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 이해인

자신을 수도원으로 이끈 건 어린 마음을 뒤흔들었던 인도 시인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였다는 게 이해인 수녀의 설명이다. 마음산책 제공

수도원 생활을 하며 “수녀님의 삶에 특별한 영향을 끼친 책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논어’나 ‘채근담’을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삶을 돌아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내 필명 ‘해인’의 ‘인’은 논어의 ‘仁’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타고르의 ‘기탄잘리’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학창 시절, 국어 교사 또는 성우가 되기를 꿈꿨던 나는 문예반에서 활동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서도 열심히 글을 쓰고 문집을 만들고 책을 많이 읽던 시기였다. 윤동주의 ‘서시’나 ‘별 헤는 밤’, ‘기탄잘리’의 ‘원정’이나 ‘초승달’ 등을 읽었을 때의 기쁨과 희열을 아직도 기억한다. 103편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는 ‘기탄잘리’는 ‘신께 바치는 노래’라는 뜻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 때부터 마음 속에 ‘기탄잘리’ 같은 기도시(詩)를 쓰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과 갈망을 품었던 듯하다. 서정적이면서도 삶에 영향을 주는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님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이 님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님은 수없이 비우시곤 또 항시 신선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작은 갈피리를 님은 언덕과 골짜기 너머로 나르셨습니다. 그리고 님은 그것을 통해 항시 새로운 선율을 불어내셨습니다.
님의 불멸의 손길에 닿아 내 어린 심장은 기쁨에 녹아 들어 형언키 어려운 말을 외칩니다.
님의 무한한 선물을 나는 이 작은 두 손으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은 가도 님은 여전히 부어주시니 채울 자리는 여전히 있습니다.
─’기탄잘리 1’

‘기탄잘리’의 첫 노래인 이 시는 내가 가장 많이 되풀이해 읽었던 시이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다. 늘 적어서 갖고 다니며 친구들에게도 나누어주곤 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시의 깊은 뜻을 다는 모르면서도 ‘기탄잘리’에 등장하는 그 영원한 님이 무작정 좋았다. 비록 다른 종교 전통 안에서의 님이었으나 그 님은 항상 순수하고 황홀한 빛과 사랑으로 나를 압도했고, 나로 하여금 그분이 즐겨 부는 ‘작은 갈피리’가 되고 싶다는 갈망을 키우게 했다.

‘기탄잘리’를 통해서 나는 영혼과 영원의 세계에 새롭게 눈뜨고, 신과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으며, 미풍처럼 속삭여오는 거룩한 부르심을 들었다고 하겠다. 수도원에 들어오게 된 데에는 나보다 먼저 수도원에 간 친언니의 영향도 컸으나 타고르의 ‘기탄잘리’야말로 내가 망설임 없이 수도 생활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사람은 왜 죽는가’ ‘삶의 끝은 어디일까’ ‘사랑하는 이들끼리 왜 이렇듯 헤어져 사는 날이 많을까’ 고민이 많았던 내게 수도 생활은 가장 멋지고 보람 있는 삶의 형태로 비쳐졌다. 수녀회 수련이 끝나기 전 오빠가 찾아와서 정식으로 첫 서원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했지만 나는 ‘내 적성에도 맞고 행복하다’라며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다.

단단한 각오와 설렘 속에 시작했던 수도 생활에서 가끔 믿음이 흔들리거나 저쪽에 두고 온 인간적인 애정을 포기하기 어려울 때에도 ‘기탄잘리’는 늘 지침서가 되어주었다. 특히 아래 시를 반복해서 읽곤 했다.

가슴이 굳어 바싹 마른 때엔 자비의 소나기와 더불어 오십시오.
우아함이 생활에서 잃어진 때엔 드높은 노랫소리 더불어 오십시오.
시끄러운 일이 사방에서 극성 떨며 나를 가둬버릴 때엔 말없는 주여, 님의 평화와 휴식을 가지고 내게로 오십시오.
구석에 갇히어서 내 거지 같은 마음이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엔 왕이여 이 문을 부수어 여시고는 왕의 위의를 갖추고 오십시오.
욕망이 마음을 망상과 먼지로 눈멀게 할 땐 오, 거룩한 이여, 깨어 있는 자여, 님의 빛과 우레를 가지고 오십시오.
─’기탄잘리 39’

‘기탄잘리’를 읽으면 좁은 마음이 넓어지고, 어둡고 스산했던 내면이 환해진다. 추루한 영혼이 한껏 고양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인류사에 길이 시성(詩聖)으로 남을 만한 위대한 시인이 영혼으로 토해낸 기도시를 읽으면, 내 안에 봉헌의 촛불이 펄럭이고, 순결한 꽃향기가 가득해진다. 하늘과 바다, 노을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던 갓 스무 살의 예비 수녀는 힘들 때마다 이 시를 읽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예비 수녀 시절 틈틈이 써 모은 기도시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을 때 어느 독자에게 편지를 받은 적 있다. “수녀님의 연작시 ‘가을 편지’를 읽는 동안 문득 타고르의 ‘원정’을 떠올렸답니다.” 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던지, 그때의 조용한 환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결코 타고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미약한 나이지만 ‘신께 바치는 노래들’을 부르며 시처럼 살고 싶은 꿈을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었다는 생각에, 설레고 감격스러웠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기도의 연장이다. 수도자이면서 동시에 시인이라는 유명세가 적지 않은 부담이 되어 내면적으로 많이 힘들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갈등 없이 지내고 있다. ‘수녀시인’이란 이미지 때문에 모르는 이웃들이 이모나 고모에게 하듯 내게 인생의 고민들을 상담해오거나 기도를 청해올 때가 많다. 문학사의 중요한 인물이 되기보다 평범한 수도자로 남고 싶은 갈망이 크지만, 글로 사람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기도 하다. 먼 훗날 ‘수녀시인 아무개’가 있었다며 사람들이 기억을 해준다면 이 또한 기쁠 것이다.

나의 시는 타고르가 말한 신의 ‘작은 갈피리’ 같은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누군가 해인글방을 보고 ‘향기 나는 우체국’ 같다고 한 적 있다. 내 글이 수도원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준다면 좋으리라. 타고르는 나를 수녀로 만들고 시인으로까지 만들어준 셈이다.

이해인 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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