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지난해 ‘미쓰윤의 알바일지’라는 책을 내고 다양한 후기를 접했다. 당연하게도 감사한 호평도 있었고, 아쉬움을 전한 경우도 있었다. 그중 최근에 들은 후기는 후자였다. 아르바이트도 아닌 ‘알바’라는 단어를 들을 때 흔히들 떠올리는 전형적인 알바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쉽다는 것이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인 20대 초반에는 음식점 서빙이나 상품 판매 같은 아르바이트가 등장하지만, 20대 중반 이후로는 프리랜서 작가로서 경험한 다양한 종류의 마감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글쓰기 노동이 고부가가치 산업에 속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10여 년이 훌쩍 지난 과거의 시급 노동들이 지금 이 순간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의 현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를 재차 고민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일 수도 있는 노동의 경험을 굳이 꺼내어 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담은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알바’라는 단어를 앞세워둔 이상, 내게는 일말의 책임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어떤 노동이든 반드시 그에 값하는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백만 원 정도의 고료를 떼어 먹혔던 일과,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액심판청구소송을 진행했던 이야기로 책을 시작했다. 이 사건이 나에게 준 교훈은 고료 지급이 늦어져도 당장 생활비를 위해 일을 준 사람을 믿고 원고를 썼던 내가 아니라,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상대가 법적으로도 잘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법이 잘못 없는 사람이 받는 고통을 언제나 구제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함께 깨달았다.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한 국회의원의 생각은 이와 전혀 다른 모양이다. 국민의 당 이언주 의원은 “알바비를 떼어 먹혀도 신고하지 않아야 공동체 의식이 있는 것”이라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이에 수많은 청년이 “알바비 체불은 끼니 문제”라며 항의했다. 15년 전과 비교했을 때, 2017년 현재 최저 임금은 겨우 4천여 원 남짓 올랐을 뿐이다. 강산이 변하고 또 절반이 지나도, 한 시간 노동의 대가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요원하다. 이런 현실에서 청년들의 알바는, 인권과 생활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최저 시급이 법적으로 정한 하한선이며, 건실한 업장이라면 그 이상의 시급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또 실천하는 사회가 청년들이 바라는 공동체다. 당사 앞에서 시위할 시간조차 없는 수많은 청년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땀 흘리고 있다. 알바비를, 임금을, 정당한 노동의 값을 떼어먹힌 국민의 편에 서서 이들을 구제하고 그들이 노동한 대가로 일상을 꾸려나가게 돕지는 못할 망정, 국민의 대표가 여전히 희생과 ‘노오력’을 강요한다.

최근 SNS에서 한 번 더 커피값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커피가 한반도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대한제국 때부터 커피값을 모았다고 해도 현재의 시세로 집 한 채를 사지 못한다는 그 짧은 글은 곧, 그때부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한 시간 씩 꼬박꼬박 일했다고 해도 지금 전세 집 하나 구하지 못한다는 의미와 같다. 6,500원. 2017년 최저임금인 6,470원보다 그 글에서 임의로 정한 커피 값이 더 비쌌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쉼 없이 일하며 그런 일조차 구하지 못해 고통 받는 청년들을 두고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호들갑을 떨며 고용인의 앓는 소리부터 전하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인을, 기성세대를 원한다. 1조 4000억 원이라는 체불 임금을 지급해서, 부디 청년들을 살려내고 함께 살아가자고 말하는 공동체를 원한다. 이게 과한 요구인 이상,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전히 알바지옥이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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