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하지, 죽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지던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이하 집배노조) 소속 집배원 약 20명이 영정 모양의 피켓을 든 채 굳은 표정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한참 바쁠 월요일 오전에 이곳에 모인 이유는 분신 끝에 8일 사망한 경기 안양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 원모(47)씨 때문. 집배노조는 “올 한해만 과로로 12명이 세상을 떠났고 이들 중 5명은 자살”이라며 “정부가 잇따른 집배원 사망사건을 직접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로사 근절을 촉구하는 집배원들의 시위는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도 이어졌다.

분신 당일 자신이 맡은 지역의 경비원과 주민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을 정도로 살갑던 21년 차 집배원 원씨. 그의 극단적 선택 뒤에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정사업의 위기가 깔려 있다.

전국우정노동조합 지부장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 앞에서 집배원 과로사 근절을 위한 상경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슴 설레는 손님’이었던 집배원

1975년부터 40년간 집배원으로 일했던 퇴직 집배원 류상진(62)씨는 마치 ‘인간 사랑방’ 처럼 일했다. 새내기 집배원이던 70년대, 그가 타던 빨간 자전거엔 사람들이 ‘읍내에 가면 사다 달라’고 부탁 받은 소주와 라면 등이 실렸다. 더운 날 땀과 흙범벅이 되어 배달을 가면 할머니들은 ‘테레비 고칠 줄 아냐?’며 붙잡혔다. 부인이 집안일을 시킨다며 몰래 류씨 앞에서 흉을 보는 할아버지들도 달래야 했다.

1970년 5월 전남 광주우체국 소속 집배원 유이규(오른쪽)씨가 시민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나라에서 집배원이란 직업이 등장한지는 무려 133년이나 됐다. 1884년 우정총국이 설치된 이후부터다. 손글씨로 쓴 편지가 유일한 통신 수단이던 시절, 류씨 같은 집배원들은 늘 환대받는 ‘가슴 설레는 손님’이었다. 서울로 일하러 간 누나, 군대에 간 아들, 애인의 편지까지 모두 그의 손을 통해 전달됐기 때문이다. 주부 정양자(57)씨는 “기다리던 편지를 건네 받을 때면 나도 모르게 ‘고맙습니다’는 말이 나왔고, 나쁜 소식을 전할 때면 집배원 아저씨들은 마치 내용을 읽어본 것 마냥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고 회상했다.

1970년 자전거가 보급되기 전까지 집배원들은 걸어서 우편물을 배달했다. 주소 체계도 엉망이고 정확한 지도 한장 없었지만, 집배원들은 발로 뛰며 직접 머릿속에 동네 구석구석을 그렸다. 어느 집에 누가 어떤 사연을 갖고 사는지도 자연히 다 알게 됐다. 주민들 역시 자기동네 집배원을 알아보긴 마찬가지였다. 집집마다 전화기가 보급되기 전까진 그랬다.

정보화도우미, 보험모집인, 택배기사… 집배원의 또 다른 직업

‘빨간자전거’를 향한 사람들의 애정은 식어갔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글보다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고, 집배원의 가방 속엔 편지보다 고지서와 공문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인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세대 통신 수단의 수요가 떨어지고 우편업의 적자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집배원이 본업인 ‘우편배달’ 만으론 먹고 살기 힘든 시기가 다가왔다.

1983년 현 우정사업본부의 전신인 체신부는 금융사업을 시작했다. 1977년 농협으로 이관했던 금융업무를 되찾았다 했지만 실상은 나날이 늘어가는 경영 적자를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 취지는 좋았지만, 한때 실적을 위해 집배원들에게 보험모집할당제를 실시하면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 제도는 집배원들의 반발로 1980년대 말 폐지됐지만, 이후에도 한동안 집배원들은‘인사에 영향이 있다’며 암묵적으로 보험 영업을 요구 받기도 했다.

집배원들은 한때 동네 ‘정보화도우미’가 되기도 했다. 시골 산간지방에 사는 주민들의 컴퓨터(PC) 활용을 돕기 위해 옛 체신부에서 1990년대 말부터 집배원들에게 전산교육을 시킨 것이다. 집배원들은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 외에 컴퓨터 활용법을 알려주거나 컴퓨터를 고쳐주었고, 잠시나마 이전의 인기를 회복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PC통신 보급이 시작되던 과도기적 시절, 두메산골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림 3 지난 2008년 설 명절을 앞두고 부산체신청 동래우체국 발송장에서 집배원들이 택배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부산=이성덕 기자

집배원들의 업무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크게 변했다. 1999년 8월부터 ‘우체국택배’ 서비스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했다. 특히 매년 소포우편물이 20%에 가깝게 감소하던 당시 상황에서 우편업무는 인력감축 대상 1위였다. 당시 기획예산위원회는 정보통신부에 우편업무 담당 인력 15%를 감축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정보통신부는 우편물 배달 노하우를 활용해 택배사업을 한다는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우체국택배 사업이 성공하면서 이들은 당장의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이는 장시간 노동 만성화의 시작이었다.

‘무료야근’ ‘공짜노동’ 당연해진 헬조선의 자화상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충청권 우체국 4곳의 집배원들의 지난 1년간 근로실태를 조사한 결과, 집배원들은 법정 근로시간을 제외하고 월 평균 53.5시간에서 많게는 66.4시간을 더 일하고 있었다. 특히 추석 명절이 있었던 지난해 9월에는 10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한 곳도 있었다. 매일 한 명이 우편물 1,000여통을 배달하기 위해 평균 14~15시간을 일한 탓이다. 집배원 유승진(42ㆍ가명)씨는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배달을 마친 뒤 다음날 우편물을 정리하고 나면 9시가 다 되어 퇴근하기 일쑤”라며 “정말 바쁠 때는 제대로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우유 한 팩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2014년 5월 서울 마포구 도화동 한 아파트에서 집배원이 투표안내문 등이 포함된 선거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정사업본부역시 집배원들의 과로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대책을 발표했다. 올 하반기 집배원을 100명 추가로 증원해 신도시 등 업무가 몰리는 곳에 배치하고, 노사협상을 통해 부족 인력을 산출해 이를 충원할 예산을 내년도에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것. 우본 관계자는 “잇따른 집배원 사망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연이은 적자로 인해 토요근무진행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본은 2012년 약 51억 통의 우편물을 배달했지만 2016년 그보다 10억 통 줄어든 41억 통을 배달하게 되는 등 6년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배노조는 그러나 우본이 제시한 인력이 실제 필요인원에 비해 태부족이라고 말한다. 또한 노사 합의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을 무한정 초과할 수 있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59조가 유지되는 한 열악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 같은 ‘특례업종’을 축소하기 위해 검토중이지만, 운수업, 통신업 등 일부 업종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집배원들은 장시간 노동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볼 계획이다. 12일 사망한 원씨를 추모하는 문화제를 여는 것은 물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따뜻한 소식을 건네주던 집배원들의 손에는 어느덧 슬픔이 담긴 피켓이 자리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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