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 창업국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고영권 기자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6일 새롭게 태어난 행정부 산하 조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부터 내세웠던 공약 이행의 산물이다. 특히 중기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제시한 4대 혁신과제 중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 창업국가’ 설립의 산파 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벤처’란 외래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한글관련단체들로부터 항의도 받았지만 중기부는 정작 영문명에선 ‘벤처’를 ‘스타트업(Start-Up)’으로 대신했다. 현재 미국 경제를 이끄는 FANG(페이스북ㆍ아마존ㆍ넷플릭스ㆍ구글)과 중국 경제를 드높인 BAT(바이두ㆍ알리바바ㆍ텐센트) 등의 태생이 스타트업이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스타트업들이 국내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어 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년들은 결코 ‘미래 산업역군’이 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가 정신에 앞선 ‘혹독한 현실’

신생 창업기업을 뜻하는 ‘벤처기업’이 발상지인 미국을 따라 ‘스타트업’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지난 2010년 이후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지 약 10년 정도 지나 창업의 불씨는 살아났고, 2010년부터 창업 5년 이하의 신생기업 수는 2만개를 넘어섰다. 기술보증기금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국내 신생기업은 3만4,281개에 달했다. 중간에 사라진 스타트업까지 고려하면 그 동안 창업 열기는 꾸준했던 셈이다.

하지만 혹독한 현실을 무시하고 무모하게 무일푼의 도전에 뛰어든 청년은 많지 않다. 1인 스타트업을 꾸려가고 있는 홍준기(28ㆍ가명)씨는 대기업 입사 자격을 얻은 후 마음 놓고 창업 전선에 진출한 사례다. 홍씨는 “A기업의 인턴을 성공적으로 마쳐서 언제든지 그 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지만 막상 ‘보험’이 생기니 오히려 도전의식이 살아났다”고 말했다.

노동의 대가가 쉽게 평가절하되는 현실도 청년들을 창업 전선으로 유도하는 원인이다. ‘코스메테우스’란 모바일 피부진료 서비스를 준비 중인 태원석(30)씨가 이런 경우다. 태씨는 “동업자 중엔 능력을 인정받고도 여자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이 안된 사람도 있고, 나처럼 업무에 비해 터무니 없는 연봉을 제안 받아 취업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며 “굳이 부조리를 감당하느니 우리끼리 즐겁게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창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포럼(KSEF)이 발표한 스타트업 백서에 따르면 스타트업은 평균 3,150만원의 자금으로 2.78명이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스타트업은 모바일 인터넷 분야에 집중됐다. KSEF 제공

‘자립’은 스타트업의 지상과제

스타트업의 지상 과제는 자립이다. 스스로 수익을 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타트업 중 자립 성공 생존 비율은 38%에 불과하다. 100곳중 62곳은 3년 안에 망한다는 얘기다.

가진 건 오직 아이디어와 열정뿐인 미약한 청년들의 자립에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투자’다. 2015년 조사결과 중소기업청의 창업지원을 받은 기업들의 3년 이상 생존률은 약 66%다. 5년 이상 생존률 역시 60%에 달했다. 창업 초기 지원이 이들의 생존률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정부 기금은 우리나라 스타트업 자금조달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마저도 절반에 못 미치는 46%에게 돌아갈 뿐이다. ‘엔젤투자’등 민간자본의 스타트업 투자도 미미한 현실에서 상당수 청년들은 정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이 취업준비생만큼 치열하게 노력하는 이유다. 1인 스타트업을 꾸려가고 있는 홍준기(28ㆍ가명)씨는 “정부지원을 위해 사업계획서 작성 강좌도 듣고 사업 심사위원들이 참가한다는 박람회에 찾아가 일부러 얼굴도장을 찍기도 했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지 못한 청년들은 결국 ‘사장님’이자 ‘알바생’ 신세다. 창업 8개월이 지난 태씨의 회사는 아직 적절한 자금지원을 받지 못해 동업자 전원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창업자금 1,000만원은 다 써버린 지 오래다. 태씨는 “응용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 개발이 끝나면 투자를 받기 수월해지겠지만 그 전까진 이렇게 버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요병’ 없을 정도로 의욕 넘치지만… ‘열정과잉’는 걸림돌

쉽지 않은 현실에서도 청년들이 스타트업을 계속 하는 건 일반 기업에서 느끼기 어려운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홍씨는 “직장인인 친구들은 일요일 저녁만 되면 ‘출근하기 싫다’며 난리인데, 나는 월요일이 늘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를 고객들이 사용해주고, 그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보람이 느껴진다는 설명이었다.

중화권 외국인 대상 한국어 교육 서비스를 하는 ‘쇼한’이란 스타트업을 창업한 홍성우(26)씨 역시 더디지만 즐겁게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홍씨는 “고객이 돈을 결제하면서도 ‘서비스가 도움이 된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희열이 느껴졌다”며 “스타트업 특성상 사업 기획 후 금방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보람차게 일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들에게 스타트업은 매력적인 직장이지만, 현실은 이름만큼 이상적이진 않다. 지난달 서울 중구의 서울청년일자리센터에서 청년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스타트업이 늘 푸른빛만 띠는 것은 아니다. ‘꿈’과 ‘열정’이란 이상은 때로 청년이 청년을 착취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자동차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김모(28)씨는 입사 4개월만에 그만둬야 했던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부서 업무까지 떠맡게 된 게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는데, 회사에서 이를 빌미로 사직을 권고한 것이다. 김씨는 거부했지만 이후 몇 주간 직급과 경력에 맞지 않는 일을 떠맡다가 지쳐 스스로 나와야 했다. 김씨는 “스타트업이라 인재를 귀하게 생각한다는 말만 듣고 선택했는데 현실은 ‘열정페이’만 강요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건실한 청년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던 스타트업 ‘청년장사꾼’이 뒤에서는 허술한 근로계약서를 쓰고 노동법을 위반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관련기사보기) 스타트업 전문 노무법인 ‘현’의 임현진 노무사는 ‘동아리식 창업’이 한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임 노무사는 “친한 친구나 지인이 모여 스타트업을 시작하다 보니 서로가 ‘근로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성공할 때까지 참고 견디자’는 논리가 통용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거리 달리기’를 준비하라

모든 게 처음인 스타트업 청년들에게 실수는 정해진 수순이다. 홍성우씨도 “원천세와 부가세는 어떤 식으로 신고하고 납부해야 하는지, 4대보험은 어떻게 가입하면 되는지 등 첫 단계부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1998년 국내 최초 전자결재 시스템인 ‘이니시스’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창업지원사) 프라이머를 설립한 권도균 대표는 ‘장거리 경주’를 강조한다. 스타트업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이지만, 마음이 조급하고 열정이 넘치다 보니 생각이 자기중심적이고 협소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올바른 경영 원칙을 이상주의로 치부하고 소위 ‘진짜 성공의 비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라 구아르디아 공항에 우버 탑승 구역을 가리키는 푯말이 붙어 있다. 2009년 창업한 우버는 불과 6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치가 높은 스타트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뉴욕=AP 연합뉴스

초기 스타트업도, 이미 성공한 사람들도 새 정부의 약속을 환영하면서도 ‘인위적 개입은 말라’고 조언했다. 권 대표는 “물을 주고 비료를 뿌리는 건 좋지만 이를 넘어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성공기업을 만들려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사업은 이미 많이 있어왔다는 홍성우씨는 “심사가 불공정하다 느껴 이의신청을 해도 명확한 답을 받아 본적이 없다”며 “투명성을 높이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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