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보다는 음악이 좋아 찾아가는 술집이 있다. 그 집에 가면 무슨 술과 안주를 시킬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냉장고 문을 열어 아무 맥주나 꺼내 BAR 한 켠에 자리 잡으면 끝이다. 더 시키지 않아도 눈치 볼 일도 없다. 머무는 내내 어떤 음악을 신청하고 또 어떤 보컬리스트의 음색을 즐길지만 줄곧 몰두한다.

이곳에서 음악을 신청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드럼이나 전자기타의 연주력이 두드러지거나 보컬리스트의 탁월한 창법이 돋보이는 로크 밴드의 음악을 늘 우선한다. ‘블랙 사바스’를 비롯해 ‘쥬다스 프리스트’, ‘메탈리카’, ‘디오’, ‘레인보우’, ‘핑크 플로이드’ 등의 강렬하거나 부드러운 대표곡을 신청하면서 음량을 아주 크게 해달라는 부탁을 빼지 않는다(집에서는 이렇게 절대 못 듣는다). 몇 달에 한번 찾아가는지라 단골이라 하기에는 다소 자격이 모자라지만 평소 무뚝뚝한 주인장은 그다지 서운해 하지도 않는다. 손님을 맞아 장사를 하기보다는 그 자신도 음악을 틀고 듣는 일에 더 열중하는 듯, 주인장은 오히려 만취한 손님이 들어오면 표정부터 잔뜩 굳는다. 신청곡을 잘 받아주지 않고 슬며시 불편함을 내비치기는 하지만, 수시로 몰리는 신청곡을 안배해 감상하기 좋게 들려주거나 조용히 손님들의 표정을 살피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을 보면 무심함 속에 가려진 섬세한 배려도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술집의 이름은 ‘밥 딜런 앤 더 밴드’. ‘금천교 시장’으로 불리는 서울 서촌의 작은 재래시장 안 낡은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온갖 술안주와 취객들로 흥청대는 주변 술집들 틈에서 진중한 분위기의 이곳은 언뜻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잘 어울려 보인다.

얼마 전 이곳에 조그만 선물을 하나 했다. 전시를 하고 보관 중이었던 가수 고 김광석씨의 사진액자였다. 두 점을 준비해서 내게 이곳을 소개하고 이날도 동행한 친한 글쟁이 형에게도 선물했다. 그런데 그만 난리가 났다. 늘 시큰둥한 표정의 주인장은 액자 선물에 부쩍 신이 났는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양쪽 입꼬리가 하늘로 올라간 채 우리 일행에게 ‘최선’을 다했다. 당장 헨드릭스 진 한 병과 과일안주를 공짜로 내주고는 액자를 어디에 걸어야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 술집의 상징인 ‘밥 딜런’ 액자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김광석씨 액자를 대보더니 “이 자리가 딱이네요!”라며 감탄했다. 글쟁이 형이 “아니, 그 잘나가는 딜런이 이제 찬밥이 됐네!”하고 농을 던지자 주인장은 다시 흐뭇한 표정으로 “형이 받은 사진도 여기에 걸면 더 잘 어울리겠네요. 이리 줘봐요!”라고 응수한다. 농담 한마디 했다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자신의 선물을 앗길 운명에 처한 글쟁이 형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다가 곧 “잠시 빌려주는 거”라며 입을 삐죽거리고는 액자를 내밀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웃고만 있다가 안면을 튼, 올 겨울 히말라야 등정을 준비한다는 한 산악인 손님까지 몸을 세워 액자거치를 도왔다. 함박웃음을 지은 주인장은 “그래! 바로 이거라니까!”하고 탄성까지 질렀다.

이후 김광석 노래와 함께 적절한 취기가 오른 우리 4050세대 중년 남자 넷은 주인장의 제안에 따라 일찍 문을 닫고 근처 다른 술집을 찾아 늦은 새벽까지 흥을 달궜다. 작은 선물 하나에 이렇게까지 기뻐하리라 생각은 못했는데, 주인장의 흥겨움에 덩달아 취한 나는 내친 김에 더 큰 액자를 추가로 선물하겠다고 큰소리치기까지 했다. 이런 큰소리라면 더 자주 질러도 좋겠다. 내 소박한 마음 하나를 더욱 크고 기쁘게 받아주는 이를 참 오랜만에 만났다. 내친 김에 조만간 큰 액자 한 점 들고 다시 가야겠다. 신청곡도 이미 골랐다. ‘레드 제플린’의 원곡이 아닌 프로젝트 그룹 ‘파 코퍼레이션’의 ‘Stairway To Heaven’. 9분 30초짜리 라이브 버전으로 다시 신나게 가슴을 두들겨보련다.

임종진 사진치유공감 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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