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산의 ‘집 ― 지상의 방 한 칸’은 흑백사진집이다. 시인이자 교사인 그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2년 전이던가 사진전 초대장을 받고서야 알았다. 최근 출간한 그의 사진집을 받아 펼쳐 보니, 철거 현장을 찾아 고집스레 흑백 화면에 담고 있는 작가의 20여 년 사진 작업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폐허가 된 삭막한 터에 남은 무너져 내린 집, 먼 배경으로 늘어선 아파트 숲, 간간이 찍힌 주민들의 주름진 얼굴. ‘충남 종촌(세종시). 2007’로 기록된 몇 장의 사진엔 “이주 단지 조성하라” “고향에 뼈를 묻으리” 같은 구호가 적혀 있고 단식 투쟁 중인 인물도 앵글에 잡혀 있다. 절제된 구도로 흑백의 명암으로만 드러난 사진들은 잔잔한 것 같으나, 보고 있으면 침묵 속의 함성이 가슴 뒤켠에서 점점 소용돌이쳐 온다.

철거와 재개발, 주거환경정비사업의 명목으로 진행되는 일들이 경제적 약자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초래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갈망하면서 작가는 철거 현장으로 달려가고 사진전을 열었다. 그러나 사진 한 컷 한 컷을 보는 동안, 작가는 고발과 외침보다 끝없이 솟구치는 절실한 마음들을 흑백의 화면에 언어로, 묵언으로 응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철거되는 집의 창틀에 포착된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인네의 한가로움(‘대전 봉산동. 2006’), 하늘을 쏘아보는 노파의 강렬한 눈빛(‘충남 종촌. 2009’) 등 여러 사진이 명작으로 꼽을 만하다.

임길택(1952~1997) 시인의 시도 흑백사진을 닮았다. ‘산골 아이’ 연작은 번잡한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깊은 산골 마을의 삶을 꾸밈 없이 담아낸 시편들이다. 산골 마을 언덕배기에 서향으로 선 진호네 집에서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기가 좋다. ‘산골 아이 7ㆍ저녁 노을’을 읽어 가노라면 “저 멀리 산물결 위로” 떠오른 저녁 노을을 마루 기둥에 기대어 바라보는 진호와 서서히 동화되는 느낌이 든다. 먼 아랫마을과 그 마을에 누가 사는지를 생각하다 그 생각마저 잊어버리는 장면이 담백하면서도 짠하다. ‘산골 아이 6ㆍ우리 집’은 집 한 채에 식구들과 소, 그리마, 쥐며느리까지 모여 사는 “부는 바람 막아 주는 납작한 우리 집”을 담담히 소개한다. 그러한 지상의 방 한 칸, 집 한 칸이 얼마나 애틋하고 위태로운가.

임길택 시인은 어떻게 하면 멋진 동시를 쓸까 힘쓰지 않았다. 그래서 대개는 흑백사진 같은 담백한 시가 탄생했지만 오히려 누구도 쉽게 도달하지 못한, 덧칠하지 않은 삶의 진짜 색깔을 찾아내고 있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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