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진주의료원 폐쇄 4년

사라진 소외계층 의료안전망
적자 누적이 폐업의 주된 이유
의사ㆍ환자 등 440여명 뿔뿔이
건물은 경남도청 서부청사로
지역 표준화사망률 순위 올라
의료 취약계층이 찾던 거점병원
폐업 후 전국 2위까지 치솟아
“인과관계 없다고만 볼 수 없다”
재개원 논의에 찬반 여전
공공병원 의료이익률 마이너스
경영 비효율 개선안 마련 시급
경남도 “정부 지침 나오면 논의”
박석용 전국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장이 지난달 30일 옛 진주의료원 건물인 경남 진주시 초전동 경남도청 서부청사 앞에서 지난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진주=신지후 기자

“저 큰 병원에 있던 수백 명의 직원과 환자들이 하루 아침에 뿔뿔이 흩어졌지요.”

지난달 30일 경남 진주시 초전동 경남도청 서부청사 앞. 4년 전까지만 해도 ‘진주의료원’간판을 내걸었던 이 곳에서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진주의료원지부장은 큰 한숨부터 내쉬었다. 2013년 5월 폐업 직후부터 100일 넘게 진주의료원에서 노숙 농성에 나섰던 박 지부장은 여전히 “진주의료원은 재개원돼야 한다”며 호소하고 있다.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공공의료시설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만성 적자구조 때문에 존재이유에 대한 찬반 양론이 뜨거운 사안이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주도했던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는 우리 공공병원 문제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 후 4년, 경남지역의 표준화 사망률(성별ㆍ연령 차에 따른 영향을 배제해 인구 10만명 당 표준화한 사망률) 지역별 순위가 높아졌다는 통계가 경남지역을 흉흉하게 하고 있다.

신축 이후 불어난 적자 때문에…103년 만에 폐업

공공의료기관이란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등이 정하는 보건의료기관으로, 진주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을 비롯해 적십자병원, 지방의료원 등 전국에 220개소(지난해 12월 기준)가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 등을 민간병원보다 저렴한 가격에 받을 수 있고 민간병원이 꺼리는 장애인 전문 시설이나 호스피스 병동 등도 갖춰 의료소외계층에게 톡톡한 의료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진주의료원은 1910년 경남 진주시 중앙동에서 관립 자혜의원으로 출발해 2006년 진주의료원으로 바뀌었다. 2008년 낙후한 경남서부지역 공공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김혁규 당시 경남도지사의 의지로 새 건물을 지어 초전동으로 옮겼다. 지하1층에서 지상8층 규모, 325개 병실을 갖춘 대형 병원으로 서부경남지역(진주시, 사천시, 산청군, 하동군, 남해군, 거창군, 함양군) 거점 공공병원 역할을 해왔다. 2009년 신종플루 창궐 당시에는 거점치료기관으로 지정돼 5개월 간 1만2,000명의 환자를 진료했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로 필요성이 대두된 격리음압병실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12월 19일 보궐선거로 당선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이듬해 2월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했다. 진주시에 의료서비스가 과잉 공급되고 있는 데다, 진주의료원에 매년 40억~60억, 총 279억원에 가까운 부채가 누적됐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진주의료원은 전국의 다른 의료원과 비슷하게 매년 1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내다가 병원 신축을 준비하던 2007년 41억원을 시작으로 2008년 59억원, 2011년 62억원, 2012년 69억원으로 매년 적자 규모를 키웠다. 누적 부채도 2006년 말 79억원에서 병원신축 이후인 2008년 212억원, 2012년 279억원으로 불었다.

홍 전 지사는 진주의료원을 “강성귀족 노조의 천국”이라고 비난하면서 반대 세력과 거세게 충돌했다. 진주의료원 직원들은 시위와 농성에 돌입하는 한편 경영개선정상화 방안으로 30여명의 명예퇴직과 직원 연차 반납 등을 제시했지만, 경남도는 같은 해 6월 결국 폐업 조례를 통과시켰다. 간호사 등 직원 223명과 의사 21명, 환자 203명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진주의료원 폐업을 둘러싼 갈등이 경남도 바깥으로까지 번지면서 국회는 2013년 6월 이례적으로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꾸렸다. 특위는 그 해 9월 “경남도는 진주의료원 폐업 이후 서부지역 공공의료 시행 대책을 보완ㆍ강화하고, 1개월 이내 조속한 재개원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라는 내용의 국정조사 결과보고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재개원 문제는 (2013년) 9월 25일자로 청산종결 등기를 통해 모든 절차를 종결 지었기에 법률적으로 불가하다”고 밝히며 국회 권고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후 진주의료원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2015년 12월 경남도청 서부청사로 문을 열었다.

경남 지역 사망률 순위 상승, 진주의료원 폐업 때문?

새 정부 들어 전직 진주의료원 직원 등이 포함된 진주의료원 노조는 본격적으로 서부경남지역의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도민들과 합심해 진주시 일대에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고, 지난 12일에는 청와대 국민인수위원회에 ‘진주의료원 재개원 국정과제 채택 제안서’를 전달했다.

노조는 “지역 거점 공공병원으로서 진주의료원 재개원이 필요하지만, 여건 상 쉽지 않다면 의료취약지역인 서부경남지역 중 한 곳에 공공병원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 노조에 따르면 경남 전체에는 종합병원 24개가 있지만, 서부경남지역에는 진주시에 단 3곳만 위치해 있을 뿐 나머지 시ㆍ군에는 전무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상남도는 최근 3년 간 표준화사망률 순위가 높아지고 있는데, 2013년에는 전체 시ㆍ도 중에 8위(397.6명)였으나 2014년에는 4위(384.6명), 2015년에는 2위(381.8명)까지 올랐다. 정백근 경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체 경남지역 중에서도 서부권은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데다 2차 이상 의료기관도 적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다”며 “경남의 표준화사망률 상승 원인과 이러한 문제의 연관관계가 직접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무관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21년 간 진주의료원에서 환자이송버스 운전사로 일했던 박석용 지부장은 “진주의료원은 거동도 잘 못하는 어르신들이나 장애인 등 서부경남지역 의료취약계층들이 거리낌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이었다”며 “경남도청이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이를 강제 폐쇄한 후 이 지역의 의료환경은 매우 열악해졌다”고 말했다.

실제 진주의료원은 2011년 장애인 전문 치과를 개설(당시 경남 등록장애인 약 18만1,000명)해 당해 720명, 2012년 460명의 환자를 돌보는 등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폐업으로 치과뿐만 아니라 장애인 전문 분만 시설 등을 민간병원에 이양했는데, 민간병원에서는 입원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예 치료를 포기한 장애인도 적지 않다는 게 지역 장애인단체의 설명이다.

급작스런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이 여전히 안정적인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기준 강제 폐업 당시 진주의료원에 근무 중이던 간호사 및 보건ㆍ사무ㆍ기능직원 181명 중 46명(25.4%)은 실직 상태다. 110명은 취업하긴 했지만 정규직은 46명(41.8%)뿐이고 비정규직은 64명(5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지현 노조 사무장은 “진주의료원에서 일했다는 이유 만으로 채용 시장에서 배척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자발적으로 경력 인정을 받지 않고 재취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 조합원과 경남도민 등이 4일 경남 진주시 초전동 진주의료원 앞에서 진주의료원 재개원 및 서부경남공공병원 설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진주의료원지부 제공
새 정부 들어 재개원 탄력, 찬반은 여전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공공의료기관 확충 및 지역사회 중심 의료체계 강화와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 해소’를 약속했다. 이로 인해 서부경남지역 공공병원 설치 논의는 탄력을 받고 있다. 경남 진주시의회도 18일 제196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서부경남지역 거점 공공병원 설립’ 결의문을 채택하고 “진주의료원이 강제폐업 조치로 문을 닫은 뒤 서부경남지역 의료 소외와 의료불평등을 해결할 조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25개 취약진료권에 거점 종합병원 육성·지원사업을 약속한 만큼 서부경남지역 공공병원을 1호로 선정해 달라”고 중앙정부에 요청했다.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또 다시 우려와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경영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부터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공공병원의 의료이익율(전체 의료 매출액 대비 의료 이익)은 2006년 3.3%를 기록했다가 이듬해 -11.0%로 급감한 뒤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2015년에는 -11.6%까지 내려갔다. 반면 민간병원은 같은 기간 5~10% 사이의 이익율을 기록해 2015년에는 5.1%였다.

공공병원을 신설하는 대신 해당 예산을 지역 의료취약계층에 직접 지원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진주시 주민 한모(61)씨는 “공공병원을 짓더라도 노인들은 거리가 조금이라도 멀면 가지 못하고 주변 병원을 찾게 되는 게 현실”이라며 “병원 신설 자체보다도 해당 예산을 노인이나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에 다른 방식으로 지원해주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경남의 인구 100만명 당 병원 수는 39.5개로 전국 17개 시ㆍ도 가운데 5번째로 많아, 공공병원 신설보다 민간병원의 공공의료 활성화를 위한 장려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남도는 새 정부의 구체적 방침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지침이 나온 이후 의견수렴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경남도 관계자는 “정부 공약에 구체적으로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구체화 된 청사진이 없다“며 “정부가 세부안을 마련해 예산 지원 등을 논의하면 대안 마련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진주=글ㆍ사진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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