 단계적 접근을 하자는 주장도 있는 모양이나 임기초반 지지율이 높은 이때를 놓치면 보편적 증세는 물론 문재인 복지정책 실현도 힘들어진다.

법인세, 소득세, 종부세, 부가가치세 등 모든 증세 방안을 열어 놓고 증세 논쟁을 본격화할 시기다. 원전 공론화위원회처럼 증세를 위한 국민논의기구를 만들어 시민들이 토론하고, 국회와 정부가 그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복지 확대가 시대적 물결임을 아는 지도자라면 ‘증세 정치’도 소임으로 받아 안아야 한다. ‘증세의 저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촛불민심의 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답지 않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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